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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보 없이 대출이 가능하다고?

방글라데시에 설립된 그라민 은행은 착한 자본주의를 실현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이며 3단계 도약을 꿈꾸고 있다.
▲ 그라민은행 이야기 방글라데시에 설립된 그라민 은행은 착한 자본주의를 실현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이며 3단계 도약을 꿈꾸고 있다.
ⓒ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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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할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이 급전을 빌리는 방법은 고액의 이자를 물어야하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제도다. 2009년 삼양주민연대에 소액대출 제도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거기서 소액 대출을 받아 카드대출금 일부를 갚으면 어떨까 생각하면서도 망설이느라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어렵사리 결심하고 2009년 4월 경 전화로 운을 뗀 나와는 달리 담당자는 너무 쉽게 가능하다는 대답과 함께 200만원을 기꺼이 대출해 주었다.

선이자를 떼는 것도, 보증인을 세우라는 것도 아닌, 그저 정확한 용도와 하고 있는 일을 적어내고 주민등록 등본 등 간단한 서류만 준비해서 넘겨주면 되는 일이었다. 상환 방법은 월 10만원씩 원금을 내고 원금을 갚은 후 이자로 5만원을 더 갚으면 된다. 소액 대출자들과 운영자가 월 1회 회의를 하는데 빠짐없이 회의에 참석하면 이자도 면제해 준다. 진짜 신용만으로 대출이 이루어지는 신용을 바탕삼아 사채가 아닌 돈을 빌려 쓸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최근 <그라민은행 이야기>를 읽고 나서야 대한민국에도 아름다운재단, 한국마이크로크레디트 신나는 조합, 함께 만드는 세상 사회연대은행, 열매나눔재단, SBS희망기금지원센터드 몇 개의 소액 대출이 가능한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요즘 서울시가 대대적 홍보에 나서고 있는 희망플러스적금도 있다. 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 하늘에 별따기다. 소액 대출 은행은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이 시초다. 1983년 방글라데시에서 시작되어 남미, 지금은 미국과 캐나다까지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그렇다면 방글라데시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1천 400만 가구에 신용만으로 대출을 가능하게 만든 '그라민은행'의 저력은 과연 무엇일까? 

착한 자본주의를 실현한 그라민은행

<그라민은행 이야기>는 캐나다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본스타인이 그라민은행의 창립자 유누스와 회원들, 실무자들을 만나 설립과정부터 3단계 도약을 이루기까지 과정을 담아낸 책이다.

방글라데시는 언어와 종교의 차이로 인도로부터 분리된 나라다. 뱅골어를 사용하며 국토의 대부분이 강과 별 차이가 없는 삼각주로 농사를 짓는데 홍수와 태풍 등 자연재해의 피해가 잦아 국민 대다수가 가난과 빈곤에 시달린다.

그라민(뱅골어로 마을이라는 뜻) 은행을 설립해 방글라데시의 가난과 싸우고 있는 무함바드 유누스는 학생운동의 태동기인 1965년에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미국 내시빌에 도착한다. 경제학자인 그는 "히피 우드스탁, 베트남 전쟁, 서른 살이 넘은 사람은 아무도 믿지 마라"는 말과 창의적이고 진취적이며 활동적인 절은이들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니고 가난한 조국 방글라데시로 돌아온다. 치타공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유누스는 강의실에 앉아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경제학을 가르치는 행위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한다. 강의실 밖에서는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데 강의실 안은 너무나 평온했던 것이다. 그는 강의실 안의 경제 이론만으로는 국민들의 90%가 어떨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건 모두 동화에 지나지 않았어요. 모두 정말인 척하는 것들 뿐이었죠. 스스로 환멸을 느끼는 것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어요? 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내가 하는 일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유누스는 실제로 마을 사람들과 만나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한다. 치타공은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고 유누스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모두 남자였다. 그들이 마을을 방문하면 여자들은 모두 몸을 숨겨서 말조차 붙이기 어려웠다. 이슬람교 여성들은 푸르다(남성이 여성을 보지 못하도록 장막 뒤에 숨거나 천으로 몸을 가리는 문화)를 지키며 살아야했기에 불교신자며 미망인인 프리티를 고용해 마을의 가난한 여성들을 찾아다니며 세세한 환경을 파악하도록 한다. 그가 시작하는 은행은 방글라데시 신용조합이 겪은 실패(신용조합에서 대출된 돈은 거의 회수되지 않았다)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유누스는 신용조합을 '부자들을 위한 자선 조직' 이라고 이름 붙였다.

유누스는 소액 대출 모임을 결성하면서 세 가지 원칙을 정한다. 첫째, 빌린 돈은 제 날짜에 꼭 갚게 한다. 둘째, 땅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돈을 빌려준다. 셋째, 될 수 있으면 여성들과 함께 일한다.

