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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배달되는 동문회보는 모자라는 사람에게 '연세인'이라는 동일시 최면에 걸리게 할 때가 있다. 이것은 가끔 삶에 활력소가 되기 때문에 나는 거처를 옮길 때에도 이 동문회보만은 꼭 이전한 주소지로 배달해 달라고 거처지를 알려준다.

학교 소식이며 동문들의 동정이 대중 매체를 통해 접하는 것보다 정겹게 다가오는 것은 나에게도 속된 '무리집단'의 근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문해 본다. 사회에서 나름의 지위를 확보한 동문들의 움직임을 눈여겨 보면서 연세인들 중에 이 사회를 움직여 나가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에 자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에 대한 관심을 애교심의 일단이라고 생각하면서 동문회보를 읽고 있다.

그런데 오늘(1월 13일)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이상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자랑스런 연세인상에 서정갑…" 나는 눈을 의심했다. 서정갑이라면 군복에 선글라스를 쓰고 극우의 총대를 자랑스럽게 매고 다니는 그 사람이 아닌가!

내가 서정갑을 알기는 노무현 정권 중간쯤 되지 않나 싶다. 보수언론이라고 일컫는 조중동 하단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광고를 통해서였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엄연히 집권을 하고 있는 중인데도 "북한 김정일 앞잡이 노무현 정권 몰아내자!" 등속의 광고 문안 밑에 극우의 장광설을 늘어놓고 그의 석 자 이름을 자랑스럽게 병기해 놓고 있었다. 이런 광고를 버젓이 낼 수 있는 시대를 읽으면서 나는 정말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임을 알 수 있었다.

그 후 간간히 그가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을 지나치며 보았다. 나는 그가 진보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지 않아서 비판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의 행동이 21세기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어긋나기 때문에 폄하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이다. 극우가 있으면 극좌도 있을 수 있고 보수당 당원이 존재하면 진보정당의 당원도 인정받는 사회이다. 하지만 서정갑은 극우는 선이고 그 외는 모두 악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농단하고 있다. 마치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해방 정국의 어지러운 시대마냥 말이다.

작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시민들이 시청 건너 대한문 앞에 설치한 분향소를 행동대원들과 함께 강제 철거했다는 보도를 보고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전직 대통령의 통치 철학이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죽은 사람의 분향소까지 물리력을 행사, 철거한다는 것은 법 이전에 인륜적 문제에 관계되는 것이다.

그런 행동을 통쾌하게 느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목청을 돋우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서정갑 식의 난동이 우익의 이름으로 횡행하는 것은 우익 자신들을 위해서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연세대 동문회에서 그에게 자랑스런 연세인상을 주는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보도에 의하면 "서 본부장이 전사자 기록 찾기 운동 등을 통해 한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앞장서 왔다"고 선정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한국의 정체성이 뭔가? 서정갑이 걸어온 반민주 반통일 반윤리가 한국의 정체성인가? 이런 것을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판단하고 그에게 상을 주었다면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특히 성경 말씀에서 따온 연세대학교 교훈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32)의 '진리'와 '자유'에도 그의 언행은 배치되고 있음은 너무나 명확하다.

자랑스런 연세인상이 어떤 절차를 거쳐 주어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전체 연세인들 얼굴에 먹칠하는 결정은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서정갑 식의 연세인을 좋아하고 평가해주는 연세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의 양태에 부정적인 다수 연세인의 의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학교 동문은 경제적 부의 차이, 이념적 지향성의 다름, 지역적 출신의 상위를 가리지 않고 매우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극우적 행동가를 연세대 이름을 빛나게 했다고 자랑스런 연세인 상을 준다면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서정갑에게 이 상을 준다는 것은 보수정권에 등을 대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려는 동문회 임원 몇 사람의 작태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는 많은 연세 동문들이 있다. 매일 매스컴을 타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름 없이 선행을 베풀며 삶을 일구어가는 사람들도 많으며, 소외받은 계층과 함께 인생을 불태우는 그런 동문들도 있다. 나는 서정갑보다는 이런 동문들이야 말로 모두가 머리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는 동문들이라고 생각한다.

'자랑스런 연세인상'을 서정갑에게 주기로 결정한 저간의 사정은 모르겠다. 그 사람에게 억지로라도 이 이름으로 상을 주려면 상의 이름에 신경 쓸 것을 주문한다. 어려운 언어조합의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이런 상은 어떨까?

나는 서정갑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이 서부활극에 등장하는 자객(刺客)이다. 평화의 마을에 칼로 난동을 부리는 사람, 이때의 자(刺) 자는 '찌른다'는 뜻이다. 여기에 랑(狼) 자를 조합하면 '자랑'이 된다. 랑(狼) 자는 짐승 '이리'라는 뜻도 있지만 '어지럽고 난잡하다'는 뜻도 있다. 서정갑에게 '자랑(刺狼)스런 연세인 상'을 주는 것이 어떨까? '(칼로) 찌르고 어지럽혀서 세상을 난잡하게 만든' 사람에게 주는 상, 서정갑에게 그야말로 딱 어울리는 상의 명칭이 아닐까 싶다.


태그:#자랑스러운 연세인 상, #서정갑, #보수 우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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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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