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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너무 춥다. 곰이나 개구리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춥다. 출퇴근길마다 완전무장을 해야 하는 요즘, 저소득층은 어떻게 겨울을 나고 있을까? 이런 날씨에 보일러 안 틀고 전기장판만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걸까? 지난해 말 국회에서 보건복지부의 에너지보조금 903억 원은 모조리 깎였다는데….

<오마이뉴스>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도시 빈곤지역, 쪽방촌, 비닐하우스촌 등을 다녀왔다. 하필 올겨울 들어 제일 춥다는 1월 둘째 주에 인턴 기자들이 발바닥에 얼음 박히도록 뛰었다. 굳이 서울광장의 남극체험 행사에 가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는 곳곳이 남극이었다. [편집자말]
동자동 쪽방촌의 한 화장실. 뚫린 벽을 골판지로 막았지만 추운 바람이 계속 들이쳤다.
 동자동 쪽방촌의 한 화장실. 뚫린 벽을 골판지로 막았지만 추운 바람이 계속 들이쳤다.
ⓒ 허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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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도 이 동네 사람들은 찬물로 세수를 한다. 문짝도 없는 세면장이 층마다 한 칸씩 설치되어 있는데, 무릎 높이에 설치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것은 차가운 물 뿐이다. 몸까지 씻으려면 대야에 얼음물을 받아 바가지로 부어야 한다. 이런 물로 몸을 씻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것 같다.

배수시설도 꽁꽁 얼어붙어 바가지로 물을 퍼서 변기를 내려야 하는 곳도 있었다. 수세식보다는 재래식 화장실이 많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겨울인데도 인분 냄새와 암모니아 냄새가 섞여 코를 괴롭힌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곳도 있으니 한밤중의 용변은 전쟁 같을 것 같다.

혹한이 몰아친 2010년 1월, 서울에서 가장 값싼 무보증 월세방을 구할 수 있는 동자동 쪽방촌의 풍경이다. 서울역 앞의 으리으리한 '게이트웨이 타워' 건물 뒤에 들어선 이 동네에는 쪽방·고시원·여인숙 등이 서로 부대끼며 둥지를 틀고 있다.

찬물로 세수... 꽁꽁 얼어붙은 재래식 화장실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간 12일의 서울 날씨는 영하 11.3℃, 체감온도는 영하 17℃에 달했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쪽방촌 건물 입구의 문은 떨어지고 없거나, 있더라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다. 건물들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철골이 드러나 있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복도까지 할퀴고 지나간다.

이정채(가명, 53)씨가 사는 방에 들어갔다. 방에 창문이 없어 햇살도 들지 않는다. 꽉 닫히지 않아 생긴 문 틈새로 찬바람만 들어온다. 그래서 봉지를 끼워 바람을 막기도 한다. 겨울철 실내 적정온도는 영상 18~20℃. 그러나 이씨의 방에서 재보니 온도계 바늘은 8℃를 가리킨다.

최소한의 인간 생활을 0.75평~1평으로 실현한 쪽방에 갖가지 살림살이가 빼곡히 들어찬 가운데 사람이 겨우 누울 자리만 남겨져 있었는데, 여기에 전기장판이 깔려 있다.

바로 이 전기장판이 동자동 쪽방촌의 유일한 난방기구다. 자기 돈을 들여서 가스나 연탄보일러를 놓아주는 집주인은 거의 없지만, 대부분은 방값에 전기세가 포함되어 있다. 쪽방 사람들이 무조건 전기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사회단체나 종교단체에서도 겨울철마다 담요와 전기장판을 지원하곤 한다.

그렇다고 전기장판도 뜨끈뜨끈하게 틀어댈 수는 없다. 집주인은 전기세에 예민하다. 세입자가 전기를 많이 쓰면 집주인이 자꾸만 싫은 소리를 한다.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어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아야 하는 곳이다.

