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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동유적의 고상가옥들 김해 봉황동유적에선 가야시대의 고상가옥들이나 주거지 등을 복원해 놓았다.
▲ 봉황동유적의 고상가옥들 김해 봉황동유적에선 가야시대의 고상가옥들이나 주거지 등을 복원해 놓았다.
ⓒ 오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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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봉황동유적은 김해시민들은 물론 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야시대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교육의 장으로서 활용된다. 가야시대 가옥과 배, 그리고 마을의 모습이 복원되어 있고 자그마한 공원으로 꾸며졌기 때문이다.

특히 복원 부분에서 많은 신경을 써놨기 때문에 여느 유적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일반적으로는 유적의 보존을 우선시하여, 복원보다는 발굴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에 급급함에 비해, 봉황동유적은 복원을 우선시하였다는 점이 특징이자 강점이다.

사실 이런 유적은 봉황동유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암사동유적이나 부여 송국리유적, 순천 고인돌공원 등에서도 이런 주거지 복원이 이뤄졌다. 일본 야요이시대의 요시노가리유적은 이런 복원된 마을의 대표적인 예이며, 중국 심양의 신락유적도 이런 식으로 복원되어 있다.

또한 부여에서 백제역사재현단지가 백제시대 주거지와 건물들을 다수 복원하여 개관할 예정이며, 김해에서도 가야역사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이런 주거지 복원 등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하니 여러모로 기대가 된다.

봉황동유적은 여러모로 신경 써서 복원한 느낌이 많이 들지만, 그래도 더러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이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차후에 약간의 보완을 하면 어떨까 싶다.

고상가옥, 무엇을 보고 복원했을까?

집모양토기 오른쪽은 국립김해박물관 소장품이며, 왼쪽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창원 다호리유적 출토 집모양토기이다
▲ 집모양토기 오른쪽은 국립김해박물관 소장품이며, 왼쪽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창원 다호리유적 출토 집모양토기이다
ⓒ 정동귀, 철의 왕국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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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동유적에 복원되어 있는 고상가옥을 보면서 누구나 드는 의문은 과연 어떻게 복원하였을까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 고려시대의 것임을 상기해 본다면, 1500년은 훨씬 넘긴 가야시대의 목조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가옥을 모습을 세밀히 복원하여 일반인들도 볼 수 있게 하려면 그에 따른 수많은 자료들이 필요로 한다.

일단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는 고고학적인 증거, 즉 유구의 모습이다. 고상가옥, 즉 굴립주식건물지의 유구를 보면 주로 동그라미가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의 모습을 가지고 열을 맞춰 배치되어 있다. 이게 과연 고상식가옥의 흔적인가에 대해 갸우뚱거리는데, 당시 건물의 기둥이 있던 자리의 흔적이 그렇게 남은 것이다. 이를 토대로 건축학적으로 살펴보면 당시 고상가옥의 크기와 규모를 대강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로서는 부족하다. 뭔가 그 당시 주거지의 모습을 알만한 확실한 유물은 없을까? 이에 대해서 주로 활용하는 자료는 고분벽화나 당시의 유물들, 혹은 민족지 자료가 있다. 이 중에서 가야의 고상가옥은 유물을 통하여 그 모습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바로 집모양토기라고 하여 그 당시 집의 모습을 본떠서 만든 토기들이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러한 토기들을 흔히 상형토기(像形土器)라고 부르며 앞서 말한 집 모양 외에도 동물, 인물, 물건 등을 형상화한 토기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가야와 신라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앞서 말한 가야 고상가옥을 복원하는데 참조한 자료는 바로 집모양토기[家形土器]이다. 집모양토기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호암미술관, 그리고 국립김해박물관 등에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창원 다호리유적에서 발견된 집모양토기도 있는데,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봉황동유적의 고상가옥은 이를 참조하여 복원된 것이다.

방서판 쥐의 침입을 막는 용도로 만들어졌으며 일본 요시노가리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이를 봉황동유적에도 적용시켰다.
▲ 방서판 쥐의 침입을 막는 용도로 만들어졌으며 일본 요시노가리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이를 봉황동유적에도 적용시켰다.
ⓒ 요시노가리 특별전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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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김해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집모양토기는 창원 다호리유적에서 발견된 집모양토기와도 비슷하다. 지붕과 문, 그리고 올라가는 계단과 기둥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한 게 특징으로서 이를 토대로 집과 나무 등을 이용해 복원하였다. 그러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이 외의 자료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방서판(防鼠板)이다. 방서판은 고상가옥 내부로 침입하는 쥐를 막는 판자라는 듯으로 고상가옥의 기둥과 집 아랫부분 사이에다가 두며 역경사로 달아놓았다. 사실 국내에서 출토되어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본의 요시노가리[吉野ヶ里]유적에서 출토된 것이다. 고대의 한국이나 일본은 공통점이 많았고, 일본에서는 이런 유물들이 풍부하기 때문에 봉황동유적의 복원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이다.

