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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밤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27일 밤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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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지난 27일 밤 10시 전국 35개 방송사를 몽땅 장악하며 동시 생방송된 <대통령과의 대화> 말이다. 실은 '대화'보다는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나 '정책 홍보'란 제목이 어울린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태도를 따지기 이전에 프로그램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인다. 여타 토론 프로그램과는 달리 대통령에게 추가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대통령에게는 반박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하니 현안에 대한 심층적인 질문이 나오기 어려웠다. 게다가 패널에게는 발언 시간 제한이 있지만 대통령께는 감히 제한을 두지 않는 모양이다. 질문이 일단 던져지기만 하면 15분을 훌쩍 초월하는 대통령의 변을 그냥 잠자코 듣고만 있어야 했다. 자못 숙연하기까지 한 공간은 방과 후에 남아 훈계를 들어야 했던 초등학교 교실의 분위기를 연상시켰다. 이는 결코 대화의 장일 수 없음이 당연하다. 그러니 대화의 장은 프로그램 방영이 끝난 뒤에 비로소 만들어지고 이야기됨이 옳다.

'세종시 수정안'과 '4대강 사업' 묻지마 강행

먼저 당금 한국 사회에 가장 '뜨거운 감자'이며 당면문제라 할 세종시 문제에 관하여 이명박 대통령은 일종의 '고해성사'를 했다. 대선후보 시절 '원안대로 추진하겠노라'고 공약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어쩌다 보니까 그리 된 일이고, 실상 세종시 원안 추진은 절대 안 될 말이라는 것이다.

"부끄럽고 후회한다"니 아무튼 공식적인 사과다. 덧붙여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지원사격이 훌륭했다. 김진 위원은 질문을 하는 동시에 슬그머니 '후보 시절 굳이 원안을 추진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정략적인 엄호를 해 주었다.

평소 뛰어난 논객으로 평가받았던 김호기 연세대 교수도 반론을 아예 허락하지 않는 곳에서는 칼을 빼앗긴 검객과 같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세웠던 세종시의 자족기능 계획은 완전히 무시하고 도리어 현지 주민들의 생계를 걱정했다. 원안대로 추진하면 자족 불가능하고 주민들의 생계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고운 마음씨'를 보면, 도저히 용산 철거민들을 특공대로 몰아낸 정부의 수장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세종시의 본래 취지인 '국토의 균형발전'은 경제발전의 신앙 간증 앞에 다시금 무력화되었다.

대통령이 천명하는 필생의 과업 '4대강 살리기 사업'에 관해서는 방송의 준비성과 홍보성이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물고기 로봇이 강을 헤엄치는 자료영상을 틀어주는데 지금 '관제방송'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또 대통령의 철학이 분명히 엿보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많은 시민단체와 학자들이 제기한 환경오염 문제를 단연코 "할 수 있다"며 일축해 버렸다. 세계 첨단을 달리고 있다는 기술력과 함께 대통령의 개인적 '경험'을 거듭 강조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도 비슷한 반대가 많았다며 여론을 국가적 대업에 으레 따라붙는 잡음 정도로 취급한 것이다. 지금 아무리 반대해도 뻔히 나중에는 잘했다고 칭찬할 테니 '경험자'에게 맡기고 따라달라는 호소였다. 허나 대통령이 야심차게 '녹색성장사업'을 목 놓아 외친다 해도, 강바닥을 준설하면 강이 살아난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허무맹랑하다. 복잡미묘한 생태계의 이치를 시멘트를 발라 해결을 보겠다는 모양이다. 강변에 자전거길을 만들어, 자전거를 타고 목포나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민 건강까지 챙기는 아량이 대단하다.

대통령의 희망은 청년들의 우울한 코미디

 27일 밤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27일 밤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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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민생문제를 짚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부자 감세'라는 비아냥거림을 샀던 세금 감면을 이야기했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 혜택이 대부분 상층계급의 몫이었음은 통계청 자료로 입증된 비판이다. 이에 대통령은 감세가 곧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심지어 "국가의 최종목표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며 확고한 철학을 천하에 과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 순간 왜 '희망근로' 따위로 청년들을 '희망고문'하는지 궁금하다. 희망근로 프로젝트로 일자리 만들었다고 생색인가. 비정규 일자리를 두고 미래 설계 운운함은 우울한 코미디다. 또 미소재단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말하며 뜬금없이 말한 "붕어빵 팔던 할머니가 무이자 대출받고 고맙다며 청와대로 찾아와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단연 압권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문제는 자기 철학이 시멘트처럼 확고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시멘트와 대화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 비극이 있다. 청년실업의 근본적 방안을 묻는 대학생에게 대통령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대학생은 실업의 공포를 하소연했는데 대통령은 무서워하지 말라고 달랜 격이다. 동문서답이다. 나아가 국민의 공포를 보듬어야 할 근대국가의 책임 방기다.

100명의 국민이 이명박 대통령과 대화하려 나왔지만 주어진 시간은 120분 중 겨우 30분 남짓했다. 그나마 방송인 패널 셋에게 모두 발언이 돌아가는 바람에 정작 일반 국민들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소중한 시간에 가수 박현빈은 "대통령님 요리 좋아하시냐" 했고, 배우 선우용녀는 "대통령님 내복 입으시냐"는 질문을 던졌다. 일순간 지구의 자전축이 멈추지 않았나 싶었다. 정말이지 눈과 귀를 의심할 밖에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자신의 노래를 가져다 썼다며 특별한 인연을 자랑하는 박현빈과, 대통령이 건강해야 우리도 건강하다며 왕조시대 감언을 올리는 선우용녀를 멍청하게 지켜보다 그냥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대통령과 진실한 대화를 하고 싶어 마련한 자리에서까지 권력의 천박한 성질을 발견해야 하는 우리 국민들이 정녕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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