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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영웅(山中英雄)으로 불리는 백수의 왕 호랑이는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칠 수 있는 영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 옛날 내 고향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중추리 가래울이라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큰 대문에 호랑이 그림을 부적처럼, 또는 수호신처럼 붙여 놓은 것을 많이 보았다.

집에서 기른 양순한 호랑이 한 마리

 윤종운 작 캔버스에 유채 <경인대길(庚寅大吉)> 130 X 97Cm   - 경향갤러리 '호랑이 전' 출품작  ※ 작가 윤종운, 미술대학원 서양화 전공, 2009 ‘보문미술대전’ 특선 작가
▲ 윤종운 작 캔버스에 유채 <경인대길(庚寅大吉)> 130 X 97Cm - 경향갤러리 '호랑이 전' 출품작 ※ 작가 윤종운, 미술대학원 서양화 전공, 2009 ‘보문미술대전’ 특선 작가
ⓒ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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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우리 집안에도 호랑이 한 마리가 벽에 걸려 있었다. 서양화를 전공하는 미술대학원생 아들이 정성 들여 기른 호랑이다. 이 녀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흔히 보아 왔던 예사 호랑이의 모습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해석도 분분하지만, 나는 이 녀석을 보면서 '경청(傾聽)'이란 낱말을 떠 올렸다.

'경청'이란 '귀를 기울여 들음'을 뜻하는 말이다. 남의 말을 잘 들어 주는 것은 아름다운 삶의 덕목이다. 남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일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세상을 사는 까닭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아도 남이 하고 싶은 말을 느긋이 들어주기엔 시간이 없다고 조바심치는 게 요즘 세태이다.

경인년(庚寅年)을 맞아 양순한 자태의 호랑이 한 마리가 그런 인간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경청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호랑이 해에 '출가'시키기로 

마침 호랑이해를 맞이하여 이 녀석을 출가(出家)시키기로 했다. 경향갤러리의『2010 경인년 '호랑이해' 특별기획전』에 선보이기로 한 것이다.

※ 경향갤러리(경향신문사 별관)『2010 경인년 '호랑이해' 특별기획전』
전시기간 - 1부 경향갤러리 : 2009. 12. 30 - 2010. 1. 3 
2부 유나이티드 갤러리 : 2010. 1. 7 - 1. 13 

내가 좋아하는 우리말 중에 '다소곳'이란 말도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우리말도 없지 싶다. '다소곳'이란 '고개를 조금 숙이고 온순한 태도로 말이 없다'는 뜻이다. 요즘 세태는 기세등등한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어딜 가나 잘난 사람들뿐이다. 고개를 발끈 쳐들고 똑바로 바라보거나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을 당당함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겸허(謙虛)와 겸양(謙讓)의 미덕이 사라진 지 오래라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이 호랑이 그림을 어떻게 감상해야 좋을까?"

그러나 아들은 말이 없다. 가까스로 이런 우문현답(愚問賢答)을 들었다.

"그림이란, 특히 서양화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심지어 그림에 제목을 붙이는 것조차도 서양화에서는 감상에 방해된다고 해서 금기시 하는 작가들도 있어요."

이 그림은 화선지에 쓱쓱, 단 시간 내에 그려진 동양화가 아니다. 캔버스에 그린 유화(油畵) 작품으로 오랜 기간 정성과 공을 들인 서양화다. 그림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은 아버지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동양화는 화제(畵題)을 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하니까, 제목이 중요하지요. 가령 문인화를 보더라도 그림 속에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지요. 그러나 서양화는 대부분 '실험적인 작품'이 많아요. 무한한 상상력이지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예술의 세계'란 이렇게 어떤 경계를 뛰어 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포효하는 것만이 호랑이의 진정한 모습은 아닐 터

호랑이가 보여주고 싶은 것 -  (힘을 가진 자 일수록) "겸허한 자세로 많이 들어라" 는 뜻은 아닐까?
▲ 호랑이가 보여주고 싶은 것 - (힘을 가진 자 일수록) "겸허한 자세로 많이 들어라" 는 뜻은 아닐까?
ⓒ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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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말을 듣고 보니, 이 아버지도 그림을 보는 안목이 새로워졌다. 보는 이에 따라 각기 해석이 다를 수 있는 것이 서양화이긴 해도, 이 아버지는 나름대로 답을 구하고 싶어진다. 저 호랑이가 인간들에게 무언가 보여주려는 것은 아닌지 헤아려 보게 되는 것이다.

처음 이 그림을 볼 때는 몰랐다. 단순히 호랑이란 동물을 '한국의 12지' 중 하나라는 데에만 머물렀다. 그림을 여러 날 들여다보니, 그런 뜻으로만 해석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경청(傾聽)'과 '다소곳'.  

그렇다. 번설(煩說) 보다는 사색을 보다 더 많이 하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가급적이면 말수를 줄이고 묵언(默言)으로 내면의 삶을 풍요롭게 살찌우라는 뜻은 아닐까?

어디에 걸어 두면 좋을까?

눈을 부릅뜨고 포효하는 것만이 호랑이의 진정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힘을 가진 자, 권한을 가진 자, 부를 누리는 자가 자기과시나 위력을 보인다고 해서 존경과 추앙을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을 어디에 걸어 두면 좋을까? 국민의 진정한 목소리를 겸허한 자세로 듣고 반영해야 할 국회의사당에 걸어 두면 어떨까?

아니면,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겸손하게 귀담아 들어 정책수행에 반영해야 할 공직자들이 귀감으로 삼도록 공공기관의 벽에 걸어 두면 어떨까?

아니, 사가(私家)에 걸어도 좋겠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제 잘난 멋에 취해 살아가는 뭇 사람들에게 저 다소곳한, 그러나 많은 것을 듣기 위해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호랑이의 우람한 자태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으니까.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평범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수필문학인입니다. 경인년 새해 호랑이해를 맞이 하여 서양화를 전공하는 아들이 그린 호랑이 그림 한 점이 유난히 이채로운 표정을 하고 있어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이 글은 디트뉴스24, sbs블로그, 다음 블로그 등에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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