유누스는 과거 실패를 거울삼아 마을 사람들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규칙을 정하도록 이끌었다. 마을 사람들은 대출금 환수를 활성화 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냈고 다섯 명에서 열 명까지 모여 하나의 모임을 구성하고 센터를 중심으로 교육과 모임, 대출금 환수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1977년 1월 3일 유누스의 보증으로 자나타은행에서 대출받은 1만 6050타카(약 500달러)가 일곱 사람에게 분배되었다. 대출을 받은 이들은 인력거를 사거나 암소를 사고 물건을 사서 팔기도 했다. 대출 수요는 점점 늘어났고 유누스가 보증을 서고 58명의 사람들이 나나타 은행에서 9만 4800 타카를 빌렸다. 빈곤층에게 대출을 해주는 사업은 자나타 은행으로서는 짜증나는 일이었다.

몇 달 뒤 유누스는 포드재단의 다카 사무실을 방문했다. 포드재단 대표자가 방글라데시 국영은행 가운데 하나인 크리시은행 임원과 만나는 자리에 유누스를 초대한 것이다. 유누스는 크리시은행 조부라 지점을 만들어서 유누스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했고 시범 지점이 1983년에 만들어졌다. 현재는 방글라데시에만도 700여개의 지점이 세워졌고 여러가지 사회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그라민은행은 회원제로 구성되고 회원들은 모임과 센터에서 활동한다. 시행착오를 거쳐 모임 구성원은 5명으로 정하고 각 모임에서 의장과 총무를 뽑아 해마다 돌아가면서 일을 맡아 하도록 했다. 모임에서는 집단저축과 기증을 통해 모임 구성원 중 단기 차입이 필요할 때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하는 '모임기금'과 누군가 빚을 못 갚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도둑을 맞았을 때 적절한 한도에서 쓸 수 있는 '비상기금' 제도를 도입했다.

처음에 일주일에 1타카씩 저축하던 모임기금이 장기적인 안정성에 얼마나 중요한지 밝혀짐에 따라 돈을 빌려줄 때마다 5%의 모임세 제도를 만들었다. 비상기금은 돈을 빌린 사람들이 연말에 기부하는 돈으로 비축했다. 그 두 기금은 방글라데시 농촌의 극빈층을 빈곤의 한계선 이상으로 끌어올리는데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 방글라데시 가난한 농민들 중 그라민은행회원은 절반 이상이 빈곤의 한계선을 넘어섰고 하루 세끼씩 먹고 있으며 영양상태도 좋아지고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그라민은행 대출자의 2/3가 여성이며 지역에 따라 어려움과 위험이 따르긴 했지만 대출 환수금이 거의 98%에 달한다. 지금까지 가난한 사람들은 신용도 없고 돈을 빌리면 그 돈을 상환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대출을 방은 가난한 여성들은 대출금에 대해 오히려 더 철저한 부채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을 묶어 주는 모임과 센터 활동, 회원으로 더 많은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신용을 지켜야 함을 알고 있다.

"은행은 우리를 사랑해요. 그러나 우리는 감옥에 갇힌 것 같아요. 돈을 못 갚으면 같은 모임에 도움을 구해야 하죠. 모임에서  도울 수 없으면 센터에 요청할 수 있고요. 그런데 센터에서도 도울 수 없으면 회원 자격을 내놓아야 해요. 어쨌든 은행은 돈을 돌려받아야 하니까요."
당신은 돈을 빌리는 것이 부담스럽나요?"
"네 부담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의 돈을 가지고있는데 어떻게 부담스럽지 않겠어요?"
그 부담을 맏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럼요. 우리 살림이 나아지니까요."
"어떤 방법으로요?"
"돈을 움직이지요. 돈을 움직여서 더 많은 돈을 만들지요."

일반적인 사고를 지닌 많은 자본가들이 우려했지만 그라민은행은 눈부신 도약을 거듭하며 가난한 이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

신용으로  대출받은  희망 씨앗

그라민 은행의 실험이 모두 성공적이라거나 앞날이 무지개 빛 만으로 가득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라민은행은 지금까지 은행이 지향하던 고객, 자본주의가 지향하던 형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대부분 은행들은 신용대출이라는 명목하에 담보와 눈에 보이는 상환능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라민은행은 담보로 제공할 땅이나 반듯한 직장이 없는 사람들,  경제능역이 없던 여성들에게 대출 기회를 제공했다. 그들은 대출금을  제때 상환했고 살림이 나아졌으며 신용만으로 대출을 받은 사람도 대출금 상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눈앞에 보여 주었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대출을 가능하게 만든 단순한 대출이 아니라 삶에 간섭하는  그라민은행의 시스템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부자들만을 위한 은행이 성행하는 대한민국에서도 그라민은행과 같은 은행이 자리잡을 수 있을까? 가난한 서민들도 신용만으로 대출이 가능한 문턱이 없는 은행이 가능한 것일까?

그라민은행은 사실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자본주의가 애써 눈감았던 다수,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일하며 삶에 대한 의지가 넘쳐나는 사람들에게 돈이 아니라 삶을 일굴 희망의 씨앗을  대출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난을 벗어나 더 나은 주거 환경, 더 나은 식생활, 더 나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희망,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희망 씨앗을.

덧붙이는 글 | <그라민은행 이야기>는 데이비드 본스타인이 쓰고 김병순이 옮겼으며 갈라파고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라민은행 이야기 - 착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다

데이비드 본스타인 지음, 김병순 옮김, 갈라파고스(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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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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