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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한가함이 무르익는 지난 11월 말 주말. 서울 이촌동 녹음실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모인 회원들. 서로가 아는 사람도 있는 반면 처음 대면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어떤 일이기에 여유로운 주말을 포기하고 좁고 답답한 녹음실을 찾은 것일까? 그 이유는 이 자리를 주최한 엄현우씨에게 들을 수 있었다.

"고인이 되신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앨범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답으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목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시민들 자발적 참여로 만드는 노무현 대통령 추모앨범

앨범기획자
▲ 엄현우 앨범기획자
ⓒ 홍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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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현우씨의 직업은 음향 엔지니어다. 말만하면 알 법한 앨범들을 작업한 프로 엔지니어, 그가 이러한 작은 소동을 일으킨 동기는 촛불문화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촛불문화제 당시 문화제 응원을 위해 김장훈, 이한철씨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왔었어요. 그때 느낀 거죠, 이제는 문화로 저항할 때다!"

그 이후 개인적인 시간을 쪼개어 '민주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앨범 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른할 줄만 알았던 토요일 아침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비보는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고 한다.

"그 날 이후 앨범의 제작 방향을 노무현 대통령 추모로 바꾸게 되었어요. 비단 그리움에 사무친 추모가 아닌 그 분의 뜻을 조금이라도 실현시킬 수 있는 추모앨범으로 말이죠."

대답을 이어나가는 그의 얼굴엔 미소가 머금어 있었지만 의지 가득한 눈빛은 그의 신념을 너무나도 절실히 외치고 있었다. 추모라는 이름을 사용한 앨범들은 조금만 찾아보면 민중가요나 다양한 언더 가수들도 많이 제작되었다. 과연 제작하고 있는 앨범이 그런 앨범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말씀하신 대로 추모라는 타이틀을 가진 앨범들은 상당히 많아요. 하지만 단지 추모라는 의미만 함축하였을 뿐 정작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실현시키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누구나 기타 하나들고 혼자서 연주하고 노래 부르고 컴퓨터로 녹음하면 조그만 미니앨범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만들고 있는 음반은 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닌 아티스트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지고 있어요. 오늘도 시민들의 녹음을 위해 모인 자리구요."

엄현우씨의 대답을 듣고 비로소 그 자리의 성격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녹음을 할 때마다 부스에서 연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사람, 방송국에서 볼 법한 촬영 장비를 세팅하고 촬영 중인 사람, 녹음을 준비하고 서포트 해주는 사람,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모두가 자발적인 참여로 그 자리에서 함께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이 진정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아닐까요?"

엄현우씨의 한 마디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젠 문화로 투쟁할 때"... 자금은 어떻게?

앨범의 대부분을 시민들의 참여와 봉사로 진행되었다.
▲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지는 추모앨범 앨범의 대부분을 시민들의 참여와 봉사로 진행되었다.
ⓒ 홍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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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 가는 앨범, 좋다, 이보다 좋은 취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결과물은 그에 상응하는 재화를 필요로 하는 것이 법칙이다. 현실적으로 CD하나 만드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엄현우씨에게 추모 앨범에 대해 물었다.

앨범작업의 대부분은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제작하고 있다. 누구하나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의견을 내고 토론하여 결론을 도출하여 진행한다.
▲ 의견조율 앨범작업의 대부분은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제작하고 있다. 누구하나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의견을 내고 토론하여 결론을 도출하여 진행한다.
ⓒ 홍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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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형태의 곡들로 구성이 되며 곡들이 전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번 앨범은 총 4곡의 구성으로 제작이 됩니다. 추모앨범을 위해 한동준씨와 이한철씨가 작곡을 해준 '강물처럼'과 '불꽃' 그리고 앨범의 의미에 부합되는 추가적 2곡의 구성으로 되어있어요.

한동준씨가 작곡하신 '강물처럼'은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자주 쓰시던 글귀인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물처럼'이라는 글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곡이에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그 분께서 보이신 신념을 이루겠다는 염원을 담았어요.