굳이 주거지 입구에 자물쇠를 걸어야하나?

봉황동유적의 고상가옥 가야 주거지군에는 망루, 주거지, 고상가옥 등이 복원되어 있다. 하지만 주거지 입구는 통나무를 이용하여 봉쇄하거나 자물쇠를 잠가놓았다.
▲ 봉황동유적의 고상가옥 가야 주거지군에는 망루, 주거지, 고상가옥 등이 복원되어 있다. 하지만 주거지 입구는 통나무를 이용하여 봉쇄하거나 자물쇠를 잠가놓았다.
ⓒ 오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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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동유적에서는 복원된 가옥들로 공원을 조성하였고, 또한 이게 도심과 잘 어울리면서 진풍경을 자아낸다. 하지만 가까이 살펴보면 약간 아쉬운 부분이 더러 있다. 그 중에서도 고상가옥들이 단지 바라만 볼 수 있는 존재일 뿐이라는 점이 꽤 안타깝다.

봉황동유적의 고상가옥들은 현재 모두 문이 굳게 닫혀 있는 상태이다. 닫혀있다 못해서 아예 자물쇠로 단단하게 채워놓기까지 하였는데, 이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복원된 가옥은 그 당시 모습을 살펴보는 중요한 교육의 장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는 겉모습만 볼 수 있을 뿐이지 건물의 내부를 볼 수 없다. 물론 내부가 과연 크게 대단할 것이 없다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왕 고상가옥을 복원해 놓았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서 고상가옥 내에 문을 열고 그곳에 가야시대에 사용하였던 토기나 유물들을 진열해 놓아 그 용도를 쉬이 짐작할 수 있게 해 놓는 것이다. 혹은 주거지의 경우 그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마네킹으로 만들어 내부에 비치해 두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이다. 사실 관리의 문제 때문에 자물쇠로 잠가놓아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다. 애초의 의도와는 어긋나게 복원 가옥들을 훼손하거나 화재를 일으킬 염려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감시요원 등을 배치하거나 카메라를 설치해야하지만 이를 낭비로 보는 경향도 있다는 점이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하지만 문화재 지킴이처럼 자원봉사자를 통하여 이곳을 둘러보면서 관광객들에게 소개를 하고, 또한 관리에도 신경을 쓰는 방식은 어떨까싶다. 가야시대의 복식을 최대한 재현하여 이를 입고서 봉황동유적을 소개한다면 이 또한 김해시로서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관광 자원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봉황동유적의 망루 망루는 외부인들의 출입을 감시하거나 적의 공격을 살펴보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봉황동유적의 망루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올라가는 계단을 모두 막아 놓았다.
▲ 봉황동유적의 망루 망루는 외부인들의 출입을 감시하거나 적의 공격을 살펴보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봉황동유적의 망루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올라가는 계단을 모두 막아 놓았다.
ⓒ 오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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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한 사례는 봉황동유적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여러 복원 가옥들이나 문화재들의 경우 입구를 막아 놓아 관광객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곳이 많다. 이 또한 관리상의 문제 때문에 그런 것으로서 시각적으로 살펴보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시각적 효과를 넘어서서 체험 위주 방식이 늘고 있다. 예전엔 박물관들이 과거에는 유물을 전시 하는 데에 국한되었으나, 최근엔 거의 모든 박물관들이 나름의 체험시설을 마련해 놓아 어린이 관람객이나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에게 추억과 교육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점을 참고하여 봉황동유적도 적극적인 활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설사 이런 방식을 항상 유지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주말마다 개방하여 구경할 수 있게 하는 식의 절충안 또한 있을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하였듯이 자물쇠는 가급적 떼어버리는 게 어떨까? 가야시대의 자물쇠도 아닐뿐더러 폐쇄적인 느낌을 주어 관광객들이 보기에 눈살이 찌푸리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봉황동유적 외에 다른 전통가옥이나 문화재에서도 문을 굳게 닫아 놓거나 내부를 개방 안한 경우, 괜한 호기심 때문에 이를 훼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관광객의 의식도 문제이지만 무조건 폐쇄가 꼭 최고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문화재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물론 곳곳에 안내문을 설치하여 이해를 도모하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방서판의 경우 그에 따른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은 쉽게 알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세부적인 내용 또한 표시를 해 줌으로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도모한다면 더욱더 교육적인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봉황동유적의 경우 다른 유적이나 문화재가 갖고 있지 않는 장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를 현상 유지만 할 것이 아닌,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김해 봉황동유적의 복원 가옥들이 어떻게 복원되었는지 살펴보고, 이 유적의 활용방안에 대해 다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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