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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확진검사 결과가 오늘 오후에 나왔습니다. 신종플루가 아니랍니다. 지난 일주일간 우리가 그 감기 때문에 어떤 난리를 겪었는지, 이런 난리를 우리가 겪지 않으려면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1. 금요일 새벽 1시

24개월된 딸의 잠자는 숨소리가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코가 막혔을 뿐만 아니라 기도가 많이 부어서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밤새 딸은 숨쉬기 갑갑한지 몸부림쳤고, 결국 새벽 5시 응급실로 갔습니다. 체온은 39.0도. 해열제와 기관지염증 치료제를 주사로 맞고 열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집으로 왔습니다.

2. 금요일 낮, 전쟁터인 소아과를 가다

딸은 그날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열도 전혀 나지 않았고, 기침도 전혀 없었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한 3일 정도 열이 나야 정상인데, 신기하게 아무 일도 없고, 딸은 활기찬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 동안 저희 부부는 신종플루에 대한 각종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의사와 한의사 등 이른바 의료전문가들과 신종플루를 겪은 사람들에게 묻고, 인터넷을 찾았습니다. 결론은, '일단 타미플루를 가지고 있자'였습니다. 심지어 재고가 떨어졌다는 얘기도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거점병원이라는 곳에 갔는데, 거긴 거의 생지옥 같았습니다. 아이들 울음소리로 가득찼습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리면서 오히려 병원에서 감염될까봐 두려웠습니다. 처방전을 받고 같은 건물에 있는 약국에 갔는데, 약국에서도 30분 이상 기다렸습니다. 해열제처럼 일반 약도 전부 조제약으로 쓰도록 의사가 처방을 내렸고, 모든 환자에게 그렇게 했기 때문에, 약사가 약을 짓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꼭 그런 약만 먹어야 되나? 환장할 노릇입니다.

3. 토요일 오전 11시, 타미플루 약을 먹이다

결국 발병 후 34시간 되는 시점에 타미플루 약을 먹였습니다. 신종플루인지 여부는 몰랐습니다. 거점병원 의사가 확진검사는 오래 걸리니까 약식 검사를 하자고 했고, 그 제안을 따라 약식 검사를 했더니 음성판정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보건복지부에서 약식 검사는 확실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혼란만 초래하니 하지 말라고 병원에 권고를 보냈다지요. 다시 이틀 뒤에 병원에 가서 확진검사 의뢰를 했습니다.

왜 먹였는고 하니, 받아온 타미플루 약봉지 해설서를 보니 발병 후 이틀 이내에 먹으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타미플루 복용이 늦어서 결국 사망했다는 신문보도도 많이 있었고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신종플루가 아닐 것처럼 생각이 들지만, 만에 하나 신종플루라면, 그래서 영유아 사망률이 높다면, 우리 딸이 죽을 수도 있으니, 타미플루를 먹어야만 하는 거지요.

이때까지 다른 약은 전혀 먹이지 않았고, 아이 몸상태는 최상이었습니다. 신나게 놀고, 많이 웃었습니다. 아픈 기색도, 열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약을 먹이고 한 시간 지나면서 갑자기 열이 올라 금세 38도가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때부터 콧물이 심해지고, 기침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한번 타미플루 해설서를 읽어보니 폐렴과 발열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하대요. 이때부터 혼란에 빠졌습니다. 지금의 기침은 신종플루 때문일까 타미플루 때문일까?

4. 약과의 전쟁

그 이후 아이의 증세는 더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또 물어봤죠. 그랬더니 열이 오르면 해열제를 또 먹이고, 기침을 하면 기관지염 치료제를 또 먹이라고 하대요. "약으로 병 걸린 걸 또 약으로 치료한다?" 정말 황당하대요.

더욱이 우리 딸은 진실을 먼저 알고 있는지, 죽어라고 약을 안 먹는 겁니다. 절대 입을 안 벌리대요. 생후 24개월만에 처음으로 딸내미 엉덩이를 찰싹 때렸습니다. "이거 안 먹으면 너 죽을지도 몰라." 그때부터 우리 딸이 저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아, 이놈의 신종플루 때문에 부녀지간이 멀어지는구나. 그 후로 병원에서 타온 약은 많았지만, 아무 것도 못 먹이고, 타미플루만은 물에 타서 물이라고 속여가면서 겨우겨우 먹였습니다.

5. 발병 5일 뒤

이제 딸내미는 물에 약을 타서 먹이려고 하면 "(물맛이) 써"라고 하며 맛만 보고는 안 속아주대요. 그래서 이걸 어쩌나 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렇게 약을 덜 먹여서 그런지 발열이나 기침도 훨씬 잦아들대요. 그러곤, 지금 글을 쓰기 한 시간 전에 문자메시지가 왔어요. 신종플루 확진 검사 결과 음성이라고. 그놈의 신종플루 때문에, 그 난리를 피워가면서 먹기 싫다는 약 먹이느라 부녀지간 멀어지고. 정말 생쇼를 했습니다.

6. 꼭 이럴 수밖에 없는 걸까요?

앞에서도 얘기했듯,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은 확진검사결과가 늦게 나오기 때문에 벌어집니다. 타미플루라는 약은 정말 기막히게 잘 만든 약입니다. 발병 후 이틀 내에 먹지 않으면 효과가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신종플루가 아닌 사람도 열만 나면 이 약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다른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그 부작용을 막기 위해 다른 약을 더 먹어야 하고, 그래서 매출액은 증대되고, 투자자는 돈을 벌게 되는 것이지요. 제약회사 관계자 여러분, 앞으로 모든 약은 이딴 식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돈 법니다.

이 모든 혼란을 막을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확진검사 인력과 시설을 늘리면 됩니다. 그래서 확진검사결과가 의뢰 후 12시간 내에 나온다면, 검사 결과 기다렸다가 타미플루 복용 여부를 결정해도 되는 것입니다. 국민들의 불안은, 신종플루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종플루인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 부작용과 안정성이 입증되지도 않은 그 약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 그것에 있는 것입니다.


태그:#신종플루, #타미플루, #발병기,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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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민주주의 환경연구소장, 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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