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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3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펴낸 영문책자 <진실과 화해> 표지.
 지난해 3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펴낸 영문책자 <진실과 화해> 표지.
ⓒ 진실화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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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출신인 이영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취임 직후 전임 위원장 시절 발간된 영문책자의 배포를 중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영조 위원장은 최근 부서별로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지난해 3월 발간된 영문책자 <Truth and Reconciliation>('진실과 화해')의 배포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 위원장의 이같은 지시 배경에는 영문책자에 실린 전임 위원장의 글이 '편향적'이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진실화해위 측은 "신임 위원장이 취임한 것에 맞추어 새로운 영문책자를 발간하기 위한 사전조치"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위원회의 '보수화' 경향이 만들어낸 사건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 초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 출신인 이영조 위원장이 취임한 데 이어, 또 다른 뉴라이트 계열인 뉴라이트 싱크넷 상임집행위원을 지낸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정치외교학)도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됐다. 두 사람은 진보성향의 안병욱 전 위원장(가톨릭대 교수)과 김동춘 전 상임위원(성공회대 교수)의 후임으로 임명된 '뉴라이트 인사'들이다.

2000부 찍어 해외에 배포 중... 그런데 왜 배포 중단 지시를 내렸나?

진실화해위는 안병욱 위원장 시절이던 지난 3월 <Truth and Reconciliation>('진실과 화해')이란 영문책자를 발행했다. 3년간 이뤄진 진실화해위의 활동을 정리한 홍보용 책자였다.

앞서 위원회는 2008년 12월 <진실화해위원회 3주년 활동 현황>이란 자료집을 발간한 바 있는데, <Truth and Reconciliation>은 이 자료집을 영문으로 요약·번역한 것이다. 3명의 국내·외 인사가 번역에 참여했고, 3명의 외국인이 감수까지 맡아 발간됐다. 책자 발간에는 2130만 원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총 2000부를 찍어 국제기구와 과거사 연구 외국학자, 주한 외국공관, 외신 등에 배포해왔다. 위원회 측은 "처음 1000부를 찍었다가 외국인 방문자 등의 수요가 있어 추가로 1000부를 더 찍었다"고 밝혔다.

한국전쟁 시기 국군의 민간인 학살 장면을 표지로 장식한 영문책자에는 ▲ 위원회 소개 ▲ 조사 절차와 처리 ▲ 집단학살장소 발굴 등 기타 조사 활동 ▲ 결정사건 분석 ▲ 주요 성과와 향후 과제 등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영문책자에는 한글자료집에는 실려 있지 않은 글이 한 편 수록돼 있다. 안 위원장이 직접 쓴 'Historical Background of Korea's Past Settlement'('한국 과거사 해결의 역사적 배경')란 글이다.

진보성향인 안 전 위원장의 글에는 뉴라이트 출신 이 위원장의 눈에 거슬릴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이승만 정권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친일파 청산을 좌절시켰다'거나 '남한 정부가 한국전쟁 시기 재판 등 어떤 사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민간인을 학살했다', '박정희 정권이 한국 사회에 극우파시즘 정권을 도입했다'는 등의 내용이 대표적이다.

일제 식민지와 군부독재정권 등 '억압의 현대사'를 서술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평가한 안 전 위원장의 글은 건국과 산업화 등 이른바 '성공의 역사'에 더 주목해온 뉴라이트 시각과 정면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다.

책자 배포 중단은 '좌파정권 흔적 지우기'?... 위원회 측 "정치적 의도 없다"

 이영조 진실화해위 위원장.
 이영조 진실화해위 위원장.
ⓒ 진실화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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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책자는 이 위원장이 상임위원으로 재직 중일 때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발간됐다. 그럼에도 위원장에 취임한 직후 배포 중단을 지시한 것은 '뉴라이트의 좌파정권 흔적 지우기'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이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일 취임식에서 "그동안 제3자의 눈에 편향됐다고 비칠 소지가 있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며 진보성향 위원장 시절 이루어진 위원회 활동에 큰 불만을 나타낸 바 있다. 

하지만 박영일 홍보팀장은 "안병욱 전 위원장 글 때문에 배포 중단을 지시한 건 아니다"라며 "(3기 위원회가) 끝나는 시점에 영문책자를 새롭게 수정·보완해 배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새로운 영문책자에는 (안 전 위원장 글 대신) 이 위원장의 글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영조 위원장 취임에 맞춰 새롭게 영문책자를 발간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미 발간된 영문책자 2000부 중 1500부 정도가 배포된 상태여서 (배포 중단 지시에)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영조 위원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고려대·경희대 교수와 뉴라이트 성향의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 (사)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겸 소장 등을 지냈다.

이 위원장은 지난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의 경기 성남분당갑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하지만 2005년 12월 한나라당 지명을 받아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됐고, 이후 상임위원으로 다시 선임됐다.

상임위원으로 다시 선임된 이후 이 위원장은 조사 관련 3개 소위원회 중 하나인 '민족독립규명위원회'를 맡아 활동하다가 지난 2일 송기인(1대)·안병욱(2대) 위원장에 이어 3대 위원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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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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