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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15일간 청와대 출입금지라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15일간 청와대 출입금지라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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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 저는 검찰(서울지검) 출입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넷매체 기자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긴장했습니다. 생소한 검찰 집단 속으로 혼자 들어가는 것이었고,  검찰 출입기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신경쓰였습니다.

당시 서울지검 기자실 간사였던 SBS기자는 "여기는 수사를 하는 곳이니까 엠바고(보도시점제한)는 지켜줘야 한다, 그것 하나만 신경 써 달라"고 했습니다. 그 뒤 서울지검과 대검을 취재하면서 공식, 비공식 언론브리핑을 취재하는데 제한을 받지 않았습니다. 4명 이상이 몇 년 이상 출입해야 가입이 가능한 기자단 소속이 아니었음에도, 이런저런 검사들과의 자리에도 별 어려움 없이 끼어들 수 있었습니다. 검사들이 난데없이 '굴러들어온 돌'에게 속내를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일단 대면은 할 수 있었습니다.

수사기관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엠바고 요청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기자실은 무조건 수용하지 않더군요. 제가 알지 못하는 비사와 야사도 많습니다. 검찰의 사전설명을 듣고 의견을 모아 수용여부를 결정했습니다.

소수의 강력한 반대로 엠바고 요청이 여러 건 거부당하기도 했습니다. 제게도 내용이 공지됐고, 저도 그 엠바고 준수의 의무를 함께 졌습니다. 돌이켜보면 김대중 정부 4-5년차였던 당시는 청와대 등 정치권력이 언론에 쩔쩔매던 시기였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 청와대를 출입하는 저는 어제(20일) 청와대 출입기자단으로부터 <데일리안>, <뷰스앤뉴스>, <프레시안> 등 다른 인터넷 매체 출입기자들과 함께 '15일간의 출입정지'라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일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과 오찬간담회를 하고, 10일에는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단 만찬간담회가 열렸는데, 이게 '오프더레코드'(비보도)자리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약속을 깨고 기사화했다는 것이 징계 이유입니다. 보름동안 기자실 못 나가는 게 대단한 것이냐?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원칙'의 문제입니다.

청와대는 대통령과 언론 간담회에 인터넷매체들은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현 정부 출범이후 지금까지 대통령과의 간담회에 인터넷 매체들을 원천배제해온 것의 연장선상이었습니다. 똑같이 청와대 기자실 운영비를 내고 (대통령 행사를 취재해 기자단에 전달하는) 풀취재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대통령 간담회에는 가지 못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 청와대 출입 인터넷매체들과 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시정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청와대 사람들에게 "이 정부는 인터넷은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손사래를 치지만 "이 대통령이 아예 인터넷 매체들을 만나지 않는 것은 뭐냐"라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청와대는 대통령과의 간담회에 대해  비보도를 요청했고, 간담회 참석 언론사들은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청와대는 인터넷 매체들에게는 간담회 발언내용도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놓고는 간담회에 불참한 모든 매체들에게까지 비보도를 요구했습니다. 보지도 말고 쓰지도 못하게 하면 인터넷매체는 유령이란 말입니까.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와 정국의 최대현안인 세종시 문제 등에 대해 발언했고, 이번에 징계를 당한 인터넷매체들은 "실질 진전 없으면, 김정일 안 만나도 그만"이라는 등의 제목으로 기사를 올렸습니다.

이에 청와대는 바로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청와대 기자단 간사단은 징계절차에 들어갔습니다. "간담회 참석도 배제당했고, 발언내용도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에 비보도 약속을 지켜야 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청와대 취재의 핵심인 대통령을 직접 대면 취재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하는 언론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했는데 비보도 의무만을 강요하는 것이냐"고 반박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습니다.

청와대 기자단 간사단 회의에서는 "비보도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청와대에 오프가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으나 결국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도 오프더레코드임을 알고 있어 통념상 광의의 '비보도'상황에 해당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와 함께 "기자단 간사는 청와대에 기자단 처우와 관련한 입장을 전달한다"는 것도 결정했습니다. 인터넷매체들에게 대통령과의 간담회 참석에 대한 기회를 줘야 하며, 비보도·엠바고 원칙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원칙정립을 요구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청와대 기자단이 청와대에도 이런저런 요구를 한 것은 인정하지만, 이번 사안을 '비보도' 위반이라고 인정한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 안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당한 자들에게 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의무를 함께 지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인터넷 언론들을 '유령' 취급하는 청와대입니다. 인터넷매체들에 대한 거부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청와대의 행태는 크게는 정연주 전 KBS사장의 퇴출사태, YTN사태, 미네르바 구속과 등과 같은 언론통제의 하나이며, 청와대로만 좁혀보는 비보도요청의 남발, 공보담당제 등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정치권력이 다시 언론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태그:#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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