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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강동순 전 KBS 감사,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 이병순 현 KBS 사장.
 왼쪽부터 강동순 전 KBS 감사,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 이병순 현 KBS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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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KBS도 거듭나야 한다."

이것은 지난해 8월 11일 이명박 대통령이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하면서 한 말이다. 이 말에서 우리는 이전의 KBS를 죄악시하는 이 대통령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거듭나다'라는 말은 주로 기독교에서 쓰는 어휘로서, '원죄로 인해 죽었던 영이 예수를 믿어 새 사람이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남짓, 이 대통령의 말대로 KBS는 거듭났는가? 그의 말대로 KBS는 '원죄'(잃어버린 10년?)를 씻고 새 사람(방송)이 되었는가 말이다.    

돌이켜보건대 이명박 정부가 정연주 사장을 축출하는 데 경주한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로 집요했다. 그들은 임기가 1년여밖에 남지 않은 방송사 사장 하나를 집어내기 위해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감사를 벌이고 사장을 무고하고 이사를 불법 축출하고 이사회를 변칙 개최하는 등 별의별 희한한 수단을 다 구사했다. 마침내 그것이 효력을 보아 녹록찮게 버티던 사장이 물러나게 된 마당에 대통령으로서 어찌 감회와 희망사항이 없었겠는가? 그래서 대통령은 말했을 터이다. 이제 KBS도 거듭나야 한다고.

그로부터 1년, 과연 KBS는 거듭났는가

그때 그의 심중에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 잘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미 청와대에서는 차기 사장으로 김인규씨를 내정해 놓은 상태였다. 김인규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언론특보로서 방송전략팀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시는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구본홍 YTN 사장이 낙하산 인사 시비로 YTN 노조원들로부터 드센 저항을 받고 있던 때였다.

또한 한나라당은 이미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특보를 지낸 서동구 KBS 사장을 '낙하산 인사'라고 하여 부임 9일 만에 몰아낸 전력도 있었다. 그때 한나라당이 내놓은 논평은 오늘에 비추어 다소 희극적이다.

"공영방송을 어용방송으로 만들기 위한 폭거다. 밀실에서 제청된 측근인사의 임명은 대통령의 언론관은 물론 공영방송의 공정성마저 의심케 한다. 우리 당은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 모든 양심세력과 연대, 당력을 모아 강력 투쟁할 것이다." (한나라당 박종희 대변인, 2003년 3월 25일)

"서 사장 선임 배경으로 현 정권 실세의 개입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방송을 정권의 홍위병으로 삼아 포퓰리즘 정치를 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반민주적, 시대착오적 폭거다.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사 사장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과 코드가 맞고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으면서 방송중립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 2003년 3월 26일)

다시 작년으로 논의를 되돌린다. 그때는 무엇보다도 광우병 촛불 열기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김인규의 대안'을 모색해야 했다. 그들은 8월 1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긴급히 비밀회동을 한다. 이 자리에는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에다 나경원 한나라당 정조위원장 그리고 난데없이 김회선 국정원 제2차장까지 참석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가 KBS 사장 자리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단적으로 알려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많은 고위급 인사들을 긴급히 회동하게 만들 정도라면 그것이 누구의 뜻에 의한 것인지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들은 공영방송의 후임 사장 자리를 놓고 음험한 밀실 논의를 했다는 혐의를 벗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심중에도 없던 이병순 KBS 비즈니스 사장을 궁여지책으로 KBS 사장에 낙점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김인규 사장을 앉히는 데에는 실패했다. 요컨대 그들의 KBS 장악 시나리오는 3악장 정도에서 미완으로 남은 셈이었다. 하지만 '이병순 사장'도 어차피 그들의 '선택'이었음은 분명한 것이다.

그들의 '선택', 이병순 사장이 벌인 일들

그들의 '선택'이었던 이병순 사장은 가을개편을 하면서 <미디어포커스>를 <미디어비평>으로, <시사투나잇>을 <시사360>으로 바꾸어 시사성과 비판성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사장 취임을 반대한 '사원행동' 관련자들을 징계했다. 또한 KBS는 보신각 제야행사를 중계하면서 새로운 화면 조작 테크닉을 선보이기도 했다.

라디오는 라디오대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정관용, 박인규씨 등 역량 있는 시사 전문가들이 마이크를 놓았다. 시사·뉴스 프로그램들의 진행은 거의 아나운서들이 맡아 따분해졌다.

KBS는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한 보도에서는 대다수 국민의 빈축을 샀다. 봉하마을에서 쫓겨난 KBS 뉴스 중계차는 1km 이상 떨어진 들판에서 황소들이 풀을 뜯는 것을 배경으로 중계방송을 하기도 했다. 메인 뉴스인 <뉴스9>에서는 첨예한 현안이었던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 관련 기사를 11번째 꼭지로 내보냈는데 그것도 야당 의원들의 질문 가운데서 비교적 온건한 부분만을 인용하여 편집한 것이었다.

