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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수정안 공식 발표를 계기로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내려가는 현재 권력(MB)과 미래 권력(박근혜)의 힘이 교차하는 ‘시소 게임’이 시작되었다.
▲ 시소 게임의 법칙 세종시 수정안 공식 발표를 계기로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내려가는 현재 권력(MB)과 미래 권력(박근혜)의 힘이 교차하는 ‘시소 게임’이 시작되었다.
ⓒ 리얼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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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MB)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후폭풍이 거세다. 마치 판도라의 신화처럼 상자 속에 '행복'만 남기고 온갖 '불행'이 다 튀어나온 꼴이다.

당장 현재 권력(MB)과 미래 권력(박근혜)의 힘이 교차하는 '시소 게임'이 시작했다.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내려가는 것이 시소 게임의 법칙이다. 공존은 두 사람의 힘이 균형을 이룰 때뿐이다.

11일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 직후 실시한 리얼미터(대표 이택수) 여론조사에 따르면, 원안대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발전시켜야 한다(42.1%)는 의견이 교육과학 경제도시로 확정한 정부의 수정안이 더 바람직하다(37.4%)는 의견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 전화조사, 표본오차는 95%±3.1%p).

앞서 실시된 네 차례 조사 추이와 비교해 보면, '대통령과의 대화' 이후(11월30일) 최고조에 달했던 수정추진 의견이 점차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7일 조사에서는 수정추진(39.3%)과 원안추진(39.1%)이 팽팽했는데, 급기야 이번 조사에서 처음으로 원안추진 의견이 오히려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측은 여론의 추이를 최대한 정확히 추적하기 위해 네 차례의 세종시 관련 조사에서 모두 동일한 설문지를 사용해 문항순서나 어휘에 따른 비표집오차를 배제했다고 밝혔다.

'머리'는 선진당이 깎고 '박수'는 박근혜가 받는다

자유선진당 류근찬 원내대표와 이상민 정책위의장이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공식 발표한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수정안 결사저지 의미로 삭발을 하고 있다.
▲ 머리는 선진당이 깍고 박수는 박근혜가 받고 자유선진당 류근찬 원내대표와 이상민 정책위의장이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공식 발표한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수정안 결사저지 의미로 삭발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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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발표 하루 뒤인 12일에 실시한 KSOI(한국사회여론연구소) 주간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전·충남·충북 주민의 63.5%가 원안을 지지했고 수정안 지지는 27.3%에 불과했다. 대전·충남·충북 세 지역 모두에서 원안 선택이 60%를 넘었다. 정부의 수정안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65.1%나 되었다(대전·충남·충북 성인남녀 1000명 대상, 표본오차 95%±3.1%p).

KSOI측은 충청권에서 호감도가 높은 박근혜 전 대표가 최근 강경한 원안 고수 입장을 밝히면서 충청권에서 원안 찬성 및 수정만 반대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 수정안에 대해 "기대 이하"라는 의견이 정당 지지층에 따라 민주당(49.6%), 자유선진당(53.7%), 친박연대(60.6%) 지지층 순서로 많은 것으로 나타난 리얼미터 조사결과와 같은 맥락이다.

박근혜의 영향력은 세종시 사안과 관련 충청 민심을 가장 잘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박근혜 등 한나라당 친박계'(28.8%)라는 응답률이 가장 높은 것에서도 입증된다. 그 뒤는 정세균 등 민주당(21.2%), 이명박 대통령-정운찬 총리 및 한나라당 친이계(17.2%), 이회창 등 자유선진당(12.8%) 순서였다

민주당과 선진당은 세종시 원안 고수에 모든 당력을 쏟았다. 민주당에게는 세종시에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혼이 담겨 있다. 선진당으로서는 세종시를 '사수'할 만큼 생존이 걸린 문제다. 그러나 충청 민심을 보면, '머리'는 선진당 의원들이 깎았지만 '박수'는 박근혜가 받는 형국이다. 그 '박수'에는 미래 권력에 거는 충청권의 기대심리가 담겨 있다.

박근혜가 어떤 입장을 취하는냐에 따라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출렁이는 현상은 사실 대통령 임기가 시작된 이후 반복돼온 일이다. 문제는 임기말이 다가올수록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교차하는 '시소 게임의 법칙'은 더 크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MB가 세종시 수정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순간 '아름다운 동행'은 깨졌기 때문이다.

2007년의 '아름다운 승복'과 '아름다운 동행'

2007년 8월 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제17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가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적힌 현수막 앞에서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노래를 부른 뒤 당원들 앞에서 대선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 세종시로 깨진 '아름다운 동행' 2007년 8월 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제17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가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적힌 현수막 앞에서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노래를 부른 뒤 당원들 앞에서 대선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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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8월 20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린 경기장은 지지자들의 열기로 가득찼다. 단상에는 강재섭 대표가 경선기간 내내 역설한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글귀가 적힌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경선 과열로 인한 당의 분열을 우려한 조처였다. 한나라당에는 10년 전에 이인제 후보의 경선 불복으로 대선에 패배한 악몽이 남아 있었다.

개표 결과 발표를 앞두고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박근혜 후보가 유정복 비서실장으로부터 메모쪽지와 함께 보고를 받았다. 박 후보가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앞섰으나 여론조사에서 앞선 이명박 후보에게 졌다는 보고였다.

나중에 밝혀진, 이때 보인 박 대표의 반응은 "안 된 거죠? 알았어요"라는 짧은 한 마디였다. 여론조사 표의 등가성 논란이 벌어졌지만 박 후보는 연설에서 깨끗이 승복했다. 지지자들에게도 경선 과정의 모든 일을 잊고 당의 화합과 정권교체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오늘부터 전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서 정권 교체를 이루기 위해 백의종군 하겠습니다."

