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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내리는 토요일 아침 계룡산 자락의 집 거실에서 작업복을 수선하기 위해 어머님께서 물려주신 재봉틀을 사이에 두고 나와 집사람이 마주 앉았다.
▲ 마당과 도예촌의 설경 함박눈이 내리는 토요일 아침 계룡산 자락의 집 거실에서 작업복을 수선하기 위해 어머님께서 물려주신 재봉틀을 사이에 두고 나와 집사람이 마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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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계룡산 자락에 자리한 나와 집사람이 사는 동내는 조용하고 한적하다. 아니 주말에는 약간 북적거린다. 옆 마을 도예촌 때문이다.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노란 유니폼을 입고 도자기를 만들면서 쫑알거리는 유치원 애들 소리는 마치 병아리 소리 같아 시끄러우면서도 들을 만하다. 소나무 가지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 소리 같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많이 이용된다. 한적하지만 역동하는 힘이 느껴지는 마을이기도 하다.

오늘은 주말이지만 아침부터 내리는 함박눈 때문인지 시간이 멈춘 듯하다. 마당에 나가 도예촌을 건너다 보았다. 무성영화 같은 적막에 싸여있고 인적이 끊어졌다. 눈 덮인 산골아침의 평화다.  

도보 일주 계획도 잊었는지 꺼내든 재봉틀

장모님이 신혼시절 사용한 재봉틀이다. 최근에는 별로 사용할 일이 없어 아파트를 새로 옮기시면서 맛딸에게 물려주신 집사람 보물이다.
▲ 어머님의 재봉틀 장모님이 신혼시절 사용한 재봉틀이다. 최근에는 별로 사용할 일이 없어 아파트를 새로 옮기시면서 맛딸에게 물려주신 집사람 보물이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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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은 해지고 낡은 작업복을 모아 둔 옷 보따리를 들고 거실로 나온다. 나에게는 옷 방 한 켠에 있는 재봉틀을 들고 나오란다. 차분히 내리는 함박눈 때문인지, 일주일 전부터 몇 차례 다짐을 받아온 계족산성 도보일주 계획을 잊은 것도 아닐 텐데 찢어지고 해진 작업복을 수선할 채비를 서두른다.

10여 년 전 아파트를 옮기면서 장모님은 본인이 사용하셨던 몇 가지 물건들을 원하는 자식들에게 물려주셨다. 집사람은 재봉틀과 놋화로를 받았다. 대대로 물려온 놋화로가 있지만 어머님의 손 때가 묻어 있는 재봉틀에 밀린다. 재봉틀은 집사람에게 아주 소중한 물건이다.

"여보! 이까짓 것들, 일 이 만원이면 살 수 있을 텐데, 조잡 떨면서 수선해야 하나?"

불만을 털어놨더니, 신발장을 열어보란다. 신발장은 집사람이 겨우살이를 위해 정리한 덕분에 단정하고 깨끗하다. 그러나 신발들이 빈 틈 없이 이중 삼중으로 겹쳐있다. 한두 번 신고 방치한 신발, 각종 등산화, 작업화, 운동화들이다. 그 위로는 산책할 때 필요한 장갑과 모자가 가득하다. 생각보다 많다.

등산할 때 신발은 중요한 장비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철 따라 용도 따라 구색을 갖추다 보니 10켤레가 넘는다. 기능성 등산모자나 장갑도 정도를 넘었다. 옷 방에도 갖가지 옷이 걸려있지만 절반 이상이 입지 않은 옷이다. 또 무엇을 사겠다는 소리가 '쭈욱' 들어간다. 별 생각 없이 행한 업보가 쌓이면 이럴 것이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까짓 것들, 일 이만원이면 살 수 있을텐데"

발틀은 혼자서 옷을 깊는 작업이 가능했지만 손으로 돌리는 재봉틀로 바지의 무릎부분을 수리하기위해서는 한사람은 잡고 한사람은 손틀을 돌려야했다.
▲ 재봉틀 앞의 나와 집사람 발틀은 혼자서 옷을 깊는 작업이 가능했지만 손으로 돌리는 재봉틀로 바지의 무릎부분을 수리하기위해서는 한사람은 잡고 한사람은 손틀을 돌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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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산에서 일하다 보면 나뭇가지나 가시넝쿨 등 날카로운 것에 걸려 옷이 찢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바지이다. 많은 작업복이 필요하다. 수선하지 않고 있는 옷으로 작업복을 만들어 입다 보니 새로 작업복을 사야 할 필요가 생겨 사 입었다. 그러나 평소 입었던 옷만큼 편하지 않고 감촉 또한 좋지 않다.

