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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도 다 저물어가는 구월 스무여드렛날(11월 14일 토), 일요일이라는 착각 속에서 나는 '슬슬이'를 끌고 사립짝을 밀고 나섰다. 날씨는 흐렸고 수은주가 영상영하를 오르내릴 그런 기온. 단단히 무장을 하고 마을길을 가로질러 논길을 달린다. 터널도 하나 지나고 논길도 지나고 밭길도 지나고, 읍내로 접어들어 외곽으로 빠지니 그곳에 성당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성당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잔디밭에는 무슨 행사 준비를 잔뜩 해 놓았는데 사람이 없다. 천막도 처져 있고, 탁자도 여기 저기 널려 있고, 양은 솥단지도 보이고......... 그런데 사람이 없다?(나중에 알고 보니 이건 바자회 준비란다.) 의아해 하며 현관에 이르니 그곳도 닫혀 있다. 다행히도 어느 형제분을 만나 여쭈어 봤다. 오늘 미사 없느냐고?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아침미사는 없는데요."

순간 내 머리 속에서는 어느 절간의 쇠북종소리가 요동을 친다.

"토요일이라.......... 토요일이라............."

<한탄가>
세월아 저리가라 네월아 저리가렴
그 맑던 정신을랑 어디다 던져두고
이리도 쇠북종소리 머릿속에 치느뇨

덕분(?)에 한 시간을 번 나는 갈 곳이 없다. 이제 그곳 추암리에 도착할 시간까지 두 시간 하고도 40여 분이 남은 거다. 예측대로라면 나는 새벽길을 달려 한 시간을 벌어야 하는 거다. 내친 김에 '슬슬이'를 몰고 읍내를 관통하고, 철로 밑을 지나고, 황룡강을 건너서 들판으로 나섰다. 새벽 공기가 상그럽기만 하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저 멀리 내가 화요일이면 가서 중용공부도 하고 글씨도 쓰는 필암서원이 보인다. 그래도 정들었다고 곁을 지나며 신축중인 교육관을 두 바퀴나 돌고(시간이 남으니까) 일부러 산아래 좁은 농로로 접어들었다. 추수가 끝난 농로는 그야말로 여기저기 흙투성이다. 마을을 지나가다 보니 길이 없어 보인다. 방향만 잡았을 뿐이니까 길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른다. 미심쩍어 밭에서 감을 따고 있는 농부에게 말 물었다. 이 길로 계속 가면 행길이 나오냐고? 그런다고 손가락으로 방향을 잡아준다. 감사.

제버릇 개 못 준다고 야생화에 미친(?) 나는 달리는 '슬슬이' 위에서 길가를 기웃거리나 별무신통이다. 꽃이라고는 이제는 없다. 겨우 눈에 들어오는 게 봄에나 피는 살갈퀴란 녀석이 파란 잎을 내밀고 있을 뿐이다.

한참을 달리니 드디어 저 멀리 추암리 저수지 둑이 보인다. 이제 안심이다. 거기서부터는 내가 길을 안다는 거다. 급경사라 '슬슬이'를 밀고 둑 위로 올라서니 그곳에 저수지가 바닥을 거의 다 드러내고 있다. 아마 가득 채우면 무서울까 봐서 망설이나 보다. 물을 아끼시는 조화옹의 뜻이려나? '슬슬이'야 나를 태워다오. 신나게 달리려는 나를 추암리 골 바람이 막아선다. 어찌어찌 해서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그곳에 도로를 가로지르는 현수막 하나.

"보행자 안전과 편백림 보호를 위해서 차량통행을 금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 입구를 지나 '관광농원'을 지나 한참을 올라가니 그곳에 마을의 어떤 이가 차량을 주차장으로 안내하며 지키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슬슬이'야 무슨 상관이람. 밀고 올라가는데 길가에 달맞이꽃이 노랗게 인사를 한다.

거기도 단풍은 붉어, 은행잎은 노랗게 지고. 길가에 계절을 잊은 개나리 한 송이가 또 웃는다. 목적지에 도착은 했는데 시간은 한 시간이 이르다. 9시 10분. 주위를 한번 두리번거린다.

<은행낙엽길>
오른쪽으로 돌아드니 그곳에 노란 은행잎이 길을 덮어 나를 맞이한다. 안쪽에 '행주기씨경수공영역'이란 돌비가 우뚝 서 있다. 하늘을 우러르니 그곳에 또다른 단풍이 나를 멈추게 한다. 아마도 높이가 40여 미터는 족히 되리라. 그곳에, 그 하늘에 산감이 주렁주렁 그야말로 지천이다.

