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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작 '공무도하'를 낸 작가 김훈이 13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회의실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갖고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문학동네가 공동주최했으며, 오마이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최근 신작 '공무도하'를 낸 작가 김훈이 13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회의실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갖고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문학동네가 공동주최했으며, 오마이TV를 통해 생중계됐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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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시험 날 아침, 고사장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공무도하> 출간 기념 '저자와의 대화'에 작가 김훈이 이런 이야기 주제를 들고 올 것이라고 예상한 독자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13일 저녁, 녹색 체크 셔츠 안에 파란색 면티를 받쳐 입고 머리엔 낡은 캡 모자까지 눌러 쓴 김훈이 행사 장소인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 들어섰다. 박수가 터지는가 싶더니 이내 박수 소리는 여기저기서 터지는 유쾌한 웃음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그가 문학과 소설 대신 전날 직접 관찰한 수학능력시험장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밝힌 탓이었다. 

▲ 김훈이 본 수능시험날 고사장앞 풍경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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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훈이 본 2009 수학능력시험의 풍경들

김훈은 수능시험이 치러지는 경기도 일산의 집 근처 고등학교 4곳을 새벽 5시부터 돌며 지켜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본 것을 그대로 이야기할 뿐"이라며 소설 속 문체를 빼다박은 말투로 느리게 말을 이었다. 

"동네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했다. 성령에 의지하라고 했다. 엄마들도 아이에게 시험을 잘 보라고 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시험을 잘 본다해도 문제는 남는다. 수능시험은 등급을 정해 밑에 있는 아이들을 잘라내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가 기도를 해도, 애끓는 모정이 기도 한다고 해도 해결할 수 없다. 목사님도 엄마도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앞에 무력하다."

김훈은 교육제도를 비판할 생각이 없다는 다짐을 잊었는지 "고등학교는 평준화 됐지만 수능은 등급을 매기고 대학은 무섭게 서열화 돼 있다"며 "해결할 수 없는 이 모순을 제도로 만들고 그 틀에 맞지 않는 아이들을 잘라내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최근 신작 '공무도하'를 낸 작가 김훈이 13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회의실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갖고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근 신작 '공무도하'를 낸 작가 김훈이 13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회의실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갖고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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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뉴스를 보니 1만명 이상이 시험을 포기했다고 한다. 고사장에 오지 않고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방황을 시작했을 것이다. 1만명의 행방을 궁금해 하지 않는 세상. 그들은 잘라서 버리면 되니까. 가르치는 대상에서 제외시키면 되니까. 그러면서 한 과목 시험이 끝날 때마다 인터넷에 정답을 발표한다. 야만적인 신속함이다."

그러면서 그는 무력감도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시험장에 나타나지 않은 '건강한 문제아'들에게서 무력감을 이길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사물은 고유한 운동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사물의 고정화된 개념을 가르치고 있다. 어제 시험을 보지 않은 아이들 가운데 그런 개념화된 지식에서 벗어난 이들이 많이 나오기를 무력하게도 바라는 수밖에 없다. 허클베리핀처럼 기성체제에 반항하는 '건강한 문제아들'을 기다린다. 그래서 나는 내년, 내후년에도 시험장에 가 볼 것이다."

'건강한 문제아' 허클베리핀을 기다리며

김훈의 '우리나라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특강(?)은 이처럼 희망 섞인 메시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 땅의 모든 '고3'들이 열병처럼 견뎌낸 수능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참가자들은 너무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작가 김훈과 그의 소설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덕분에 자칫 우리나라 교육문제에 대한 토론장이 될 뻔한 이날 저자와의 대화는 가까스로 제자리를 찾았다.

가장 먼저 해소해야 할 의문은 이것이었다. 작가는 왜 남녀간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없는, 고대 시 '공무도하가'와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내용의 소설에 '공무도하'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공무도하가'를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웠다. 무서웠다. 강을 건너려고 했던 한 인간의 좌절과 그것을 바라보는 또 한 인간의 슬픔, 그런 것들이 무서웠다. <공무도하>에 이런 내용이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먼 바탕에는 그런 정서가 깔려있을 것이다."

▲ 김훈 <공무도하> 저자와의 대화 2부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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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가치를 경멸하는 자를 경멸한다"

소설 <공무도하>의 주인공은 기자다. 김훈은 작가로서보다 기자로서 더 오랜 시간을 노동했다. 그래서인지 <공무도하> 속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한 묘사는 기자가 감정이 탈색된 무미한 스트레이트 기사를 쓴 것처럼 푸석푸석하다.

펄에서 미군 폭격기와 전투기들이 쏟아낸 포탄 껍질을 주워 살아가는 남자, 화재 현장에서 귀금속 매장의 보석들을 슬쩍하는 소방대원, 한국인과 결혼 했다 집을 나간 베트남 여자 등 김훈은 사건과 인물에 냉정한 거리를 뒀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글쓰기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공무도하>를 쓸 때 내가 가진 연민이나 서정을 제거하기 위해 애를 썼다. 무정한 인간으로 돌아가서 세상을 냉엄하게 관찰하고 진술하는 문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 했다. 그건 글쓰기의 전략이었다. 연민을 감춤으로써 더 많은 연민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는 나쁜 놈이라고 말을 해야할 때는 '나·쁜·놈'이라는 세 글자를 써서는 안된다. 그 말을 쓰지 않고 그가 나쁜 놈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는 "내게 있어 글쓰기는 문학이나 예술이기에 앞서 밥벌이를 위한 엄숙한 노동"이라며 "생업으로서의 글쓰기라는 세속의 가치와 현세적 질서를 경멸하는 자들을 경멸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4대강 사업? 세종시? 나는 모르겠다"

최근 신작 '공무도하'를 낸 작가 김훈이 13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회의실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갖고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근 신작 '공무도하'를 낸 작가 김훈이 13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회의실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갖고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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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화 자리에서는 종종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민감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냉소'를 방패 삼아 직답을 피해갔다.

"어떤 사람들은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FTA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언론들도 이 어마어마한 문제에 대해서 언론들은 대부분 국민의 판단을 따라야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4대강에 운하를 만들어야 좋은 것인지, FTA를 해야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지 국민으로서 잘 모르겠다. 국민의 판단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공허한 말이다. 전문가들은 다 어디갔나."

그는 또 기자 김훈으로서 정연주 전 KBS 사장과 YTN 기자들이 해임 무효소송에서 승소한 것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법관이 법에 따라 판결을 한 만큼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시민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원칙적인 답변을 했다.

김훈은 끝으로 반드시 도달하고 싶은 견고한 '문체'에 대한 욕심에 대해 말했다. 그는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허영'"이라고 불렀다.

"내게 있어서 문체는 고통스런 글쓰기의 조건이다. 문체가 확보되지 않으면 한 줄도 쓸 수 없다. 판소리로 비유하자면 장식음이 많은 서편제가 아니라 소리의 뼈만 가지고 있는 동편제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말의 군살을 다 버리고 뼈대인 주어와 동사만 가지고 장편 소설을 쓸 것이다.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허영인 것 같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 김훈 <공무도하> 저자와의 대화 3부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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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김훈 지음, 문학동네(2009)


태그:#김훈, #공무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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