언론은 '아름다운 승복'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한나라당 경선관리위원회가 내건 캐치프레이즈처럼 '아름다운 동행'이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후에도 친이(親李) 주류측은 "박 대표가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했고, 친박(親朴) 비주류측은 "박 대표가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나라당의 '한 지붕 두 가족'과 '친박연대'라는 위성정당

권력의 속성은 물론, 한나라당의 생리상으로도 권력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동행'은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단행된 친박 인사들에 대한 '공천 학살'로 금이 갔다. 그 산물이 아직도 한나라당 밖에서 박근혜라는 모행성(母行星)의 구심력에 이끌려 궤도를 떠도는 '친박연대'라는 위성 정당이다.

60명에 이르는 친박 의원들이 포진한 '한 지붕 두 가족'의 당내 사정도 마찬가지다. 현재 한나라당의 오너(주인)는 이명박(MB) 대통령도 아니고 박근혜 전 대표도 아닌, 미묘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 대표가 대표성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 정몽준 대표가 공식과정을 거쳐 대표직을 승계했지만, 이번 사무총장 인사 파동에서 보듯, 당직 인사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판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양 계파가 모두 당의 공식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MB가 "한나라당은 주류, 비주류가 없다"며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계파 정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 MB의 모호한 태도가 분열을 막는 미봉(彌縫)의 효과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당의 오너십을 약화시키고 한나라당 성향 유권자들의 정당 일체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대통령만 인정하지 않는, 아니 애써 모른 체하는 균열의 조짐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특히 지난 10월 23일 박근혜가 세종시 문제 해법과 관련, '원안+알파(α)안'을 제시한 이후로 '친이'측은 '박근혜와 함께 갈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친이 직계 인사들이 세종시 문제에 대한 박근혜의 '신념'을 걸고 넘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친박의 반격도 이때부터다. 11월초 친박인 이성헌 제1사무부총장이 기존의 당론(원안 추진)을 변경하려는 여권 핵심부의 세종시 수정 드라이브에 불만을 품고 당직을 전격 사퇴한 것도 이런 기류를 읽었기 때문이다. 역시 친박인 구상찬 의원은 11월 6일 국회 본회의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의에서 처음과 끝을 모두 MB의 '아픈 곳'을 질타하는 것에 할애했다(다만, 그는 국군통수권자인 MB의 군 미필 사실은 지적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승복'은 있었지만 '아름다운 동행'은 없었다?

"정말 우리 외교·안보 라인의 안보 의식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 외교·안보 라인의 성층권에 군 미필자가 너무 많다. 국무총리 군대 안 갔다 와, 청와대비서실장 군대 안 갔다 와, 청와대정책실장 군대 안 갔다 와, 청와대정무수석 군대 안 갔다 와, 국정원장 군대 안 갔다 와, 그래서 지식과 두뇌는 있어도 경험이라는 필드 매뉴얼이 약한 외교․안보 라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다.…(중략)…옛 성현들의 말씀에 강자가 후한 법이고 승자가 양보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에 아름다운 승복은 있었지만 아직 아름다운 동행은 없었다."

주류는 주류대로 그간 승자의 아량으로 '참을 만큼 참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친이쪽은 박근혜의 한 마디에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출렁이는 꼴을 더는 볼 수 없다는 결기로 뭉쳐 있다. 세종시 같은 막중한 국가 대사를 추진하는데 언제까지 박근혜의 '결재'를 받아야 하느냐는 항변도 터져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하면 MB의 국정운영 지지층 가운데 약 절반은 박근혜를 차기대권 주자로 지지한다는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이 박근혜와 회동하는 등 포용과 화해 제스처를 취할 때는 국정 지지율이 올라가지만,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울 때면 이들이 이탈해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흔들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박근혜와 회동하는 등 포용과 화해 제스처를 취할 때는 올라갔지만, 박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울 때는 지지도가 흔들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 '박'을 포용하면 올라가고 대립하면 내리막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박근혜와 회동하는 등 포용과 화해 제스처를 취할 때는 올라갔지만, 박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울 때는 지지도가 흔들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 E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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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EAI-한국리서치의 정기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MB의 지난해 국정 운영 지지율은 6월에 최저점을 기록했다가 중도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한 이후 9월에 최고점(44.5%)에 오른 뒤에 다시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MB 지지율이 급락했던 지난 6월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8.5%는 친박계를 포용하라고 답했고, 76.3%는 야당·반대세력과의 관계개선에 주력하라고 답했다. MB가 친박계 의원의 입각, 박근혜 전 대표와의 회동을 통해 당내 계파 화합을 꾀했을 때 국정운영 지지율도 올라갔다. 그러나 MB가 세종시 수정안을 던짐으로써 친이와 친박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이다.

'조기 전대'와 '실세 대표' 체제 운영이 한나라당의 살 길

사실 친박과 친이 간에 정면승부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다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6월 지방선거 즈음이 될 거라는 예측이 많았다. 세종시 수정안은 그 내전의 신호탄인 셈이다. 누가 한나라당의 진짜 주인인지 힘 대결을 해보자는 것이다.

결국 당의 오너십을 확고히 하려면 조기 전당대회가 불가피하다. 조기 전대에서 당 대표 선출에 양 계파가 전면적으로 참여하고, 거기서 선출된 '실세 대표' 중심으로 당을 운영하는 것이 정답이다. 지금처럼 당 대표의 '힘'을 인정하지 않고 당론 중심의 당 운영 원칙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한나라당을 기다리는 것은 지방선거 패배와 공멸의 길일 가능성이 크다.


태그:#세종시, #이명박, #박근혜, #시소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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