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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성당과 가톨릭 교회들이 도시 곳곳에 웅자를 자랑하는 로마. 오늘은 로마 땅에 번성했던 로마신화의 남은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톨릭이 고대 로마에 들어오기 전, 로마에는 수도 없이 많았던 신들에 대한 신전들이 있었다. 그 신전들 중엔 성당으로 변용되어 사용되는 곳이 많지만 신화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성당 내부 곳곳에는 로마신화 속 신들이 자리 잡았던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을 것이다.

고대 로마의 신전을 보기 위해 많은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 판테온 입구. 고대 로마의 신전을 보기 위해 많은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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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로마 신화의 신전들이 많이 세워졌던 곳은 포로 로마노(Foro Romano)와 캄피돌리오(Campidoglio) 언덕 북쪽의 또레 아르젠티나 광장(Largo di Torre Argentina), 미네르바 광장(Piazza Della Minerva) 부근이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로마의 신전을 대표하는 것은 미네르바 광장 북쪽의 판테온(Pantheon)이다. '모든 신의 신전', '만신전'이라고 불리는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판(Pan)'과 신을 뜻하는 '테온(Theon)'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다. 이 신전은 모든 신들에게 바쳐진 신전이었다.

한낮의 밝은 태양 아래에서 다시 만나게 된 판테온은 거대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원통 모양의 본 건물 앞에는 코린트 양식의 16개 원통기둥으로 이루어진 돌출랑(突出廊)이 이곳이 로마의 신전임을 웅변하고 있었다. 신전 입구의 열주 위에는 이 건축물을 규정하는 라틴어가 커다란 간판 글자같이 박혀 있었다. '집정관을 세 번 역임한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이 건물을 지었다(M.AGRIPPA.L.F.COS.TERTIVM.FECIT)'고 적혀 있다.

코린트 양식의 기둥들이 이곳이 로마시대의 신전임을 알려준다.
▲ 판테온. 코린트 양식의 기둥들이 이곳이 로마시대의 신전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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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읽었을 이 글귀를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아그리파가 이 거대한 판테온을 건설했다고 해서 후대의 사람들이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은 기념비적인 건물 앞에 꼭 자기 이름을 박아 넣으려는 강박관념을 가진 어린이들 같다. 자기의 이름을 후대에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다지도 크게 표현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는 법이다.

신전 모양의 구조물 뒤로 둥근 원형의 로마시대 신전이 나에게 다가섰다. 잡스럽지 않고 시원스런 외형은 신전을 더욱 신비하게 보이게 하고 있었다. 원형의 판테온 본당 외부에는 아무런 장식도 붙어 있지 않지만 판테온이 지어질 당시에는 지붕이 온통 금으로 도금되어 있었다. 로마에 가톨릭이 융성하기 시작하자 교황들은 이 금을 벗겨다가 성당 건립에 사용했다고 한다.

가톨릭이 국교가 된 이후 로마의 신들을 모시던 신전들은 미신숭배를 하는 곳이라고 하여 철저하게 훼손되었다. 판테온 입구의 정문도 통째로 떼어가서 베드로 성당에 있는 천국의 계단이 되었다. 그래서 판테온의 화려했던 장식들은 로마 시내 여기저기의 성당들에 녹아들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얼핏 온전해 보이는 판테온 신전은 로마의 역사 속에서 여기 저기 상처가 난 상태이다.

누가 그 수를 정확히 다 세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신교를 믿었던 고대 로마인들은 30만이나 되는 신을 숭배했다고 한다. 서기 전에 건설된 판테온 내부의 벽면에는 작은 방인 벽감(壁龕)이 있고 이 안에 로마의 위대한 신들이 모셔져 있었다. 제우스와 아폴론, 아르테미스 등 로마 신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신들이 포즈를 잡고 있었다. 시원스럽게도 탁 트인 공간 속에서 각 신들이 비례와 균형을 맞추던 곳이었다. 7개 벽감 속에 신성한 로마의 신들이 담겨 있었을 만신전의 모습은 경이롭지 않았을까?

나는 판테온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360도로 내 몸을 돌리면서 신상이 있던 벽감을 둘러보았다. 벽감 안에는 로마신들의 조각 대신에 가톨릭 성자들의 조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판테온이 609년 이후부터 가톨릭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가톨릭의 조각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로마시대의 여신상을 다시 조각하여 성모상을 만들었다.
▲ 판테온 성모 마리아상. 로마시대의 여신상을 다시 조각하여 성모상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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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상대로 로마 신전의 흔적은 강하게 남아 있었다. 내 눈을 잡아 끈 것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이었다. 성모 마리아 하반신의 옷 주름이 어디선가 많이 눈에 익은 모습이고 성모와 예수 조각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성모상에서 그리스 여신의 분위기가 물씬 흐르고 있었다. 성모 마리아 하반신의 옷 문양은 로마 신들의 옷자락 문양이고 그 하반신은 아마도 아르테미스 여신의 아래 부분이었을 것이다. 판테온 내부의 로마 신화가 가톨릭 신앙으로 고쳐서 조각된 것이다.

