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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시련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원내 169석, 거대 집권여당의 대표지만 그의 말에는 좀처럼 힘이 실리지 않는다. 사실 힘이 실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항상 틀려서 '저주'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펠레의 월드컵 전망처럼 정 대표의 현안 관련 발언은 항상 반대 결과를 낳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 대한 특별 사면이다. 정 대표는 지난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에 대한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다소 이른 감이 있는 것 같다"고 제동을 걸었다.

 

한없이 작아진 169석 집권여당 대표

 

법무부가 이 전 회장에 대한 사면을 "신속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집권여당 대표가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정 대표의 발언을 놓고 여권 내부에서 논란이 일었지만 정 대표는 15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소신을 꺾지 않았다. 그는 "기업인들은 중요한 사회적 지도자들인데 이들이 법치주의 확립에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특히 광복절 특사를 앞둔 지난 7월에도 형인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사면 문제가 거론되자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시장친화적이라는 것이지 법을 위반하는 기업인들까지 도와주기 위한 정책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사면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청와대는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정 대표의 발언을 놓고 고심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정 대표 발언 이후 오히려 여권에서는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 전 회장의 사면이 필요하다는 공개적인 발언이 흘러나왔고 결국 29일 사면이 확정됐다.

 

4대강 사업 예산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국면을 풀어보겠다고 제안한 '대통령+여야 대표' 3자회담도 한방에 무시당했다.

 

청와대 수석의 집권여당 대표 타박

 

청와대는 "금시초문"이라며 발을 뺐고 이동관 홍보수석은 "예산 문제가 대통령 앞에서 할 이야기인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장광근 사무총장은 면전에서 "연말 정국의 뇌관인 예산문제나 4대강 사업에 대해서 대통령의 해법 제시를 요구해서는 안된다"며 "여의도 문제의 최종 해결사는 정당이지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타박했다. 

 

결국 정 대표의 제안은 민주당이 수용의사를 밝혔음에도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또 지난 22일 한나라당 남양주갑 당원협의회 당원 교육 및 송년회에 참석한 정 대표가 "4대강 사업에 회의적"이라는 발언을 내놓자 당 대변인실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정 대표가 이날 "야당에서 4대강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데 정말 국민들이 걱정하고 바라는 그런 사업인가에 관해서는 회의가 든다"고 하자 당 대변인실에서는 이 발언을 주워 담느라 바빴다.

 

진의가 왜곡됐다는 게 당 대변인실의 공식 해명이지만 말의 앞뒤를 살펴보면 꼭 그렇게 보이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정 대표가 실제 4대강 사업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소신 발언을 했지만 당내에서 후폭풍을 우려해 묵살 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정몽준 대표를 '정계의 펠레'로 만드는 이들

 

집권여당의 대표의 처지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몰리게 됐을까. 문제의 일차적 원인은 한나라당에 입당한지 2년 밖에 되지 않는 정 대표의 당내 입지와 정치력이 너무 미약하다는 데 있다.

 

특히 당헌당규상 국회운영의 최고 권한은 원내대표에게 있어 정 대표로서는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안상수 원내대표가 비공개 석상에서 정 대표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올 만큼 둘의 관계는 껄그럽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 대표의 생각이 이명박 대통령과 다르다는 데 있다. 집권여당의 대표라도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게 상식이지만 정 대표에게는 그런 상식을 관철시킬 힘이 없다.

 

정 대표는 또 '친이 돌격대' 안상수 원내대표와 장광근 사무총장 사이에 끼어있다. 그런 정 대표의 말이 힘을 받는 경우는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지 않을 때 뿐이다. 정 대표의 미약한 당내 입지와 여당에 거수기 역할을 강요하는 이명박식 여의도 정치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집권여당의 대표를 한 없이 초라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결국 지금처럼 의회 내에서 '친이 돌격대'가 대통령의 뜻을 비호하고, 의회의 비판과 견제를 무시하는 대통령의 일방주의가 계속되는 한, 정몽준 대표의 말은 펠레의 그것처럼 '저주'가 될 수밖에 없다.


태그:#정몽준, #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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