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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학가, 두 가지 모습

 

세계 대학가가 등록금 인상을 둘러싸고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올해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하 23개 캠퍼스에서 30% 가량 학비인상이 이뤄졌음에도 지난 11월 캘리포니아대 평의회에서 학부생 학비를 또다시 32% 올리기로 결정했다. 미국 피츠버그에서는 미국역사상 최초로 대학 등록금에 1%의 세금을 매겨 1620만불의 세금이 새로 생겨났다.

 

미국 주립대의 내년 평균 등록금이 거주자 기준으로 7020달러(약 8백만 원) 정도인데, 캘리포니아의 경우 내년 1월 8373달러, 내년 8월 1만302달러로 인상이 예정되어 있다. 해당 주(州)에 살지 않는 학생에 비해 2~3배 낮은 등록금을 내는 주 거주자들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등록금 인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숙사비와 책값을 포함할 경우 주 거주자의 경우에도 등록금은 학기 당 2만 달러를 가뿐히 넘게 생겼다.

 

이에 학생운동과 별반 상관없어 보이는 미국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지난 11월에는 10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다 100여명이 체포되었고, UC데이비스 학생들은 대학본부 점거로 52명이 체포됐다. 또한, 12월 10일 샌프란시스코 주립대와 UC버클리에서 예산삭감과 학비 인상에 항의하며 학내 점거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이 잇따라 경찰에 체포된 것을 비롯해 대학마다 점거와 연행이 잇따르고 있다.

 

유럽에서도 등록금 시위가 불붙었다. 독일에서는 학·석사(BA·MA)학제전환 반대, 등록금 징수 폐지, 수업환경 개선, 입학정원제 폐지 등을 내세운 학생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대학은 불타고 있다"는 슬로건을 앞세운 대학 동맹휴업이 벌어졌고, 11월 17일, 전국 41개 도시에서 8만5천여 명이 가두시위를 벌였다. 11월 24일에는 학생들이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대학총장회의(HRK) 회의장을 점거하기도 했다.

 

학생시위의 전통이 살아있는 유럽대학 학생들의 저항은 미국 대학생들에 비해 매우 높은 대중운동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다면 독일학생들의 등록금은 얼마나 될까? 독일에서 등록금을 징수하는 주는 전체 16개 주 가운데 6개에 지나지 않으며, 등록금도 학기당 300~350유로(약 80만원)에 불과하다.

 

학기 당 8백만 원에서 2천만 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30% 넘게 더 인상하겠다는 미국에서는 수십 명 학생들이 대학 점거 등 싸움을 펼치는 반면, 고작(?) 80만원을 내는 독일 학생 수만 명은 거리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상식'들

 

아마도 독일 대학생이 미국에 있었다면 첫 번째로 등록금 액수에 놀라고, 두 번째로 이런 상황에서도 화염병조차 들지 않는 미국 대학생들을 한탄했을 것이다. 반면, 미국 대학생이 유럽에 있었다면 태평한 시위라고 냉소했을지도 모른다. 두 지역 대학생들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도 대비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대학교육에 대한 그들의 '상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식 교육체제에서 고액의 등록금은 상식이다. 교육서비스를 제공받는 교육소비자가 교육생산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풀타임 대학생의 약 3분의 2는 어떤 형태로든 평균 3백만 원 정도의 장학금을 받고 있긴 하다.

 

반면, 유럽에서 교육은 기본적으로 국가책임이지 학생에게 비용을 전가해야할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장학금 혜택이 황송할 뿐이지만, 유럽에서는 생활비조차 권리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국가와 대학이 학생들에게 학습을 위한 비용을 지급하지는 못할망정, 돈을 걷는 것 자체가 책임방기다.

 

이쯤 되면 한국 대학생들은 어떤 '상식'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외환위기가 안정되기 시작한 2000년 즈음부터 폭발적으로 인상되기 시작한 국내 대학 등록금은 대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등록금문제가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한 2000년에는 등록금 인상반대 투쟁을 매개로 오랜만에 학생총회가 성사되거나 대중집회가 성황리에 개최된 사례가 많았으며, 많은 대학에서 납부연기, 동전 납부 투쟁, 항의엽서 보내기, 검은 옷 입기, 대학본부 업무방해 등 다채로운 운동방식을 선보여 많은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해 냈다.

 

이것은 한국 대학생들에게도 지금의 등록금 수준이 '상식'을 벗어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96년 한총련 연세대 사건과 97년 한총련 출범식 사건 이후 쇠락을 거듭하던 대학생운동은 이런 등록금 투쟁의 부흥을 통해 다시 '뜨고' 있을까?