한편 KBS 사장을 희망했던 김인규씨는 '이명박 정부를 위해 KBS 사장직을 포기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그는 디지털미디어산업협희 회장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그는 KBS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은 것 같다. 노무현 정부 때도 KBS 사장 공모에 지원한 적이 있는 그가 이번 사장 공모에도 다시 지원서를 낸 것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23일 한국방송 기자협회 송년회에 안형환 한나라당 의원 등과 함께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 1월 6일 서울대 <동문회보>와 인터뷰에서 이례적인 발언으로 주변의 관심을 모았다. 그는 "KBS PD 300명을 들어내도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방송 개혁 1번이 PD 개혁" "PD들이 비정상적으로 권력화돼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그는 방송 PD들에 대한 대폭적인 구조조정을 촉구한 것이다. 아무튼 그가 유난히도 PD를 공격한 의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발언이 누구의 '코드'와 맞는 것인지?

또한 그는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으로서 비정상적인 업무 때문에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전병헌 민주당 의원이 낸 보도자료에 의하면 "(이)협회는 창립 때 20억 원, 올 들어 또 20억 원을 추가징수하고도 하반기 들어 수백억 규모의 기금 조성을 위해 통신사들에게 출연금 납부를 요청했으며 통신사들이 난색을 표하자 청와대까지 나서 통신사들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전 의원은 김인규 회장이 '차기 KBS 사장 및 방송통신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정권 실세'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이 낙점한 차기 KBS 사장은 누구일까

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지난 8월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64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는 모습.
 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지난 8월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64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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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KBS 사장 공모에 응모했을까? <조선일보>는 11일 'KBS 사장 누가?'에서 "현재 KBS 안팎에서는 이병순 현 KBS 사장과 강동순 전 KBS 감사, 권혁부 전 KBS 이사 등이 유력 후보로 꼽힌다"고 전하면서도 "마지막 변수는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장의 거취라고 보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KBS 사장은 형식상 이사회와 사추위가 인선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10일 마감된 차기 사장 공모에는 이병순 현 한국방송 사장,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 등 15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추위는 13~14일 이틀 동안 공모자들에 대한 서류심사를 진행한다. 이사회는 사추위에서 압축한 5명의 후보를 받아 19일 전체회의를 열어 최종 후보자를 결정한다. 그리고 20일 대통령에게 사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제청한다.

다시 말하지만 형식상 그렇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KBS 사장 인선을 앞두고 이동관 홍보수석을 통해 이례적인 훈수를 두었다. 이 대통령의 발언 내용은 첫째 'KBS 이사회는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최적임자를 뽑아주기 바란다', 둘째 '신임사장 선임 과정에서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나 부적절한 논란이 없도록 선임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셋째 '신임사장은 공영방송으로서 KBS 위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비전과 철학을 갖추고, 방송통신 융합 시대에 미래 방송 산업의 발전을 선도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에서 첫째는 의례적인 발언일 뿐이다. 둘째는 작년 사장 선임 때 있었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니면 선임 이후 불거질 논란을 예방하기 위해서 한 말일 수도 있다. 의미심장한 것은 셋째 발언으로 보인다. 이 발언은 신임사장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KBS의 위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면 이미 1년 동안 재임한 이병순 현 사장은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리고 그 다음 말, '방송통신 융합 시대에 미래 방송 산업을 선도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 아주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위원장은 금년 초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09년 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 축사에서, "올해는 미디어 빅뱅의 해가 될 것"이라고 예고하고, "구시대의 유물인 매체간 장벽을 과감히 허물고 창의적 아이디어와 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해 미디어산업의 체질을 강화시켜 갈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자리에는 김인규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장도 참석했는데, 이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KBS 사장 훈수발언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런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이명박 정권이 낙점한 차기 KBS 사장이 누구인지 추정이 가능해진다.

방송 파국만 초래하는 방송장악 시나리오

많은 언론들은 이병순 사장의 유임을 점치기도 하지만 이 사장은 이미 '사원행동'과 노조 등 KBS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배척을 받고 있다. 정연주 사장에 대해서도 반대한 바 있는 KBS 노조는 "KBS 내부구성원 76.9%가 연임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지난 1년간 권력에 대한 비판·감시를 제대로 하지 못해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해내지 못했으며, 무리한 연봉계약직 해고와 제작비 삭감, 비판 프로그램 축소 등을 통해 제작진의 방송에 대한 열정과 창의력을 없애버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강동순 전 감사에 대해서는 "200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 집권을 위해 언론을 어떻게 장악할지 논의한 이른바 '녹취록 파문'의 핵심 당사자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인물"이며 "한나라당의 대선 전략을 조언해주는 '정치 브로커'에 가까운 발언들과 지역 차별 발언, 젊은 판사들에 대한 비하발언 등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면서 반대를 분명히 했다.  그들은 '김인규 안'에도  '낙하산 인사 불가'라는 명목으로 반대하고 있다.

결국 누가 KBS 사장이 되더라도 아주 심각한 부작용과 후유증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KBS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파업이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태는 매우 비관적이다. 이것은 공영방송의 파행과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불행한 것은 누가 사장이 되더라도 KBS의 공영방송체제는 완벽하게 붕괴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권력을 앞세워 방송장악을 한다고 해도, 그에 대한 심판은 결코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이다.

마침 KBS 신임사장 공모 서류심사가 시작되기 전날인 12일, 법원은 정연주 사장 해임 처분에 대해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이 모든 것은 방송장악에 병적으로 집착한 이명박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태그:#KBS사장, #방송장악시나리오, #김인규, #이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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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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