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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어린이들과 인사하고 있다.
 11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어린이들과 인사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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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님,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 살고, 학생들을 자주 만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늦었지만 대통령 당선을 축하합니다. 축전을 보내거나 축하전화를 걸 수도 없는 입장이지만 누구보다도 오바마님이 당선되길 마음으로 지지했던 터라 당선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기뻤습니다.

며칠 전 저녁 9시 뉴스에서 오바마 대통령에 관한 보도를 접했습니다. 뉴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방한 중에 이명박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제목은 "오바마, '한국 교육열' 또 칭찬" 정도 될까요.

오바마님은 "초등생, 영어 배워야 한다. 한국 학부모들이 주장해 원어민 교사 수천 명 초청한다. 이게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셨다죠. 오바마님이 이명박 대통령과 오찬 중에 한국의 교육 정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이 대통령께서 "부모들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도 자식은 최고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말씀을 전해 들으셨다죠.

아 참, 오바마님은 지난 3월에도 "미국 어린이들은 매년 한국 어린이들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1개월이나 적다"며 한국을 거론하신 적이 있고, 이어 4월에도 "우리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능력이 한국·일본 등의 학생들보다 뒤떨어진다"고 지적하셨지요.

자, 그럼 이제 저도 얘기해보겠습니다. 무릇 모든 이야기는 양쪽의 입장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씩 차근차근 볼까요.

"미국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능력이 한국 일본 등의 학생들보다 뒤떨어진다"

미국 학생들이 공부에 얼마나 흥미를 느끼는지는 몰라도 일단 통계상으로는 사실입니다. 2000년부터 3년마다 한 번씩 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가 열립니다. PISA는 나라별 교육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읽기(글 이해력), 수학, 과학 능력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으로 각국의 학업 성취도를 비교 평가해보는 시험입니다.

이 대회에서 핀란드가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한국은 지난 2006년 2위를 차지했습니다. 평가위원들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핀란드와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완전히 다른데 성적은 비슷하다. 어떤 차이가 있나?"
"한국은 공부는 잘하지만 부러운 나라는 아니다. 과도한 경쟁 시스템 때문에 공부에 대한 의욕이 낮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행복해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에는 관심이 없다."

위와 같은 평가위원의 답변이 충분했는지 기자들은 한국 교육과 한국 아이들에 대해선 더 질문하지 않았다는군요. 그도 그럴 것이 핀란드는 한 반에 우수한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가보다, 부진한 학생들이 얼마나 적은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학생 간의 성적 격차가 가장 낮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나란히 1, 2위를 했지만 핀란드는 학생 간 성적 격차가 가장 낮은 나라고 한국은 학업에 대한 학생 만족도가 가장 낮은 나라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노는 시간이 부족하면 창의력이 자랄 시간이 없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는 이 슬로건을 미국을 포함한 서구에서 수입했습니다. '공부에 매몰돼 쉴 틈이 없는 아이들의 창의성이 현격히 떨어지니 이제 자유로운 정신과 창조성을 강조하는 서구의 가치를 본받을 때'라고 말이죠.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2009년 현재, 미국의 대통령이 창의력을 고갈시킨다는 아시아 교육의 모습을 칭찬하고 있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인지요.

 서울의 한 고등학생이 그린 '요즘 스트레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부 생각'
 서울의 한 고등학생이 그린 '요즘 스트레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부 생각'
ⓒ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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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어린이들은 매년 한국 어린이들보다 학교서 보내는 시간이 1개월이나 적다"

오호, 겨우 1개월밖에 적지 않다니. 미국도 아이들을 학교에 잡아두는 시간이 만만치 않은 모양입니다. 이것도 맞습니다. 한국의 연간수업 시수는 OECD 가입국의 평균 시수 935시간보다 훨씬 많은 1254시간으로 세계 최고입니다. 성적비관으로 인한 학생들 자살률도 세계최고지요. 오죽하면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의 매우 경쟁적인 교육시스템이 아동 잠재성의 최대한의 발전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를 반복하겠습니까.

학교에서 공부 많이 하는 걸 탓하는 게 아닙니다. 한 반에 줄잡아 35명에서 45명의 학생이 있습니다. 저마다 각각의 개성을 살려 즐거운 학교생활이 된다면야 학교에 좀 매여 있기로 서니 무엇이 문제일까요. 진짜 문제는 대학은 이미 서열화가 끝났고 상위권은 상위권대로 중하위권은 중하위권대로 입시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겁니다. 학교에서 살인적인 시간을 보내고도 또 다시 학원을 찾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자정이 넘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공부 열심히 해서 정말 좋구나' 기뻐할까요. 대개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의 기형적인 교육 환경 탓을 하면서 이렇게 우리 아이를 키워도 괜찮을까 불안해합니다. 학부모의 영어 교육열은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학부모의 문제가 없다고도 할 수 없지만 학부모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초등생, 영어 배워야 한다. 한국 학부모들이 주장해 원어민 교사 수천 명 초청한다. 이게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국의 원어민 영어에 목을 매니,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모두 영어를 쓰니 흡족하십니까. 학부모들이 주장해서 원어민 교사 수천 명을 초청한다는 것이 거짓은 아닐지 몰라도 100% 사실은 아닙니다. 영어 몰입식 교육을 애초에 주장한 사람은 학부모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의 "아륀지(Orange)" 에피소드를 이명박 대통령께서 얘기해주지 않으시던가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 뉴스를 기억합니다. 세 살짜리 아이가 모국어인 한글은 몰라도 영어로 '아륀지'를 발음해야 하는 시대에 아시아 사람들,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부모들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도 자식은 최고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하더라."

맞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출세할 방법은 오직 교육밖에 없었지요. "한국은 자원이 없는 나라다. 오로지 인적자원 밖에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자랐습니다. 7∼80년대, 길게는 90년대까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장남(장녀? 아니죠~)이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것밖에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난이 대물림되는 상황에서의 교육은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이 지났다고들 말합니다.

오바마님!

당선소식을 들었을 때 참 기뻤습니다. 대통령 한 명이 모든 것을 바꾸리라 기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영웅이 되기에 충분한 당신의 일대기 때문만도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당신은 '마이너리티'로 살아본 기억과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세상의 수많은 소수자들을 잊지 않을 거라 여겼습니다. 약자와 소수자에 서본 풍부한 경험이 소수자를 위한 참 정책을 펴내는 데 밑거름이 되리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약자입니다. 판단이 미숙하다며 권리의 주체로 인정해주지 않으면서 모두들 자기 짐작대로 식의 보호를 강조합니다. 놀 시간과 쉴 시간을 빼앗는 지나친 수업시수와 가공할 사교육에서 아이를 보호하지 못하면서, 수능생을 둔 집집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아이를 돌보는 게 아이에 대한 보호이고 배려인양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말합니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요.

오바마님, 정말로 한국의 교육 방식이 마음에 드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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