쪽방촌의 실내온도는 영상 10도 아래다. 겨울철 실내적정온도는 18~20도, 이명박 대통령도 내복을 입는다는 청와대 실내온도는 19도다.
 쪽방촌의 실내온도는 영상 10도 아래다. 겨울철 실내적정온도는 18~20도, 이명박 대통령도 내복을 입는다는 청와대 실내온도는 19도다.
ⓒ 허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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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부터 동자동에서 살아온 박성환(가명, 71)씨는 방 안에서 외투를 입고 담요를 3개나 덮고 있었다. 하나라도 더 껴입고 온기를 유지해야 하는 쪽방에서는 외투와 잠옷이 따로 없다. 그의 쪽방 벽에는 옷가지가, 창문에는 달력이 걸려 있다. 조금이라도 외풍을 줄이기 위한 나름의 단열재다. 그런데도 새벽에는 숨을 쉴 때마다 하얗게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고 한다.

그래도 박씨네는 도시가스가 들어오기 때문에 이웃들보다 훨씬 사정이 좋다. 이 동네 1000여 가구 중 도시가스가 공급되는 집은 100가구 남짓. 그렇다고 따뜻한 아랫목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방바닥에서는 냉기가 올라오고 방 가장자리에는 아예 열이 돌지 않는다.

박씨는 "그냥 앉아 있을 만한 정도"라면서 "요즘은 날씨가 너무 추워 방구석에서 꼼짝도 않는다, 손만 씻어도 뼈가 시리다"고 말했다. 그가 국가로부터 받는 기초생활수급비는 40만 원. "그 돈으로 '기초생활'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죽지 못해 사는 거지, 사는 게 아니지" 하며 허허 웃는다.

남극체험 하려면 시청광장 말고 동자동으로

이 쪽방에서 인간다운 삶을 상상하기는 힘들지만 이나마도 버티기 쉬운 것은 아니다. 쪽방의 방세는 한 달에 15만~25만 원이다. 김영기(가명, 52)씨는 두 달 치 방세가 밀렸다. 그는 공사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데, 부실공사 위험이 큰 겨울철에는 일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다행히 집주인이 김씨의 딱한 사정을 이해해 "방 빼"라는 요구는 하지 않고 있다. 이런 한겨울에 노숙을 하면 자칫 죽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연신 소주잔을 기울이던 김씨의 쪽방은 짐이 별로 없어 살풍경했다. 김씨는 음식을 창가에 올려놓고 있었다. 워낙 실내가 춥다보니 창가가 천연 냉장고인 셈이다.

지금은 일용직 노동자이지만 김씨는 원래 종로구 명륜동의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이른바 '아이롱'이라 불리는 스팀 다리미질을 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그는 공장을 나와야 했다. 김씨는 여인숙과 고시원, 심야 만화방 등을 전전하다가 2008년 9월 결국 동자동 쪽방촌까지 밀려났다. 그가 꺼내서 보여준 지갑에는 주민등록증과 현금 4000원밖에 없었다.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의 권리를 위한 운동단체 '동자동사랑방'의 엄병천 대표는 "담요나 전기장판은 임시적인 것이다. 정부에서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있는 집들을 보수해서 저렴한 주택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실제로 외풍 하나 제대로 막지 못하는 쪽방들은 보수공사가 절실해보였다.

그는 "서울시에 주거가 불안정한 '홈리스'들이 수 만명이다, 못해도 3.3평 이상의 공간을 제공해주면 최소한의 보금자리는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서울시청 앞에 남극체험관이 만들어지는 시대. 그러나 쪽방촌의 겨울은 터무니없이 잔인하다. 어떤 사람들에게 겨울은 즐거움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겨울은 공포다. 오늘도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은 1평 남짓한 공간에서 벌벌 떨고 있다.

동자동의 쪽방. 겨우 1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다. 방 가운데 잠자리만을 남겨두고 잡동사니가 벽돌처럼 빈틈없이 쌓여 있다.
 동자동의 쪽방. 겨우 1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다. 방 가운데 잠자리만을 남겨두고 잡동사니가 벽돌처럼 빈틈없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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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쪽방촌의 복도. 어두컴컴하고 비좁다. 층마다 10가구 정도가 1평 방에서 살림을 꾸리고 있다.
 동자동 쪽방촌의 복도. 어두컴컴하고 비좁다. 층마다 10가구 정도가 1평 방에서 살림을 꾸리고 있다.
ⓒ 허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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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허진무 기자는 오마이뉴스 11기 대학생 인턴 기자입니다.



태그:#쪽방촌, #동자동, #겨울철, #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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