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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8시 싱글 모임. 신촌, 건대, 강남 남성 추가신청 받음. 여성분 너무 많음."

오후 5시경이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 핸드폰을 진동시키는 문자가 하나 있다. 흔히 '단체번개'라 불리는 싱글모임의 초대 문자이다. '번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번개처럼 급하게 만남 혹은 데이트를 갖는다'라는 의미이므로 '단체번개'라 함은 이런 만남이 일대일이 아닌 여럿이서 이루어짐을 뜻한다.

나도 오래 전 채팅사이트에서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술자리를 몇 번 가진 적이 있다. 하지만 한달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싱글모임사이트는 좀 달랐다. 남자 회비는 3만원 여자 회비는 2만 5천원. 이제는 싱글모임의 형태도 좀 더 체계화됐나 싶어 그 내용을 살펴보니, 뭔가 특별한 재미가 보장될 것만 같았다. 

토요일 저녁 강남역에서 40명이나, 그것도 서로 아예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하니 그 자체가 신기하고 궁금할 따름이었다. 인터넷 상에서 별다른 로그인 없이 그냥 신청을 할 수 있었고, 전화번호를 기입하자 잠시 후 문자가 왔다.

"오늘 저녁 8시 강남역 x번 출구 직진 50m 후 왼쪽 골목으로 꺾으시면… 그리고 그 바로 옆에 xxxx술집이 보입니다."

그 문자 하나만 있으면 70세 할머니도 절대 길을 찾지 못할 리 없을 만큼 정확하고 친절한 설명이었다. 지난 10월 말, 문자를 받아들고 저녁 7시께 집을 나섰다.

여성분 너무 많은 싱글 모임 한번 가봤더니

영화 <비트> 중 한 장면. 여기서노 노예팅이 나와 화제가 됐다.
 영화 <비트> 중 한 장면. 여기서노 노예팅이 나와 화제가 됐다.
ⓒ 우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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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 10분쯤 술집 안을 들어가 보니 남녀 각 5명 정도씩 대략 10명의 사람들이 벌써 와 앉아 있었다. 처음 참석하는 자리인데다 그것도 혼자서 왔다는 것이 민망하여 나처럼 혼자 온 듯해 보이는 어떤 남자의 옆자리에 재빨리 앉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곧이어 모임을 주선한 사람이 어색한 분위기 타파를 위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자, 다들 앞에 놓인 잔에 술 한 잔씩 채워주시고 이야기 나누고 계세요. 사람들 다 모이면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말투 같은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앞에 앉아 있던 여자 한 분이 술을 따라주었다. 이 여자 분이 좀 적극적인 성격인가 싶었더니 다른 테이블에서도 이상하게 여자들이 먼저 술을 권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다 같이 술잔을 한두 잔 부딪히고 기본적인 신상정보를 캐는 대화가 오갔다. 나이는 몇 살이며,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이 자리에는 누구랑 왔는지.

술을 마시며 앞, 양옆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30분쯤 흘렀을까, 어느새 술집의 한쪽 편을 이 모임의 참석 인원 40명이 모두 점령하고 있었다.

'아,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 40명이나 모이는구나.'

놀란 마음도 잠시, 사회자의 능수능란한 게임진행이 시작되었다. 서로 어깨 주무르기, 팀별 빙고 게임, OX 게임 등 약 1시간 정도 쉴 새 없이 진행되었다. 술기운에, 또 처음 만난 사람들을 알아가는 흥분에 도취되어 금세 얼굴이 불그스럽게 상기됐다.

술기운 무르익자 "제발 저 좀 사주세요"

사실 참석한 여자들 중 상당수가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저 여자들은 왜 굳이 여기에 와서 회비를 내고 남자들을 만나려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쳐야 할 문제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예쁜 여자는 어딜 가나 편하고 쉽게 대접을 받을 수 있는니 말이다. 그런데 그 의아스러움을 단박에 깨는 게임이 곧 시작되었다.

'자, 지금부터 커플을 선정하는 노예팅을 시작하겠습니다.'