 

등록금 투쟁 활성화에도 대학생 의식은 보수화

 

대중적 등록금 투쟁의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 의식은 오히려 보수화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진보·개혁적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가 보수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를 압도했던 2005년 이전 상황과 달리, 2006년부터는 보수정당에 대한 20대 지지율이 월등하게 높아졌다.

 

물론 이것은 대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다양한 사회의식조사결과에 따르면, 2006년을 전후해 정치·경제적 측면에서의 대중적 사회의식은 진보에서 보수로의 이동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2003년과 2007년의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의 국민의식조사 결과에서는 '경제성장을 희생하더라도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질문에 동의하는 비율이 2003년 76.6%에서 2007년 34.3%로 절반이 넘게 줄었다. 대체로 진보가 성장보다 분배를, 보수가 분배보다 성장을 선호한다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이 변화는 국민의식의 보수화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조사에 따르면 노사갈등에서 "노조가 자제해야 한다"는 질문에 대한 태도도 2003년(32.2%)에 비해 2007년(48%)로 동의 비율이 높아져 보수화 경향을 보여주며, "재벌을 더욱 규제해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2003년(62.5%)보다 2007년(52.4%)의 동의비율이 줄어 역시 보수화된 이념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대학생들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물론 현재 대학생들은 개인의 사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등 문제나 호주제, 혼전성관계, 성평등, 조직생활에서 개인의 권리 등 이슈에서는 과거 대학생에 비해 진보 성향을 보이지만, 정치·경제적 측면에서는 과거에 비해 보수적 태도로 돌아섰다.

 

이것은 대학생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 대중투쟁이 진보적 정치·경제의식 형성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현실 진보세력 또한 대학생들과 관계 맺기에 실패하고 있는 것을 말해준다.

 

대학생들의 탈진보화 현상은 지난 해 전국을 휘감았던 촛불항쟁의 와중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30~40대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하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개혁·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율 상승이 뚜렷하게 나타났음에 비해, 20대에서는 여전히 보수정당이 안정된 기반을 갖고 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6월 이후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동반상승하고 있는 반면,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경향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것은 5월 말 조문정국 이후 형성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양강구도에 20대 역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20대의 독자적 담론형성역량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런 경향은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최근 대학총학생회 선거결과에 따르면, 대학사회에서 보수화 현상이 두드러진 2006년에는 보수우익적 학생회의 당선율이 진보적 운동권 학생회의 당선율을 앞질렀고, 전통적 학생운동 세력은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반운동권 학생회의 당선율 역시 2007년부터 경향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전통적 운동권 총학생회든 반운동권 총학생회든 대중적 영향력을 확고히 하는 데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기존의 학생운동세력 분류법으로 구분되지 않는 '기타' 총학생회는 급격히 늘어나 2010년 선거에서는 운동권·반운동권 총학생회 당선율을 앞질렀다. 기타 성향의 총학생회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은 뚜렷한 집합적 정체성이 부재한 오늘날 대학생의 현실을 반영한다.

 

조합주의적 등록금 투쟁의 한계

 

이런 결과는 2000년 이후 학생운동이 등록금 투쟁을 중요한 의제로 수용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나, 이 투쟁들이 대학생의 정치의식 진보화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학생들의 이해관계에 근거한 대중활동이 정치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먼저 그동안의 등록금 투쟁이 사실상 정치투쟁이라기보다 경제적·조합주의적 투쟁, 즉 단지 인상률 몇 %를 둘러싼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동결'이나 인상폭의 축소를 목표로 하는 등록금 투쟁은 등록금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등록금 투쟁을 펼치는 진보적 학생세력에겐 물론 이런 의식이 존재한다. 그러나 대중적 수준에서 등록금투쟁은 대학생 집단의 조합주의적 단기과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것은 등록금 의제가 진보세력만의 의제라기보다 다양한 정치세력이 동결이나 인상률 인하 등 단기과제를 둘러싸고 경쟁하는 헤게모니적 실천의 의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런 경쟁과정에서 진보와 보수 중 누가 더 성과적이었을까? 예를 들어 일반 대학생의 상식 수준에서 보자면, 비록 기만적인 사기극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긴 했지만 지난 대선 전에 한나라당이 발표한 '등록금 반값 정책' 같은 것이 오히려 파격이었다. 비록 진보진영이 오래 전부터 '무상교육' 슬로건을 제기하긴 했어도, 실제 권력을 가진 이들의 입에서 나온 반값 등록금의 충격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후 진보진영은 등록금 후불제와 상한제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지난 2009년 7월 30일 정부가 등록금 후불제와 다름없는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를 발표하면서 주도권은 또다시 정부에게 돌아갔다.

