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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이 기사는 연재물입니다. 전편을 읽지 못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일본어 한자' 고수를 찾아서


그를 찾아가다

그의 실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종로 중심가의 한 학원. 총 7개의 외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그 곳은 명성이나 규모에 비해 꽤 한적한 느낌이 들었다.

공개강의가 시작되기 전, 분위기를 살펴 보기 위해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지만 텅 빈 강의실이 많았다. 강의를 하고 있는 곳도 생각보다 수강생이 많지 않았다. 종로 중심가에서 이 큰 학원을 운용하는데 이런 식이라면 적자가 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를 만나기 위해 종각역에서 내렸다. 종로는 정치 1번지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전국의 내로라하는 강사들이 모이는 학원 1번지이기도 하다.
 그를 만나기 위해 종각역에서 내렸다. 종로는 정치 1번지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전국의 내로라하는 강사들이 모이는 학원 1번지이기도 하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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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강의를 한다는 교실에도 학생은 그렇게 많이 모이지 않았다. 단정한 느낌의 30대 중반 여성, 회사에 갓 취직한 듯한 양복차림의 남자 한 명, 그리고 10대로 보이는 여고생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이름이 있는 학원이고 강사 경력이 화려하기에 꽤 많은 사람이 모일 줄 알았는데 당혹스러운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학원가의 광고글에 속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대한민국 학원가의 중심지인 종로라면 분명 홍보방법도 보통이 아닐 텐데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물끄러미 창 밖을 내다 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들어 왔다.

후줄근한 복장의 고수

자신을 강사라고 소개한 그의 복장은 일반 강사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남자 학원 강사의 경우, 깔끔한 정장이나 얼핏 봐도 단정하다는 느낌을 주는 복장을 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집 근처의 슈퍼에 잠시 담배를 사러 가는 정도, 딱 그 정도의 복장이었다.(참고로 조인석 선생은 담배를 피지 않는다.)게다가 운동화에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등장한 게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복장을 본 순간, 다시 신뢰가 생겼다. 자기PR의 시대이다 보니 외모도 복장도 과거보다 훨씬 더 큰 경쟁력이 된 시대지만 의외로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고수들을 꽤 보아왔기 때문이다.

간단한 인사를 한 뒤, 그는 한 명 한 명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해서 이 곳을 찾아 왔는지 물어 보았다. 나는 학원 홈페이지에서 본 그의 필력에 반해 그를 찾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곧 강의를 시작했고 10분쯤 지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진짜구나.'

그를 진짜라고 판단한 이유

그의 실력은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일본어 전공자인 내가 단 10분만에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에는 아래와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는 자신이 말하는 일본어를 모두 한자로 썼다. 자신이 말하는 일본어를 모두 한자로 쓸 줄 아는 강사는 대한민국 학원가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일본어 전공자도 또 일본에서 웬만큼 학위를 따고 온 사람조차 한자는 가장 큰 장벽이다.

똑같은 시간, 영어와 일어를 배운 사람이라면 일본어가 한국어와 어순이 같기에 영어보다 빨리 문법이나 회화실력이 늘 확률이 높다. 하지만 작문을 시킨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히라가나, 가타가나로 뜻이 통하는 글을 적을 수 있을진 모르지만 일본어 초등학생 수준의 한자도 제대로 적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에서 업무나 학교의 레포트를 낼 때 히라가나나 가타가나로만 글을 적을 경우, 교육수준을 심각하게 의심 받는다.) 공인된 일본어 1급의 실력을 갖춘 사람도 크게 예외는 아니다. 쓰는 시험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어 상용한자표의 일부.
 일본어 상용한자표의 일부.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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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 덕분에 일본어 강사의 경우, 엄청난 어휘와 완벽에 가까운 문법실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를 한자로 모두 적을 수 없는 경우가 극히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는 모든 단어들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칠판에 적어 내려갔다.

둘째, 발음이다.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말하기다. 아무리 일본어 한자의 고수라고 해도 발음이 좋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잘못된 언어습관을 심어 줄 확률이 높다.

모든 언어가 마찬가지겠지만 발음의 경우에는 강사보다 학생들이 더 좋은 경우가 많다. 이건 강사의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현지에서 오래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현지에서 자연스레 해당언어를 사용할 때와 한국으로 돌아와 상당시간이 흘렀을 때의 발음은 차이가 난다. 대부분의 강사들도 이 점을 알고 있고 몇몇 강사들은 이런 점을 솔직히 학생들에게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 갓 현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온 강사들은 발음이 좋은 대신 소위 교육 스킬이라고 하는 것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오랜 시간 강의를 해온 강사들은 발음은 많이 무뎌진 대신 교육 스킬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십 수년 이상 현지를 떠나 있었음이 분명한데도 신기할 정도로 깨끗한 동경 공통어 발음을 유지하고 있었다.(현대 일본에서는 표준어라는 말이 차별을 의미하는 느낌을 준다고 하여 '표준어(동경 방언)'대신 '공통어'라고 쓰고 있다.) 

전공자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한자 실력을 가지고 있는 나지만 회화만큼은 현지에서 대학원을 나온 사람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가장 큰 외국어 경연대회에서 실력을 인정 받은 경험이 있고 현지에서 통역학과 학생들을 제치고 상을 받은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물론 운이 무섭게 따라 주긴 했지만)그는 그런 내가 놀랄 정도로 깨끗하고 정확한 발음을 구사했다.

셋째, 부수 하나까지 형성원리를 설명해내는 한자에 대한 깊이였다. 한국식 한자의 경우에는 강사를 전문적으로 길러내는 곳이 있을 만큼 교육체계가 잘 잡혀 있고 전반적으로 강사들의 수준도 훌륭한 편이다.  

아쉽게도 일본어 강사 중에는 그렇게 원리까지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 한자에 대한 공부와 연구, 강의를 병행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강사가 개인시간을 내서 연구를 한다 해도 그만큼 일본어를 깊이 파고드는 학생들이 없기 때문이다. 즉, 수요가 없으니 돈벌이가 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1급 자격증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학원가의 풍토에서 그는 일본식 한자는 물론 한국식 한자, 중국식 한자에도 조예가 깊었다. 세 나라의 한자를 비교하면서 설명하는 그의 실력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공개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이 모두 자리를 뜰 때까지 그를 기다렸다. 무엇보다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그가 왜 아직까지 알려 지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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