내가 불평한다고 해서 기능성 등산복이나 외출용 면바지를 살 수 없는지라 집사람은 찢어진 옷들을 수선해서 입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집사람이 들고 나온 낡은 바지들을 보니 며칠 전 엔진톱에 찢긴 것을 포함하여 한 보따리다.

집사람이 내온 해지거나 찢어진 작업복을 수선하기 위해 어머님의 재봉틀을 사이에 두고 집사람과 마주앉았다. 부모님 세대에 비해 재봉틀을 사용할 기회가 적었던 우리들은 재봉틀을 사용할 줄은 알지만 서툰 데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낯설다.

60년대 재봉틀이다. 50년이 지났지만 기본적인 기능은 완벽하게 작동된다. 둘이서 "잘 잡아, 당겨, 밀어" 하면서 처음 한 벌을 수선하고 나니 반 시간이 지났다. 아픈 허리를 펴고 창 밖을 보니 소록소록 내린 눈이 어느덧 산야에 쌓여 눈 덮인 겨울산 모습이다. 복스런 함박눈이 내리고 또 내린다. 동치미 김치에 군고구마를 먹던 추억이 새롭다.  

일하기 좋은 분위기라지만 찢어진 부위가 무릎 부근이라 손질하기가 힘들고 어렵다. 두 벌째 수선이 끝나자 서서히 싫증이 난다. 눈치 빠른 집사람의 타협이 들어온다.

"막걸리 한잔 하실래요?"

유혹에 약한 나는 막걸리 한잔에 낚여 점심시간까지 꼼짝없이 재봉틀 앞에 앉아있어야 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오랜 세월을 살았다는 얘기고, 오랜 세월은 낡고 진부한 느낌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나와 집사람이 오랜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낡았고, 낡았기 때문에 쓸데없다고 한다면 서운할 것 같다. 못쓰게 된 낡은 바지를 수선하고나니 오랜 친구와 같이 편하고 좋은 느낌의 새 바지가 되었다. '오랜 세월'과 '낡음'의 차이를 정리해보고 우리들의 존재 가치를 확인한다.

궁시렁도 잠시, 내 살 냄새 밴 작업복이 좋구나

해지고 낡아 못 쓸것 같던 작업복들이 수선의 과정을 통해 편한 새 작업복으로 거듭났다.
▲ 수선한 작업복 해지고 낡아 못 쓸것 같던 작업복들이 수선의 과정을 통해 편한 새 작업복으로 거듭났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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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은 경륜이고 지혜이며 친근함과 동시에 따뜻함이다. 오랫동안 같이 동고동락한 부부 사이가 그럴 것이요. 어릴 적 친구가 소중한 이유도 잘 아는 것에서 오는 편한 감정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무심결에 지나다 보면 낡은 상태가 되어 쓸 수 없게 되어 버린다.

퇴직도 폐기처분으로 보느냐 재활용을 위한 '수선'의 시간으로 보느냐는 순전히 자신의 선택일 것 같다. 오랜 세월이 지나 낡은 것이 되기 전에 쓸 수 있는 카드가 '수선'이다. 수선한 바지를 입고 고압세척기로 시랑헌 흙을 나르면서 황토 흙에 절인 덤프트럭을 세차한다. 수선한 바지가 좋다! 내 살 냄새가 배어있고 편함이 있으니까.

'새 술은 새 부대에'가 명언이라면 오래된 술은 어디에 둬야 할까? 온고지신(溫故知新)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토요일 아침 나절이다. 


태그:#재봉틀, #작업복, #시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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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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