 

물론 정부 정책은 많은 단체에서 지적한 것처럼 수많은 문제점을 가진 것은 사실이나, 그 근본 취지는 교수노조 등에서 제기했던 등록금 후불제의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당시 적지 않은 진보세력은 이 제도의 시행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후불제 자체가 등록금 인상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이전과 정반대의 반응까지 보이기도 했다. 이런 초기 반응은 사실상 정책 자체에 대한 불만이었다기보다 정책 주체인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혼란스런 과정들이 말해주는 것은 단지 대학생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근거한 조합주의적 운동만으로는 진보적 대학생운동이 다시 대중적 영향력을 얻거나 대학생의 정치의식이 진보화하도록 만드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학생운동이 과거의 지나친 정치편향에 대한 반성으로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반 한 대중운동을 강화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지나치게 실리정치적 측면으로 경도되면서 보수우익세력의 담론 헤게모니에 종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평가해볼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안적 대학모델과 진보적 정치 프로젝트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 중 하나는 대학사회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만한 대안적 대학모델을 구성하고, 이에 따라 단기적, 중·장기적 과제를 배치하면서 지금의 대중 상식(common sense)을 양식(good sense)화·진보화 하는 것이다.

 

과거 진보세력에 대한 비판이 뜬 구름 잡는 장기적 모델만 존재하고 지금 당장 실현가능한 단기적인 정책과제가 부재하다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등록금 인상률이나 학자금 이자율과 같은 단기과제나 상한제와 같은 중기과제는 존재하지만, 장기전망, 즉 진보세력이 추구하고 있는 대안적 상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대학문제만이 아니라 진보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실투쟁은 단기과제를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지만, 단·중기 과제들이 어떤 전망 속에서 제기되고 결합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때만이 단기과제의 해결이 정부의 후불제 발표의 경우처럼 운동의 위축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일관적이며 지속적인 투쟁으로 이어지게 만들 수 있다. 

 

물론 대안적 대학체제 모델을 만드는 것은 대학생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줄어든 것은 진보적 대학 총학생회의 수만이 아니라 운동진영 전반의 역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사회·정치적 진보세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은 새로운 연대문제를 제기한다.

 

현재 대학생의 '상식' 수준을 반영하고 있는 '기타' 성향의 학생세력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또 대학생운동세력과 사회세력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또 이런 관계를 통해 어떤 대안적 비전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일종의 정치적 프로젝트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정치세력이 각축하는 헤게모니적 실천의 문제다.

 

이미 정부에서는 등록금 산정 기준을 공개토록 한다던가, 정운찬 총리를 앞세워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내년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고, 대학지원 사업 선정평가에 등록금 인상률을 반영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중의 이해관계와 상식에 개입하고 있다. 이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이 총장을 맡고 있는 이화여대를 비롯해, 서울여대, 조선대, 가톨릭대 등에서 내년 등록금 동결방침을 내놨다.

 

이런 정책은 진보운동세력에게도 좋은 것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학 간 무한경쟁구도와 대학의 기업화·시장화 경향을 바꿔내지 않는다면, 이런 정책 역시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진보적 대학생운동이 이런 정부의 정책에 혼란스러워 하거나 오히려 정치적 이유로 개혁을 반대하는 듯한 이미지를 남기는 대신 더 높은 차원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기 위해서는 대안적 대학체제모델을 만드는 작업에 하루 빨리 착수해야만 한다. 이런 작업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학통폐합과 다양한 구조조정, 법인화 문제 등 수많은 의제에 일관된 틀로 대응할 수 있는 공동의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

 

미국 대학생의 '상식'과 유럽 대학생의 '상식' 사이에서 배회하는 한국 대학생들의 상식을 어떻게 양식화할지, 또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진보화를 이끌었던 대학생운동이 다시 뜰 수 있을지는 대학생운동세력만이 아니라, 현실 진보세력 모두의 과제로 다가온다.

 

그나마 우리에게는 치솟는 등록금과 험난한 취업난, 무한 경쟁구도에서도 여전히 헌신하는 젊은 친구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남은 가장 큰 자산이며 희망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세상연구소 홈페이지(www.cni.or.kr)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새세상연구소에서는 초중등, 고등교육의 대안모델을 함께 연구하고 토론할 교육연구회 회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태그:#학생운동, #20대, #보수화,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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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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