앞전보다 더 또렷하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목소리였다. 사회자는 남자들은 잘 팔리지 않기 때문에 여자 분들만 경매에 부치겠다고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이 인간 경매가 실제로 이런 모임에서도 이루어지는구나, 내 호기심에 더 발동이 걸렸다.

사회자는 곧이어 설명에 들어갔다. 한 여자씩 일어나서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을 가장 비싼 값에 사는 사람에게 지킬 약속 한가지를 내걸라고 주문했다. 경매 최초 금액은 1만원부터 시작하며 최종적으로 낙찰된 돈은 여자가 아닌 모임을 주최한 두서 너 사람들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일종의 수고비라나 뭐라나. 은근슬쩍 양해를 구했다.

한 여성이 일어났다. 누가 봐도 미모가  꽤 뛰어났다. 그러니 술 취한 남성들의 눈에는 오죽했으랴. 너나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경매가격을 올렸다. '2만원!' '5만원!' '10만원!' 난 수중에 불과 몇 만원 밖에 없던 찰나였고, 돈이 있다손 쳐도 돈으로 여자를 산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껄끄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여자를 돈을 주고 산다한들, 여자 쪽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뤄진 일방적인 관계가 어떻게 진솔한 교재로 이루어지겠느냐 생각이 들었다.

'2만원!' '5만원!' '10만원!' 이것이 바로 노예팅?

"자, 18만원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그때 처음부터 그 여성의 옆자리에서 여성의 웃음과 애교를 집중적으로 받아왔던 30대 초반의 남성이 술기운에 눈이 약간 풀린 채 외쳤다. '20만원!' 결국 그 여자는 20만원을 부른 남성에게 팔렸고(?),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둘만 먼저 자리를 뜨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 둘, 최소 3만에서 20만원의 가격으로 여자들이 노예팅에서 낙찰되어 빠져나가면서 남은 건 나와 같이 경매에 참여하지 않은 몇몇 남자와 경매에 낙찰되지 않은, 즉 인기가 없는 여성들뿐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서 어울리며 혹 마음이 통한다면 인연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는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고, 오히려 여자를 돈으로 사지 못한 내가 능력이 없거나 쿨하지 못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나와 같이 경매를 하지 않았던 옆 자리의 남자가 내게 귓속말을 건냈다.

"저기 여기 처음 나오셨나요?"
"네. 그런데요?"
"방금 남자들하고 나간 여자들 있죠? 거의 모두 여기 모임을 주최한 남자들하고 오빠 동생하고 지내는 아는 사람들이에요. 저는 여기 3번째인데 3번 계속해서 보는 여자들도 많아요."
"그럼, 그쪽은 왜 계속 이 자리에 나오나요?"
"아주 드물긴 하지만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자리에 나오는 사람도 있거든요."

남자의 말은 먼저 모임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모임의 주최 측과 한 팀, 즉 이미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것이다. 여자들은 외로운 남자들의 장단에 맞춰 술을 따르고 은연중에 자신들이 그들을 좋아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서, 그들이 술에 얼큰히 취해 이성 판단이 흐려질 때 노예팅으로 큰 돈을 챙긴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여자들은 회비를 내지 않음은 물론 자신이 팔린 금액의 몇 %를 받아간다는 것이다.

오늘도 어디선가 돈으로 후회를 살 남자들

'오늘 8시 싱글 모임. 신촌, 건대, 강남 남성 추가신청 받음. 여성분 너무 많음.'

한 달 전내가 기입했던 전화번호 하나를 가지고 나를 평생 고객이라도 삼으려는지 아직도 어김없이 오후 5시경이면 알람시계처럼 이 문자가 내 폰을 진동시킨다.

문자를 보며 오늘은 또 어떤 어리석은 남자들이 술에 취해, 여자들에 거짓 웃음에 취해 돈으로 후회를 살지 씁쓸하다.


태그:#싱글 모임, #단체 번개, #여성 상품화, #술 , #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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