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기사 마감으로 인해 전날 3~4시간 밖에 잠을 못 자 정신이 몽롱했던 오후, 눈 아래로 길게  늘어진 다크 서클이 피곤했던 심신을 대변하던 바로 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마이뉴스> 편집부인데요. 정대희 기자님 핸드폰 맞나요?"
"네,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연말을 앞두고 세대별로 기사를 요청하고 있는데, 정 기자님이 내년에 서른 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서른살을 맞이하는 기분에 대한 주제로 글을 하나 써 주었으면 해서요."
"아~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원고 청탁을 받은 날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대강 이런 대화가 오고 간 것으로 기억한다. 일단 승낙을 했지만 곧바로 후회감이 몰려왔다. 돌이켜보면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내뱉은 실수였다.

책상을 바라보니 각종 자료가 좁디좁은 공간에 쌓여 있었고 수첩에는 취재할 일들이 빼곡했다. 그렇다고 취소하기에도 너무 늦었다. 이튿날 다시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되뇌며 재차 글의 주제를 물었다.

미리 경험한 서른, 그 현실은 밝지 않았다

어렸을 적, 서른 살이 되면 결혼도 하고 독립도 했을 거라 생각했다. 사진은 SBS 드라마 <그대 웃어요>의 한 장면.
 어렸을 적, 서른 살이 되면 결혼도 하고 독립도 했을 거라 생각했다. 사진은 SBS 드라마 <그대 웃어요>의 한 장면.
ⓒ SBS

관련사진보기


서른 살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사실 일곱 살에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한 나와 달리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올해 서른 살이 됐다. 때문에 나는 상황에 따라 스물아홉이 되기도 하고 서른 살이 되기도 했다. 간혹 이런 고무줄 나이가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실제 나이보다 대접 받았던 기억이 더 많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에는 보통 아이들과 달리 학습능력이 떨어지기도 했다. 받아쓰기 시험을 보면 유독 '나머지 공부'를 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나를 '유급' 시켜야할 것 같다고 부모님에게 권유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참 굴욕적인 일이다.

학창시절에는 서른 살이 되면 '어른스럽게'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곤 했다. 결혼도 했을 터이고, 귀여운 아이와 함께 꽤 멋스러운 집에서 화목하게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서른 살을 앞둔 지금의 내 모습은 상상해왔던 것과는 차이가 크다. 결혼은 물론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버젓한 집을 장만하지도 못했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소년에게 닥친 현실을 잔혹했다. 어쩌면 그토록 꿈꾸던 평범함이 곧 이상적인 삶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서 꿈꾸던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첫째, 결혼할 배우자가 있어야 했고, 둘째 함께 살 집과 자동차, 약간의 저축금 등 경제력을 갖춰야 했으며 끝으로 이를 만족시키기 위한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서른 살 즈음 바라본 세상은 아직 잔존해 있는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남자 아이들에 비해 여자 아이들의 비율이 낮아져 있고 농촌에는 국제결혼이 성행하고 있으며, 아파트 한 채 값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것만 같은 수억 원을 호가하고 있다. 또, 자동차 기름값은 하루가 멀게 솟아오르고 통장에 잔액은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이 입금하기 무섭게 어디론가 빠져 나가버린다. 여기에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백~수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한다.   

서른 살 앞두고 30배 이상 늘어난 삶의 무게

20대에 들어서면서 느꼈던 삶의 무게는 서른 살을 앞두고 30배 이상 늘어난 것 같다. 그렇다고 마땅히 하소연 할 곳도 없다. 모두 개인 문제이고 사정일 뿐이다. 설사 하소연 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스스로 능력 없음'을 떠들고 다니는 것 같아 말하지도 못한다. 참으로 씁쓸하다.

10대가 되면 으레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20대에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렇다면 30대의 주 관심사는 무엇일까? 평소 이미 서른 살이 되었거나 이제 곧 서른 살이 되는 주변 친구들과 모이게 되면 자주 나누는 대화를 떠올려 보니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가 다수다.

