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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고을 올레
▲ 대정고을 올레 대정고을 올레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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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춘, 여기가 어디꽈?"

무릉리 곶자왈 숲 옆 감귤원에서 감귤 작업을 하시는 어르신께 내가 던진 말이다. 제주사람들은 이웃이나 친지 등의 어르신들에게 '삼춘'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때 '삼춘'에는 친척 '삼촌'이란 뜻도 있지만, 가까운 사람으로 느끼는 윗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제주사람들만이 쓰는 호칭이기도 하다.

감굴농가 삼춘
▲ 감굴농가 삼춘 감굴농가 삼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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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신평마을이주! 감귤 하나 먹엉 갑써!"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어르신께서는 생면부지인 우리 일행을 데리고 감귤원으로 가시더니 손에 감귤 서너개를 쥐어주신다. 초겨울 햇빛이 감귤 밭에 내려앉았다.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로
▲ 신평로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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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할망집
▲ 올레 할망집 올레 할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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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간 마을올레, 제주사람들의 삶 엿보다

제주의 중산간 마을 신평 올레길에 접어들었다. 빨간 맨드라미와 노란 유채꽃이 돌담 아래 흔들거렸다. 요즘 세상이 각박하다 하지만,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여유와 인심을 주는 중산간마을 올레는 참으로 따뜻한 길이었다.

올레
▲ 올레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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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엿보기
▲ 올레엿보기 올레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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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올레를 걸을 때 느끼는 것이 바로 제주사람들의 정서와 문화다. 제주 특유의 주택문화인 안거리와 밖거리 문화, 통시의 흔적, 그리고 우영밭은 언제보아도 제주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낮은 돌담너머로 보이는 세간은 참으로 정겹다. 시멘트 빌딩 숲에 살며 감추고 살아가는 도심사람들의 소통방법에 비하면 제주마을올레에서 비춰지는 삶은 늘 열려있는 삶이다. 열린 대문과 열린 창문, 그리고 열린 마음이 느껴진다.

신평리 사람들
▲ 신평리 사람들 신평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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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밭 자유롭게 품어대는 물줄기... 자유느껴

올 겨울을 이겨낼 마늘밭 스프링쿨러에서 물을 품어댔다. 마치 올레꾼들의 마음 같이 자유롭게 사방으로 갈라졌다. 걷는 동안만이라도 시간과 시간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의 빈틈에 여유를 누리고자 했지만, '대정고을' 풍경은 여지없이 빈틈의 메워준다.

대정성지
▲ 정난주 마리아묘 대정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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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성지, 올레꾼들의 여정 풀어

신평리 올레에서 많은 올레꾼들의 발을 붙잡는 곳은 '한굴밧'이다. 이곳은 대정성지가 있는 곳으로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11코스 올레꾼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긴 시간 걸어온 올레꾼들에게 쉼터의 장소이기도 하다.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 9번지와 10번지, 이곳은 천주교가 조선에 전파되면서 발생한 신유사옥과 관련한 정난주 마리아의 유배지이기도하다. 바람의 땅 대정현에 유배와 관노가 되어 신앙생활을 해오다가 병사로 돌아가신 정마리아를 추모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증인 묘역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이 있었다. 하지만 성지 주변에서 올레꾼들은 여정을 풀었다.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점심을 먹는 풍경은 여느 공원 같았다. 신앙의 성지가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편히 쉬게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대정고을을 걷는 올레꾼
▲ 대정고을 올레꾼 대정고을을 걷는 올레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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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고을 올레, 고난의 피난처인가?

낮 12시 10분, 무릉 2리 자연생태문화체험골에서 출발한 제주올레 11코스 거꾸로 걷기는 2시간만에 정난주 마리아 묘에 도착하면서 끝났다. 8km를 걸은 셈이다.

보온병 물을 컵라면에 부어 놓고 라면이 익어가기를 기다렸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동호인들끼리 온 사람들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모습이 평화롭다. 보온병 물이 식어서 설익은 라면으로 고픈 배를 채웠다. 하지만 라면 국물 맛은 여느 해장국물보다 맛이 있었다. 

길을 걷다 먹는 과일 한 조각, 초콜릿 한 조각 그리고 감귤 하나에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곳이 바로 피폐한 올레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아마 그것은 길을 걷어본 사람들만이 느끼는 풍요 속 빈곤일 것이다.

강아지를 앞세우고 길을 걷는 올레꾼 뒤에 빨간 동백꽃이 피어 있었다. 파란리본과 노란 리본이 동백꽃 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수백년 전 제주섬에 유배 온 사람들이 힘든 심신을 달랬듯이 제주올레를 걷는 사람들 역시 대정고을 마늘밭 끝에서 틈새의 여유를 누리고 있었다. 바람 부는 대정고을, 그곳은 고난의 피난처였기 때문이다.

ⓒ 김강임

덧붙이는 글 | 11월 28일 제주올레 11코스 거꾸로 걷기 공식행사에 참석했습니다.

11코스 거꾸로 걷기 기사는 생명을 잉태하는 무릉도원 곶자왈 올레와 바람의 땅에 유배해서 생을 마감한 정난주마리아묘, 최대 공동묘지올레 모슬봉, 온몸이 오싹한 최대 양민학살지 섯알오름, 지평선 따라 걷는 감자밭 올레를 연재합니다.

이 기사는 제주의 소리에도 연재됩니다.



태그:#올레11코스, #제주올레,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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