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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걸 가옥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에 소재한 중요민속자료 제135호 윤민걸 가옥
▲ 윤민걸 가옥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에 소재한 중요민속자료 제135호 윤민걸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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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에 소재한 중요민속자료 제135호 윤민걸 가옥은 윤민걸의 고조부인 윤양계가 살던 집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양반가 한옥으로 지어진 이 집은 대문을 들어서면 안담이 있고, 중문을 들어서 사랑채와 안채, 그리고 아래채가 있다. 안마당에 있었을 행랑채는 유실이 되었다고 하며, 사랑채의 뒤편으로는 초가로 지은 광채와 뒷담을 벽으로 삼아 꾸민 사당이 있다.

충주시청 홈페이지에 보면 윤양계는 병마절제도 위 연길현감 도청부도사사헌부 감찰을 지냈으며, 고종 2년인 1865년에 이 집에 살았다고 안내문에 적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집을 지은 지는 언제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윤양계가 이 집에 살았다는 고종 2년에 연길현의 현감이었다고 적었는데, 이는 연일현의 오자로 보인다. 승정원 일기의 한 대목을 보자.

'고종 3(1866)년 5월 16일. 경상 감사 이삼현(李參鉉)의 장계에서 진휼하여 구호한 각읍 가운데 베풀어 도와준 것이 뛰어난 수령들의 별단을 등문(登聞)한 것에 대하여 전교하기를, <하양 현감(河陽縣監) 류치윤(柳致潤)은 오고(五考)를 기다리지 말고 군수에 승천(陞遷)시키되 별천(別薦)의 예로 시행하고, (중략) 연일 현감(延日縣監) 윤양계(尹養桂)와 고성 현령(固城縣令) 윤석오(尹錫五)는 모두 가자하고 영장(營將)의 이력을 허용하고, 우병사(右兵使) 이주응(李周應)은 가자하고, 대구 영장(大邱營將) 서형순(徐珩淳)은 방어사의 이력을 허용하라.>하였다.'

이런 내용으로 보아 이 윤민걸 가옥의 조성연대가 언제인지는 좀더 정확한 고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고종 2년에는 윤양계는 연일현감으로 재임 중이었기 때문이다.

대문 윤민걸 가옥의 대문채. 문간채라고 하는 이 문은 원래 중앙에 솟을문만 기와고 양편의 날개는 초가였다.
▲ 대문 윤민걸 가옥의 대문채. 문간채라고 하는 이 문은 원래 중앙에 솟을문만 기와고 양편의 날개는 초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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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의 뛰어난 미적 감각

안담의 일각문을 들어서 별채라고 부르는 사랑채가 자리한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ㅡ자형 평면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사랑채는 중앙의 전면1칸은 튼 마루로, 그리고 좌측의 한 칸을 툇마루로 조성을 하였다. 뒤편으로는 온돌방을 놓았으며, 우측의 1칸은 마루를 높여 우물마루를 깔았다.

얼핏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사랑채 같은 형태인 듯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재미난 곳이 많다. 우선 우측의 마루방을 높였다는 것도 그렇지만 창호가 색다르다. 이 방은 일반적인 사분함 여닫이문이 아닌 중방 위에 쌍여닫이 판장문을 달았다. 중앙에 툇마루는 앞을 터놓았는데, 좌측의 툇마루는 방처럼 꾸몄다는 것도 이 사랑채의 특징이다. 사랑채의 뒤편으로 돌아가면 벽에 새인 듯한 그림을 그려놓았다. 지난해에 보수를 하면서 그린 것인지, 아니며 오래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재미있다.

사랑채 별채라고 부르는 사랑채는 우측에 우물마루를 깔고, 문을 쌍여닫이 판자문으로 조성하였다.
▲ 사랑채 별채라고 부르는 사랑채는 우측에 우물마루를 깔고, 문을 쌍여닫이 판자문으로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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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뒤편으로 돌아가면 뒷 담벼락에 그림을 그려 놓았다. 원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지난 해 보수를 하면서 그린 것인지 궁금하다.
▲ 사랑채 뒤편으로 돌아가면 뒷 담벼락에 그림을 그려 놓았다. 원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지난 해 보수를 하면서 그린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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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와 아래채의 단아함