나는 판테온의 천장 부분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가톨릭 성직자들이 이 판테온에서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기둥 하나도 받치지 않고 판테온 높이의 절반을 쌓아 올라간 직경 43m의 돔이다. 가톨릭을 대표하는 베드로 성당의 돔보다도 큰 거대한 크기의 돔은 현대에도 만들기 어려운 불세출의 명작이요 로마인들이 남긴 공학적인 성과이자 기적과 같은 건축물이다.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거대한 돔의 무게를 2천년이 지난 세월 동안 튼튼히 받치고 있는 판테온의 벽체가 의문이었다. 길이 6m의 벽체가 돔을 기둥 없이 받치고 있었고 벽면은 압력과 무게를 줄이기 위해 돔의 위쪽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고 있었다. 꼭대기 벽의 두께는 1.5m에 불과했다. 아무리 벽을 튼튼히 짓는다고 해도 기둥 없는 돔이 2천년의 시간 동안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불가사의였다.

돔은 아름다웠다. 마치 벌집 같은 정방형의 홈이 여러 개 모여 돔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신화시대의 판테온 돔 내부는 더욱 아름다웠다고 한다. 천장의 격자무늬 사각형 내부에 각각 화려한 청동장식이 있었다고 한다. 막연히 청동장식이라고 하니 어떤 모양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 가톨릭 시대인 17세기에 이 장식들은 교황의 명령으로 모두 바티칸 성당으로 잡혀갔다고 한다.

돔 중앙 구멍으로 들어온 햇빛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 판테온 오쿨루스. 돔 중앙 구멍으로 들어온 햇빛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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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대 로마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돔의 크기에 놀랐다. 그리고 그 돔에 뚫린 지름 8m의 거대한 원형 구멍, 오쿨루스(Oculus)를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눈이라는 뜻의 오쿨루스는 자연스러운 채광의 역할과 함께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지식 가이드의 원형 구멍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다시 한 번 놀랐다. 돔의 한가운데를 뻥 뚫어놓은 구멍에는 심오한 과학적 고찰이 담겨 있었다.

"돔의 정상에 태양을 상징하는 구멍이 뚫려 있지만 판테온 내부에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에는 비가 오더라도 구멍으로 빗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판테온 내부의 막힌 공간에서 상승하는 더운 공기로 인한 압력 차이 때문에 빗물은 구멍으로 들어오지 않고 구멍 옆으로 지나가거나 자연증발하게 되는 거죠. 하강하려는 빗물의 무게보다 상승하려는 공기의 압력이 더 높은 것입니다. 결국 상승한 더운 공기는 구멍 밖으로 나가는 대류현상이 일어납니다. 거대한 돔 하나로 이루어진 판테온에서 공기가 통하는 곳은 천장의 구멍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건물들에 비해서 공기가 상승하려는 압력이 무척 셉니다. 2천 년 전 건축물에 이러한 과학적 진보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나는 무엇보다도 거대한 돔의 한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버릴 생각을 했던 로마시대의 건축가들의 발상이 참으로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식 가이드의 설명은 약간 부족했다. 지금 비가 오지 않아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판테온 내부에 사람이 많이 있을 때에도 빗물은 판테온 내부로 들어올 것이다. 빗물이 오쿨루스 내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판테온이 불을 지속적으로 피우던 고대 신전의 기능을 했을 때에 그랬다는 것이다. 현재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빗물이 판테온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나는 실제로 비가 오는 날에 이 판테온 구멍 아래에 서 보고 싶었다.

거칠게 없는 시원스런 공간배치가 뛰어나다.
▲ 판테온 내부. 거칠게 없는 시원스런 공간배치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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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의 벽면에는 빛이 들어오거나 환기를 시킬 만한 창문도 전혀 없었다. 신전 머리 위의 태양은 이 거대한 돔 정상의 원형 개구부를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었다. 찬란한 햇빛의 줄기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건물의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고 있었다. 분명히 저 태양빛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도 건물의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신비롭고 신성한 분위기가 신전 내부를 휘감아 돌고 있었다. 아니 신성하다기보다는 신령한 무언가에 홀린 듯한 장엄함이 이곳에 있었다.

이 구멍으로 달빛이 스며들어온다면? 그것도 아무도 없는 판테온 내부에서 홀로 달빛의 소나타를 감상한다면? 판테온 달빛아래에서 이 무아지경을 체험하고 넋이 나간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르네상스 3대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1483~1520)였다. 그는 유리 진열장 안에 안치된 채로 성모 마리아 조각상 바로 아래에 잠들어 있었다.

라파엘로는 판테온의 달빛을 보며 무아지경을 경험했다.
▲ 라파엘로의 석관. 라파엘로는 판테온의 달빛을 보며 무아지경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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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판테온의 아름다움과 완벽함에 반했던 라파엘로는 자신이 죽으면 판테온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대화가 라파엘로가 이 만신전에 몸을 눕히고 있다는 사실이 자못 흥미로웠다. 천재성을 인정받던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가 로마신화 시대의 건축물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것이다.

어느 달빛 비치는 밤이었을까? 그는 밤에 판테온 안에 들어와 무아지경을 경험했다. 당시는 판테온 내부의 청동장식이 바티칸 성당으로 뜯겨 나가기 전이었다. 달빛은 판테온 내부를 옮겨 다니며 청동장식을 만났을 것이다. 그 청동장식은 달빛을 받아 어슴프레 빛나다가 다시 달빛의 진행에 따라 어둠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정말 달이 밝은 달에는 청동장식이 눈이 부시게 서로를 비추었을 것이다.

라파엘로는 이 영묘에 누워서 만신전에 가득했던 로마 신들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그는 제우스 신과 아폴로 신을 만나 그들을 화폭에 담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이곳은 신들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 신들의 공간 속에서 천재가 누워 무아지경을 경험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탈리아, #로마, #판테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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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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