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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난 날은 늦은 봄을 지나 여름 문턱에 발을 내딛는 때였다. 그가 "운명이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을 때 내 마음은 얼어붙었고, 심장은 어떻게 뛰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얼어붙었던 마음이 채 녹지도 않았는데 북녘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몸마저 얼어붙었다. "운명이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그가 쓰다만 회고록을 2009년이 저물고 있는 이 때 한 장씩 넘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못다 쓴 <성공과 좌절>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성공'보다는 '실패'와 '좌절'를 말한다. 한 나라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랐다면 '성공'한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은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지"만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성공과 영광의 기억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의 기억들이다"고 자신의 삶을 평가했다.

 

삶을 놓기 며칠 전에 쓴 글이니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정리한 후에 한 글이라 읽는 순간 마음 한 켠이 아프다. 특히 "정치를 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나의 목표는 분명히 좌절이었다"고 말하면서 "시민으로 성광하여 만회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부끄러운 사람이 되었다고 말았다"는 글에는 살이 타들어가고, 뼈가 녹는 아픔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그에게 정치인으로서 실패와 좌절은 용납할 수 있겠지만 시민으로서 '부끄러운 사람'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얼마 후 그는 삶을 놓았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이는 자신을 부끄러운 사람으로 평가하는 노무현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어느 권력이 자신의 삶을 부끄럽다고 순순히 인정했는가.

 

그리고 노무현은 자신의 삶을 실패와 좌절이지만 진보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희망의 끈을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민주시민으로서 자신을 삶을 살아가라고 촉구하고 있다.

 

"나의 실패를 진보의 좌절, 민주주의의 좌절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고는 역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할 일 있고, 역사는 자기의 길이 있다."(17쪽)

 

그렇다. 수구세력은 끊임없이 노무현을 비롯한 민주세력의 작은 흠집을 엄청나게 큰 것으로 키우면서 민주세력을 무능하면서 부패한 집단으로 매도한다. 그리고 지난 2년 이명박 정권은 모든 공권력을 다 동원하여 민주시민을 옭아매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을 짓밟았고, 시민들 목소리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벽창호가 따로 없었다. 벽창호 앞에 민주시민들을 좌절하고, 어쩔 수 없다는 절망을 하고 있다. 민주세력은 이 절망에서 이겨내야 한다.

 

19쪽 '사죄의 글로 쓰려고 한다'는 부분에서 노 전 대통령은 "부끄러운 시민으로 사죄하고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삶을 놓았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그가 삶을 놓치 않고, 계속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통곡을 했을까? 답은 의외로 쉽다. 우리는 그가 살아있을 때 한 순간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자신을 한 순간도 놓아주지 않는 언론을 향해 "정말 언론은 사회의 공기일까? 정도를 넘으면 흉기가 된다. 카메라도 볼펜도 사람도 생각도 흉기가 된다 … 텔레비전을 보면서 항상 생각해보던 일이지만 남의 일이 아니고 내가 당해보니 참 아프다"면서 "제 집 안뜰을 돌려주기시바랍니다"고 절규했다.

 

우리는 그를 이렇게 떠나보냈다. 그를 떠나보낸 후 후회하고 통곡한 우리들, 그럼 그가 좌절과 실패했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는 '참다운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가 좌절했다.

 

참다운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란 인민이 주권자로서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시장권력)은 서로 견제하면서도 항상 인민이 주권자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용납하기 싫어한다. 이를 견제하는 힘은 선거에서 나온다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이다.

 

"선거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주권자는 정치권력과 시장권력 아래에서 지배받는 개인이 될 수도 있고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조정할 수 있는 상위 주권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는 민주주의 미래입니다."(273쪽)

 

민주주의 미래가 선거에 달려있다는 그의 주장은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얼마나 옳은 진단인지 알 수 있다. 인민 위에 정치권력과 시민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사람이 준중받지 못하는 세상, 그곳은 희망이 없는 곳이다. 2009년 현재 정치권력의 현주소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 일을 민주세력이 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에 남은 한 글귀가 있다. 마음이 아프고, 다른 어떤 글보다 가슴을 찔렀다.

 

"대통령 자리가 뉴스를 보기에 힘든 자리입니다. 이제는 좀 살만해지겠지요(웃음)"(162쪽)

덧붙이는 글 | <성공과 좌절> 노무현 지음 ㅣ 학고재 펴냄 ㅣ 15,000원


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

노무현 지음, 학고재(2009)


태그:#노무현, #회고록,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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