물론 처음부터 결혼과 관련된 대화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결혼을 했거나 혹은 하지 않았거나, 애인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로 좁혀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이미 결혼한 친구들이 많은 조언을 한다. 서른 살을 전후로 '결혼'에 관한 대화가 주를 이루는 이유는 아마도 결혼하는 친구들도 하나 둘 늘고 부모님에게나 주변 친지들에게도 '결혼 안 하냐?'는 독촉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남자들이 여자보다 결혼 자격조건에 고민하는 것 같다. 대개 경제적인 이유로 고민을 하게 되는데 '살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거나 최소한의 결혼비용조차도 마련하지 못했다는 말이 주를 이룬다. 생각해보면 결혼에서 있어서 남자들이 받는 중압감은 크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생각하는 결혼 적령기는 집과 자동차, 약간의 저축금이 마련되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자들의 경우 제대하고 대학교를 졸업한 서른 살쯤이면 불과 2~3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 정도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솔직히 주변에 잘 사는 집, 흔히들 '부잣집 아들', '재벌 2세'를 부러워하는 남자들도 많다.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결혼할 상대, 즉 배우자들이 경제적인 요건을 갖춘 남자를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남자들도 다수다.

실제 주변에 있는 친구 가운데 한 명은 "남자는 능력이 최고다, 얼굴 잘생기고 성격 좋으면 뭐하냐? 돈이 없는데… 나중에 결혼 할 때면 여자들도 능력 있는 남자 찾는다"고 말한다. 물론, 이 친구의 이런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대개 남자들이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어쩌면 남자들의 이런 '자본주의적 성향'은 나이를 거듭할수록 더 강해지는 것 같다.

고로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위축되는 남자들이 많다. 사랑하는 사람을 고생시키고 싶은 남자는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갓 사회생활에 접어둔 서른 살 사회 초년생이 대면한 세상은 참 어둡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원고 청탁을 받고 들어본 김광석의 '서른 즈음'란 곡에서 전해지던 우울함이 다른 때보다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기다려라, 세상아... 서른 살인 내가 간다

어릴 적엔 서른 살이 되면 결혼도 하고 애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사진은 SBS 주말드라마 <천만번 사랑해>의 한 장면.
 어릴 적엔 서른 살이 되면 결혼도 하고 애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사진은 SBS 주말드라마 <천만번 사랑해>의 한 장면.
ⓒ SBS

관련사진보기


그렇다고 좌절하고 우울해 하기엔 서른 살 즈음은 제2의 인생의 서막이 오르는 중요한 시기다. 그래서일까? 서른 살이 된다니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교차하는 묘한 감정으로 복잡하다. 서른 살은 삼십대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20대가 덜 성숙한 나이라면 30대는 용어 자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느낌처럼 왠지 어른스런 분위기다.

실제 어른이 되는 과정중 하나로 여겨지는 '결혼'도 서른 살 즈음에 많이 한다. 내 주변에도 최근 결혼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축의금으로 지출되는 금액도 자연스레 커졌다. 물론 축의금으로 인한 과다 지출로 가끔씩 몹시 불편한 생활을 겪기도 하곤 한다. 그러나 개인사를 뒤돌아볼 때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에 흔쾌히 봉투를 건네려고 노력한다.

직장생활에서는 조금씩 맡은 업무에 적응하고 능률이 오르기 시작하는 시기가 서른 살 즈음인 듯하다. 나는 올해 지역신문에서 취재기자로 근무한 지 3년차를 조금 넘겼다. 입사를 하고 3개월까지는 정말 힘들었다. 솔직히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빨간펜'으로 장식된 내 글들을 볼 때마다 내 자신을 탓하며 거친 욕도 내뱉고 자괴감에 휩싸여 스스로 움츠러들곤 했지만 그렇게 6개월, 1년, 2년, 3년을 견디다 보니 그러한 과정이 필요악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어쩌면 사회생활에 있어서 서른 살까지는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말처럼 갖은 고충과 인내를 감당해야하는 시기인 것 같다. 개인들의 주관 성립도 서른 살 즈음에 재정립되는 듯하다. 나도 지난 몇 년간의 사회생활과 개인사 등을 통해 얻은 노하우가 기존의 사고와 가치관을 변화시켰다.

우습지만 어릴 적 밤 9시만 되면 아버지가 시청하던, 그토록 재미없게 느껴지던 뉴스가 이제는 재밌게 시청하고 있는 모습에서 달라진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주변 상황과 스스로가 변하다보니 지난 세월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감도 커진다.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하지 못한 아쉬움, 의미 없이 보낸 시간에 대한 후회감 등 자신을 반성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서른 살이 되는 느낌을 말한다면? 글쎄… 굳이 답을 달고 싶지는 않다. 그저 제 2의 인생 서막이 올랐으니 세상이란 무대에서 스스로가 주연을 맡아 후회 없는 연기를 보여 주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꿈을 꾸고 싶다.


태그:#서른, #제2의 인생, #결혼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