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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학점관리와 스펙쌓기에만 치중하는 구태의연한 삶을 벗어던지고 패기있는 시도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20대 30대의 청년들을 연속해서 인터뷰 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일상을 살고 있는 20대 30대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새로운 자극과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기자 주>    
 

 

<한겨레신문>이나 <시사IN>을 주로 보는 사람들에게 '김현진'이라는 이름 석 자는 낯설지 않다. 그녀가 쓰는 고정 칼럼의 매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칼럼 박스 안에 새겨진 흔치 않은 탁월한 외모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김현진을 인터뷰한다고 주위의 지인들에게 얘기하니 인터뷰에 따라 가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사람(남자)도 있을 정도다. 지난 9일 홍대 앞 카페에서 김현진씨를 만났다.

 

다이어트 때문에 단식농성했다고요?
 

나이 마흔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81년생인 김현진씨는 아직 마흔이 훨씬 안 돼서인지 외모 때문에 오해를 좀 사는 것 같다.

 

"단칸방에서 부모님과 셋이 살고 있어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익숙하다는 의미일 게다. 사진 속의 교양 있고 도도한 갑부 집 막내딸 이미지는 단번에 박살난다. 사실 그녀가 18살 때 쓴 책 <네 멋대로 해라>에서는 지긋지긋한 가난에 대한 생채기가 곳곳에 스며있다. 웬만한 여자 아이라면 하나씩 가지고 있는 인형이 없어서 한숨짓던 18살의 소녀는, 어느덧 인형이 없는 현실을 아무런 감정적 동요 없이 씩씩하게 얘기하는 28살의 여성이 되었다.

 

"저는 한 번도 제가 진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어요. 그냥 저 자신이 사회적 약자라서 그런 입장을 취했어요. 저는 무직이죠, 여자죠, 무산계급이죠, 철거민이었죠, 지금은 철거될 집도 없군요. 하하. 저는 그냥 제 계급의 입장을 대변할 뿐이에요."

 

일간지와 주간지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책도 여러 권 낸 저자가 왜 돈이 궁하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몇 권의 책을 쓰고 매체에 기고를 하는 필자가 김현진씨를 대신해서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그런 일들로는 생활비는 고사하고 용돈벌이조차 쉽지 않다고. 믿거나 말거나.

 

"한국에서 여성이 외모로 이득을 보려면 성가대 반주자 같이 예뻐야 해요. '나는 내 외모로 아무런 수작도 안 할 것이고, 너를 함정에 빠뜨리지 않고...' 이런 교회누나 성당누나 이미지가 아니고서는 이득을 볼 수 없죠."

 

일부러 초장부터 불편한 질문을 했다. 외모 때문에 손해 본 일 없냐고. 곧바로 이런 대답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을 보면, 정말 갑부집 막내딸 같은 외모 때문에 오해와 편견을 많이 받은 듯했다. 하긴, 비정규직 문제로 장기간 파업을 했던 기륭전자의 단식투쟁에 결합해서 무려 몸무게가 10kg이상 줄어들 정도로 치열하게 단식을 했을 때도 다이어트 때문에 참여한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20대에는 연애서를 꼭 쓰고 싶었다"

 

그녀의 얘기를 듣다보니 왜 28세의 그녀가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라는 제목으로 연애서를 출간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필자도 김현진이라는 사람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쓰는 칼럼의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녀는 '운동권'이나 '활동가'일 것이라고 진작 낙인 찍고 있었다. 그래서 연애서를 출간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좀 의아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단어와는 관계없이 단지 자신의 감정 흐름에 충실하게 살아왔다. 막장으로 치닫는 교육환경에 맞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기도 하고, 비정규직 문제에 분노해서 단식투쟁에 참여하기도 하고,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에 분노해서 길거리로 나서는 등 그녀는 분노해야 할 때에 분노했다. 마찬가지로 그녀는 20대의 여자로서 사랑을 고민해야 할 시기에 치열하게 사랑을 고민했고,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는 바로 그러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직접적 간접적 경험을 담은 책이다.

 

"20대에는 꼭 쓰고 싶은 책이었어요."

 

단순히 연애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는 말일까? 아니면 연애에 관한 책을 쓸 만큼의 역동적이고 치열한 20대를 보내고 싶다는 뜻일까? 김현진씨의 진심이 무엇이든 간에, 그녀가 28살이 되는 해에 책은 나왔다. 물론 김현진의 연애론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만.

 

그녀는 주로 몇 권의 책의 저자와 에세이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게임 만드는 회사에서 시나리오를 담당하는 일을 맡은 회사원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그녀는 멋진 게임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단다.

 

"2001년에 플레인 스케이프 토먼트(PLANE SCAPE TORMENT)라는 롤플레잉 게임을 했는데요. 엔딩을 보고 펑펑 울었어요. 정말 스토리가 대단했거든요. 나도 이런 걸 해야지 생각했습니다. 요즘에는 온라인 게임이 대세입니다. 그래서 온라인 게임에 스토리 라인을 부여하고 싶은데요. 온라인 게임 대부분이 음성적으로 형성된 아이템 판매 위주로 돌아가서 스토리 라인을 만들기가 어려워요. 게임 제작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바로 결과가 나와야 하고요. 게다가 한국의 게임 회사는 인력 교체가 굉장히 빠르고 이직도 많습니다."

 

하지만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이상과 음성적 아이템 판매 위주로 돌아가는 현실 사이의 갈등은 역시 극복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을 대는 사람이 주인이다. 시나리오 작가의 자유는 자본을 댄 주인이 친 울타리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김현진씨는 이와 비슷한 문제를 이미 다른 분야에서 경험했다. 그녀가 시나리오 담당한 영화 <언니가 간다>는 전국 18만 8천명의 저조한 흥행성적을 남겼다. 그녀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던 것 같다. 영화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녀는 내내 아쉬움을 비친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 김현진씨의 결론은,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온전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작업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바로 소설이다.

 

가난해도 쫀쫀하게 살진 않을 거야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 시나리오는, 결국 영화작업을 하려면 남의 돈으로 해야 하니까요. 게임 시나리오도 그렇고요. 내가 내 몸뚱이 하나 투자해서 온전히 할 수 있는 일은 소설밖에 없더군요. 대신 빤한 소재의 얘기 말고 먹고 사는 것에 관한 얘기를 다루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같은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을 써보고 싶네요."

 

김현진씨는 소설 창작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자신이 채워야 할 빈 곳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작년에 촛불 집회와 비정규직 투쟁, 철거민 투쟁에 결합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죠.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런 질서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 자신이 너무 무식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 하반기에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리영희 선생님 인터뷰를 맡게 돼서 선생님의 저작들도 독파하고요. 전에는 전공과 관련이 없어서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안 봤는데 요즘에는 많이 읽고 있어요."

 

81년생 김현진씨의 현재 모습은, 어쩌면 앞으로 살아야 할 인생의 길이만큼이나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 존재할지 모른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김현진씨의 아직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크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식하고 채워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모습처럼 그녀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만간 <남쪽으로 튀어> 같은 멋진 소설 한 편을 접할지도 모르겠다. 이러건 저러건 가난해도 쫀쫀하게 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매력적인 모습이다.

 

덧붙이는 글 | 주변 분들중에 단순히 취업준비와 스펙쌓기를 넘어서 도전적인 삶으로 희망을 일구어나가는 20대 30대의 청년이 있다면 이메일 reltih@nate.com 로 추천해주세요.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태그:#김현진,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에세이스트,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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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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