<행주기씨영역><산감>

돌담길을 돌아드니 그곳에 경수공이 거처하셨을 옛집이 언제 단장을 했는지 단정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툇마루 아래에는 철늦은 철쭉 한 송이가 져가고..........

<집><철쭉>
뒤로 돌아가는 저택 오른쪽 문 위에는 문호당이란 현판이 옛 주인인 양 당당하다. 그 곁에는 맹호도 한 폭도 같이 걸려 있어 옛 주인은 꽤나 멋을 부리시는 분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 맹호도도 세월을 못이기는지 퇴락하여 낙관마저 분별이 어렵다.

<문호당>
뒤뜰에 들어서니 그곳에 보리를, 파를, 고추를, 밥풀을 갈았을 확독이 하나, 둘 돌이끼를 머금고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 버려진 옛것들이다. 그 위에 사철나무가 이제 열매를 맺어 예쁜 분홍을 자랑하고 있다.

<확독과 사철나무>
정원수로 뒤덮인 바로 그 耕叟齋다. 아마도 이곳은 경수공 생전에는 서재로 쓰였을 것이나 지금은 사당인 듯 싶다. 민국 29년이라 했으니 아마도 47년이었으리라. 그 광복의 소용돌이속에서 분주하셨을 백범께서 이곳을 다녀가셨다니, 이 경수재에서 머무셨으리라. 나라와 민족만을 걱정하셨던 선생께서 무슨 일로 그 시절이면 걸어서 걸어서 다녀야 했던 길을 다녀가셨을까? 그리고 휘호 하나를 남겨 기씨 자손이 집현판으로 걸었다.

<경수재>
아마도 경수공의 항일행적에 대한 치하였으리라. 경수기양연공기념비가 그 세세한 내용을 말해 준다.

<忠孝世家>
▲ 충효세가 장성 축령산 추암리에서 김구선생의 휘호를 만나다
ⓒ 지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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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경수재 뒷산은 지금도 단풍이 요란하다. 그 앞에는 이상한 나무가 한 그루 눈에 들어온다. 사진에 보이는 부분이 뿌리다. 오른쪽으로 길에 줄기 부분이 자라 누워있다. 곳곳에 이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름하여 臥樹라면 어떨까 싶다. 천학이라 수종을 알 수가 없다.

<臥樹>
돌아나오는 길에 은행나무 사이로 그 행주기씨경수공영역비가 뒷모습도 또렷하다. 잘가란 듯이 노랗게 쌓인 출구가 멀어 보인다.

<은행잎길>
이 녀석도 나를 배웅한다.

<다람쥐>
경수재 후손인 기호방 씨댁 대문앞에 이르니 왕괴불나무가 때 아니게 하얗게 피어 나를 맞이한다. 주인 설명으로는 하도 향기가 좋아 옮겨 심은 거란다. 오뉴월에 피는 우리나라 원산으로 중부 이남에서 자라는 나무다.

<왕괴불나무>
집 뜰에 올라서니 온 산이 다 눈에 들어온다. 소나무 사이로 저 멀리 산들이 그야말로 말 그대로 첩첩이다.

<산첩첩>
현관을 들어서니 예의 김구 선생 휘호인 그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곁에는 이 댁 안주인께서 손수 깎으셨다는 곶감들이 주렁주렁이다. 허락도 없이 그냥 살짝 맛을 하나 보니 그야말로 꿀아 저리 가라다. 너무 달아 두 개는 절대 먹을 수 없다. 믿거나 말거나.

<충효세가>
경수공의 후손 집에 들어서면서, 그 김구 선생의 휘호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경수공께서 살아돌아오시면 이 세태를 두고 뭐라고 하실까? 민족이고 뭐고 먹고만 살면 그만이라는 이 세태를 두고, 당신께서 내 나라를 찾으려고 그렇게 고초를 당하셨던 그 감회를 뭐라 토로하실꼬? 단풍은 의구한데 넋은 간 데 없고! 민족혼은 어디 가서나 찾을꼬?

<讚경수공 기양연翁>
추암리 강림하사 읊조린 충효열사
나라는 갈갈이도 총칼에 찢겨나가
흘린 피 추암리 정자 피하지도 못했네


태그:#산감, #단풍, #축령산, #추암,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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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와 시와 문학과 야생화 사진에 관심이 많아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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