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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유구한 역사의 뿌리 깊은 거짓말 전통을 이어받아 인류공영에 이바지하자. 이에 창의적이고 이로운 거짓말을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어느 아이들이 '거짓말 헌장'을 암기한다. 아이들은 거짓말 뉴스를 보고 진실학과 거짓학 수업을 배우면서 좀 더 치밀하고 완벽한 거짓말을 공부한다. 이곳은 어디인가. 전성희 장편동화 <거짓말 학교>의 '거짓말 학교'다. 전국의 수재들을 모아 거짓말을 가르치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훗날 정부에서 일할 인재들을 키우는 무서운 학교다.

 

이 학교는 외딴 섬에 있다. 이곳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전국의 영재들은 이곳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 혜택이 세계 어느 곳에 비해서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 끝에 이곳에 들어올 자격이 되면, 학부모와 학생은 비밀 유지 서약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그런 뒤에 3년을 보내게 된다. 입학했다고 해서 무조건 졸업하는 건 아니다. 공부를 못하면, 거짓말을 못하면 낙오된다.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학교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동화 속의 학교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거짓말은 현대 사회에서 필수다. 오히려 거짓말이 세상을 더 잘 돌아가게 만들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또한 거짓말이 나쁘다고 하지만, 현실은 엄연히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가르친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정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거짓말 잘 하는 인재들을 키우는 것이다.

 

이것이 동화라는 것이 안심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거짓말 학교>는 여러 번 섬뜩하게 만든다. 정치인의 거짓말 등으로 수업하는 장면이 그렇다. 또한 거짓말을 잘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교장 선생의 논리 아닌 논리를 마주해도 그렇다. 우리사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고 또한 들을 수 있는 말이기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다.

 

동화 속의 주인공 인애와 나영이도 그렇다. 나영이는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아무도 자신을 키우지 않으려 할 때 이 학교에 왔다. 나영이는 어떻게든지 이 학교에 남아있어야 했다. 그래서 성공해야 했고 그것으로 부모님이 다시 합치기를 바랬다. 인애는 가난했기 때문에 이 학교에 왔다. 인애는 어른들이 말하지 않아도 돈이 없으면 좋은 대학에 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인애는 누구보다 열심히 경쟁하려 한다. 거짓말을 잘 해서, 성공해야만 하는 것이다.

 

거짓말 학교에서 아이들이 쓰러지고 이상한 아저씨가 나타나는 소동 끝에 인애와 나영이는 이 학교에 뭔가 큰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아이들은 모험심을 발휘해 그것을 밝혀보려 하지만 교장 선생은 아이들의 심리를 단번에 알아차린다. 뿐만 아니라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아이들을 마음을 뒤흔들어버리는 '말'들을 한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서로를 의심하면서,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아이들은 고민한다. 등골이 서늘한 그 때,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거짓말 학교>는 비판의식이 강한 동화다. 무엇에 대한 비판인가. 이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어른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데 이야기를 건네는 솜씨가 녹록치 않다. 거짓말 같은 진실이 들려주는 진실 같은 거짓말의 세계가 꽤나 치밀하며 역동적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동화의 끝에서 던지는 '이제 어떡할래?'라는 질문이 가슴을 파고든다. 아이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짓말 학교>는 그것을 생각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동화답게 진솔하게, 그것 이상으로 날카롭게.


거짓말 학교 - 제10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전성희 지음, 소윤경 그림, 문학동네어린이(2009)


태그:#문학상 수상작, #장편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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