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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면서 "<동의보감> 평가와 한의학 보는 두 시각"
이라는 부제의 글을 썼다. 이 한의학을 보는 두 시각이라는 것은 한의학을 비하하려는 두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양의사들이나 자연과학자들의 시각에서 한의학을 보았을 때 전근대적인 모습 또는 비과학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는 부분과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역사관으로 한의학을 보았을 때 중의학과 차별성없어 보이는 부분에 대한 해석의 문제를 언급한 것이다.

지난 연재에 25권 중 시작 부분에 두 권이나 할애가 된 <동의보감> 목차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이는 질병분류의 획기적인 발전이었을 뿐 아니라 이후 한국의 한의학에서의 질병분류에 대한 표준화 안으로 자리잡아 현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번 연재에서는 지난 연재와 마찬가지로 첫 연재 때 제기하였던 문제를 <동의보감> 속의 '집례(集例)'를 통해 살펴 보았다.

<동의보감>의 집례(集例)와 한국의학의 전통

동의보감 초간본의 총목차(우측면)와 집례(좌측면) 부분
 동의보감 초간본의 총목차(우측면)와 집례(좌측면) 부분
ⓒ 원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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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권 중 첫 두 권에 할애된 목차에 이어 세 번째 권에서도 본문이 막바로 시작하지 않고, '서(序)', '총목(總目)', '집례(集例)'와 '역대의방(歷代醫方)'이란 것들이 먼저 나온다. 서는 말 그대로 서문을 말하며, 총목은 두 권에 할애된 상세목차와 별도로 상위레벨의 목차를 적어둔 것이다.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폐단을 방지하려고 배려한 점이 인상적이다. 집례는 허준이 직접 쓴 문장으로 일러두기와 같은 글이다.

조선시대 의서들은 유학적인 전통에 따라 "있는 문장으로 기술하되 새로이 짓지는 않는다(術而不作)"는 저술방식을 유지하였다. 이런 의서들일수록 서문이나 집례 등의 생각을 읽는 것이 중요해진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의서를 간행하면서 본문 앞뒤에 덧붙이는 글인 서문(序文)이나 발문(跋文) 또는 집례(集例)와 같은 글에 자신들의 의학적 생각을 적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서문이나 발문에는 저술배경이나 사상, 출판에 기여한 사람들을 언급하기 마련이다. 중인(中人) 계층이 많았던 의학 분야에서 국가의 의서 출판사업의 책임자나 서문의 저자는 유학자 출신의 문장력 좋은 관료들이 맡곤 하였다.

실제로 <동의보감>의 서문은 조선중기 4대 문장가로 알려진 이정구가 지었고, <향약제생집성방>의 서문과 발문은 조선 최초의 문형(文衡=大提學, 당대 학문의 최고 권위자)인 권근이 쓴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의관인 허준이 서문 이외에 별도의 집례를 썼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공신의 반열에 올랐던 허준의 지위 때문이라고 생각되며, 덕분에 후학들은 허준의 의학사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허준의 한의학에 대한 문제 인식

허준은 집례를 통해 자신의 인체관, 처방 속의 약재 구성과 용량에 대한 규정, 의학을 공부하는 방법, 향약의 중요성을 서술하였고, 면면이 이어져온 조선의 의학전통을 계승한 자신의 의학을 '동의(東醫; 동방의 의학)'라고 선언하였다.

처방 속의 약재 구성과 용량에 대한 것은 현재의 한의학에 던져진 '표준화'라는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동아시아의 전통의학은 허준 이전 시기까지 문자화된지 이미 천 년이 넘었고, 그 사이에 많은 국가들이 없어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동안 발전해온 의학이다. 뜻 글자인 '한자(漢字)'의 특성으로 오랜 세월동안 같은 문장으로 비슷한 뜻이 통하기는 하였지만, 어디까지나 비슷할 뿐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사용하던 도라지가 중국 의서에 기록된 '길경(桔梗)'과 비슷한 것인가 같은 것인가 완전히 다른 것인가? 당나라 때의 의서에서 기록한 한 돈[錢]이라는 도량형이 허준이 살던 시기인 명나라나 조선에서 사용되는 것과 같은 무게를 갖는가 다른가? 이러한 의학에 대한 문제 의식은 조선 땅에서 의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이었고,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향약의학(鄕藥醫學)'에서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허준은 이러한 문제 인식 속에서 중국에서 만들어진 처방이라 하더라도 약재의 구성 및 용량에 대한 규정을 모두 새롭게 표준을 제시하였고, 그에 대한 언급을 집례에서 하였다.

본문의 처음에 나오는 신형장부도가 보인다. 신형장부도 앞에는 서문, 총목, 집례, 역대의방이 나온다.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소장 동의보감 본문의 처음에 나오는 신형장부도가 보인다. 신형장부도 앞에는 서문, 총목, 집례, 역대의방이 나온다.
ⓒ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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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표준화로 400년의 생명력 확보

<동의보감>이 간행된 이후 한의학은 중의학과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한의학과 중의학의 갈림길은 바로 <동의보감>에서 정의내린 처방 속의 약재 구성, 용량 및 질병분류 방안에서 시작된 것이다.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동의보감> 등을 조선 정부에서 간행하면서 한의학에서는 개별 의사들 간의 논쟁보다는 국가적 수준의 표준화가 진행되었다.

반면 중의학에서는 명나라가 시작하기 전부터 국가 출판보다는 개별 의사들에 의한 출판이 늘어나면서 기술보다는 이론 중심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가 열렸다. 표준화와 다양성은 학문의 성장과 발전의 양대 축이고 모두 필요한 것들이다.

이러한 양국 간의 의학사적인 흐름과 국가 출판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여 중국의 의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멋지게 펼쳤는데 한의학에서는 독특한 주장이 없어서 발전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의학은 철학이 아니다. 이론에 대한 토론도 중요하지만 실제적인 기술과 그 적용 과정이 더욱 중요한 학문이다.

21세기 한의계에 던져진 가장 큰 화두는 표준화이다. 현재 한국한의학연구원과 12개 한의과대학, 대한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표준화된 연구와 교육 방안에 대해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멀지 않아 <동의보감>을 너머 현대화된 한의학의 표준화 방안을 마련하여 새로운 400년의 생명력이 확보되길 기다려본다.


태그:#한국의학사, #동의보감, #한의과대학, #한의학연구원, #표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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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주)민족의학신문사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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