그리고 이한철씨가 작곡과 보컬까지 도와주신 '불꽃'은 역동적인 느낌의 곡이에요. 이 곡에서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개인의 생각과 신념을 당당하게 외치자고 말하고 있어요. 자기의 소리를 당당히 외칠 수 있을 때 참여로서 피어나는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두 곡 모두 각각의 의미를 담고 만들어졌어요. 그 외 두 곡의 노래 역시 또다른 의미를 담고 있어요. 아직 그 두 곡은 말씀 드릴 수가 없지만 들어보시면 어렵지 않게 그 곡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시민뿐 아니라 많은 아티스트들도 참여하여 앨범제작을 도와주었다. 사진의 왼쪽부터 이한철, 이정열, 하림, 박성호님.
▲ 앨범에 직접 참여하는 아티스트들 시민뿐 아니라 많은 아티스트들도 참여하여 앨범제작을 도와주었다. 사진의 왼쪽부터 이한철, 이정열, 하림, 박성호님.
ⓒ 홍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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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비는 어떻게 해결하는 건가.
"이번 앨범은 단 3000장만 제작이 될 거예요. 완벽하게 한정판으로 말이죠. 그리고 앨범을 제작하는데 발생되는 비용은 시민들의 참여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래를 불러주신다거나 디자인을 도와주시는 등의 참여도 가능하지만 시민 스스로가 제작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 시민들의 모금이나 투자로 제작된다는 건가.
"아닙니다. 이번 앨범은 철저히 비영리를 목적으로 제작하고 있어요. 단 앨범 제작자로서의 참여는 가능해요. 앨범을 구매하시는 분들 모두가 제작자가 되는 거죠. 앨범 한 장 당 1만원의 제작비를 보태는 거예요, 앨범의 목적상 '구매'라는 단어는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게 참 어려워요."

엄현우씨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 사운드 엔지니어로서의 삶에선 생각지도 않았던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그에겐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참으로 생소한 고민거리인 듯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모금으로 개재된 추모광고의 모습. 노무현대통령이 생전에 쓴 글귀를 인용한 광고가 인상깊다.
▲ 노무현대통령 추모광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모금으로 개재된 추모광고의 모습. 노무현대통령이 생전에 쓴 글귀를 인용한 광고가 인상깊다.
ⓒ DVDPRIME 추모광고진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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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범을 기획하고 만드는 시간이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진행을 하며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했으며 앞으로 완성이 되기까진 어느 정도의 기간이 남았나?
"앨범을 최초 기획하고 주변의 아티스트들을 비롯한 세션들,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까지 수개월간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요. 그간 이 일을 하면서 다양한 일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도움도 받게 되고 많은 응원과 따가운 질책도 받았어요. 더불어 지금 하고 있는 일 만을 바라보시고 약 1000명 정도 되는 분들의 제작 참여가 있었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지금 작업은 막바지랍니다. 오늘의 녹음이 끝나면 거의 모든 음악적 작업은 완료된다고 볼 수 있어요. 이제 디자인과 실질적 제품의 생산이 남은 거죠. 약 12월 중후반이면 완성이 될 거 같아요. 지금 작업하고 있는 음악들과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은 다음카페 '문화예술로 알리는 시민의 소리'에서 볼 수 있어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구경 오세요."

분주한 녹음작업 중 짧게 나눈 그와의 대화에서 지금껏 앞을 가로막았던 어려움과 참여로서 도움을 준 시민들에 대한 고마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그가 살아생전 주창한 참여로 실현되는 민주주의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작은 불꽃이 되어 타오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앨범은 3000장만 제작하지만, 3000장이 모두 소진된 뒤에는 앨범에 실린 음원들을 카페를 비롯한 여러 커뮤니티에 무료로 올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앨범을 소장하는 것은 실물 소장이란 기념적 행위일 뿐이고 음원은 자유롭게 가질 수 있게 하고 싶다고 합니다.



태그:#노무현, #촛불, #추모앨범, #엄현우,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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