안채는 ㄱ자형으로 꺾여있다. 좌측으로부터 부엌과 두 칸의 방, 대청이 있고 안방의 꺾어진 부분에는 큰 방을 드렸다. 큰 방의 끝에는 판자로 벽을 막은 한데아궁이를 두고 그 위에 다락을 조성했다. 그런데 이 안방의 뒤편에 마루로 놓은 돌출된 부분이 있다. 안채의 우측 벽면에 돌출을 시킨 이 부분은 소중한 것들을 보관하던 '안 창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뒤편의 툇마루 끝에 출입문을 달아 놓은 마루방과 안방에서 들어갈 수 있는 마루방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안채 ㄱ 자형으로 꾸민 안채는 단아하다, 제법 큰 집이면서도 난해하지 않은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 안채 ㄱ 자형으로 꾸민 안채는 단아하다, 제법 큰 집이면서도 난해하지 않은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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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의 우측 안채의 우측을 표현한 아름다움. 이런 아름다움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 안채의 우측 안채의 우측을 표현한 아름다움. 이런 아름다움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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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채에서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부엌에서 볼 수 있다. 이 정도의 큰 집이라면 까치구멍이 양편으로 나 있는 것이 보편적인 형태이다. 그러나 윤민걸 가옥은 환기를 시키는 까치구멍이 뒤편의 문 옆으로만 있다. 연기 등이 안마당으로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란 생각이다.

부엌 안채의 부엌에는 안마당 쪽에 까치구멍이 없다. 연기가 안마당에 차지 않게 하기 위함인 듯.
▲ 부엌 안채의 부엌에는 안마당 쪽에 까치구멍이 없다. 연기가 안마당에 차지 않게 하기 위함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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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채는 행랑채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래채는 앞에서 보면 ㅡ자형의 집이지만, 좌측 뒤편에 돌출이 되어있어 전체적으로는 ㄴ자형으로 구성이 되었다. 아래채는 뒤편에 작은 광을 두고 2칸의 부엌과 2칸의 방이 있고 우측 끝으로는 광을 드렸다.

전체적으로는 가운데 방을 두고 양편에는 부엌과 광을 들여, 방을 보호한 느낌을 받는다. 부엌의 위편에 낸 까치구멍이나 좌우측의 심벽을 만든 것도 이 아래채를 일반 가옥보다는 단아하게 꾸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채 윤민걸 가옥의 아래채는 또 다른 단아함을 볼 수 있다. 좌우 벽을 심벽으로 처리를 하고, 방을 중앙에 두었다.
▲ 아래채 윤민걸 가옥의 아래채는 또 다른 단아함을 볼 수 있다. 좌우 벽을 심벽으로 처리를 하고, 방을 중앙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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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깥담을 아름답게 했을까?

사랑채의 뒤편으로 돌아가면 3칸의 마루방을 드린 사당이 있고, 그 옆에 초가로 지은 광채가 있다. 그런데 뒷담에 나 있는 사주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바로 바깥 담장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광채와 사당채의 뒷벽이 그대로 바깥담이 되어있는 윤민걸 가옥의 특징이다. 사당과 광채가 떨어진 ㄱ자형으로 되어있는데, 이 바깥담인 벽을 모두 심벽으로 처리를 했다. 왜 이렇게 바깥담을 아름답게 치장을 한 것일까? 두고두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사당채와 강채 세칸 마루방으로 꾸민 사당채와 초가인 광채
▲ 사당채와 강채 세칸 마루방으로 꾸민 사당채와 초가인 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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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담 사당채와 광채의 바깥담. 심벽으로 처리한 바깥담이 아름다움. 윤민걸 가옥의 최대 반전이다.
▲ 바깥담 사당채와 광채의 바깥담. 심벽으로 처리한 바깥담이 아름다움. 윤민걸 가옥의 최대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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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은 아름답다. 그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숨은 아름다움이 있다. 그 아름다움은 집 주인의 심성을 닮는다. 집을 지을 때는 자신들이 가장 사용하기 적합하게 꾸민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개성을 강조한 것이 우리 고택의 멋이다. 천편일률적으로 변해가는 서구식의 가옥들. 그런데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오랜 세월을 꿋꿋하게 버티어 낸 나름대로의 고집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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