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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접촉이 많은 종교계, 신종플루 차단에 부심

신종플루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의 일상에 큰 변화를 주고 있다. 가급적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전철이나 버스에서 기침을 하고 재채기하는 사람은 주변사람들의 눈총을 받기 일쑤다. 신종플루와 관련해 영향을 받는 곳 중 하나가 종교시설이다. 학교나 군대만큼은 아니더라도 다수 사람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교회나 성당, 사찰의 경우는 요주의 대상이다. 국내 첫 신종플루 감염자가 공교롭게도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귀국했던 천주교 수녀였던 점을 감안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 견지동 조계사 입구에는 신종플루예방을 위한 수도꼭지와 세정도구가 준비되어 있다. 조계사신도들이 절에 들어가기 앞서 손을 씻고 있다.
▲ 조계사 서울 견지동 조계사 입구에는 신종플루예방을 위한 수도꼭지와 세정도구가 준비되어 있다. 조계사신도들이 절에 들어가기 앞서 손을 씻고 있다.
ⓒ 백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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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자수가 수천 명이 넘는 곳의 경우는 집단감염의 우려 때문에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문을 비롯한 여러 곳에 손소독기와 세정제를 비치해놓고 신자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종교인구의 다수가 젊은 층보다 플루에 취약한 중노년층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더 많은 대비가 필요한 실정이지만 사태가 악화될 때마다 종교관계자들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개신교의 경우는 일부 기도원에서 신종플루 감염자가 발생했고 행사변경과 취소도 속출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정통(총회장 장원기)측은 지난 9월말 열린 제94회 총회 개최지를 천안 백석대학교로 정했지만 플루 위험으로 교내 대형집회를 열지 말라는 교과부의 통보를 받은 백석대가 취소 요청을 하면서 총회장소가 수원명성교회로 변경되기도 했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요즘은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구성원 간의 신체접촉이 많은 천주교 쪽에서도 골치를 앓고 있다.

모든 신자들이 성당에 들어올 때 손을 넣어 사용하고 있는 성수그릇의 문제에서부터 미사 영성체 때 성체 분배자들이 손가락으로 성체를 신자들 입이나 손바닥에 나눠주는 것, 서로 손을 잡고 기도하는 것, 미사 중 옆사람과 인사하면서 악수하는 것, 각종 행사나 모임, 교육 등으로 밀폐된 공간에 함께 있는 것, 신자들끼리 식음료를 함께 나누는 것 등 많은 부분에서 신종플루 전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벌써 여러 성당에서는 성당입구 성수그릇 자체를 제거해 대량 감염의 위험을 예방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소란 가운데 미담도 들리고 있다. 광주광역시 학운동 성당에서는 지난 9월말 신종플루에 대한 우려로 행사를 취소하면서 생긴 예산을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와 장애인 시설인 광주 백선바오로의 집에 나눠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학운동 성당의 사례는 신종플루로 많은 단체들이 행사를 취소나 연기하는 상황에서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불교의 경우, 조계종은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교육중 대규모로 모이는 경우에는 의료진과 협조해 행사 참여자들의 체열을 확인하고 손세정제 등을 비치하고 있으며 태고종(총무원장 인공)은 날씨가 추워질수록 플루가 유행할 것이라는 예보에 따라 예비승려들을 대상으로 11월 3일까지 진행하기로 했던 교육을 10월말에 마무리했다. 불교단체인 생명나눔실천회는 9월말 1천여 명이 참가한 '제2회 생명나눔과 함께 하는 희망걷기대회'행사 때 모든 행사 참가자를 대상으로 체온 체크와 손 소독을 실시했으며, 전신 분사식 소독터널을 설치해 참가자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키기도 했다.

불교나 기독교 등에서 진행되는 신종플루에 대한 종교계의 대책활동은 이전에 비해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질병이 유행하면 기독교 세계에서는 신의 징벌 또는 마녀들의 소행으로 여겨 희생양을 찾기에 급급했고 동아시아에서는 주술행위를 통해 병을 고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행위들은 질병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물론 아직도 일부 종교인들은 역병이나 쓰나미같은 천재지변이 나면 '예수를 믿지 않아서 그렇다'라는 망언을 하기도 한다. 그런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한다는 것은 그런 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신종플루같은 질병의 유행은 지구 종말론자들의 단골 메뉴가 된다. 최근 개봉을 앞두고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2012년>의 경우 2012년 지구가 멸망한다는 마야인들의 전설을 소재로 하고 있다. 멕시코 접경국가인 과타말라 고원에 살고 있던 키체족은 자신들의 서사시 '포폴부'에서 2012년 12월 23일이 되면 현 인류가 무시무시한 재앙을 맞아 지구상에서 소멸한다고 예언했다. 이 서사시에도 어김없이 불, 홍수 외에 역병이 번져서 인류가 멸망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단선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 역시 종말론의 터전이 되고 있다. 신약성서 마지막에 위치한 요한 계시록에는 4명의 기사(질병·전쟁·기근·죽음을 상징)가 나타나 역병과 기근, 지진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인류는 지옥을 방불케 하는 고통에 시달린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물론 최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해 선한 자들을 구원한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사실 요한계시록은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던 시대의 종교적 현실과 사회상을 반영한 책인데도 많은 상징과 비유로 인해 보수 기독교인에게는 인류종말에 대한 예언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비해 우주의 기원과 소멸에 대해 순환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불교는 종말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다. 정법, 상법, 말법이라는 시대 구분이 불교적 종말론이기는 하지만 말법의 시대가 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종말이 오면 또 다른 시대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종말론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불교계 일부에서는 현재가 말법의 시대라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소란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보건당국과 언론도 과도한 공포와 위기감 조성에 일조

결과적으로 신종플루는 신의 징벌 같은 종교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인류라는 종에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지구에 걸쳐 수렵과 유목, 농경생활을 통해 수많은 동식물과 접촉하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질병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농업혁명을 통해 인구가 증가하고 지역 간 교역과 교통이 발달하면서 역병의 피해규모는 확대되었다. 14세기 몽골족에게서 유래한 것처럼 뒤집어 씌워진 페스트로 인해 14세기 유럽에서는 인구의 1/3이 사망했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순차적으로 전해진 천연두, 홍역, 발진티푸스로 인해 아메리카 원주민의 절반이상이 세상을 등져야 했다. 그리고 현재도 아프리카나 남미에서는 매년 말라리아와 댕기열 같은 풍토병으로 수백만 명이 죽어가고 남아공화국에서는 인구의 최소 1/10이 에이즈 환자라는 공식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전염병의 창궐은 인간의식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질병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신의 저주와 분노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곧 종말의 징조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질병의 원인이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에 의한 것으로 밝혀진 뒤에는 해당 질병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었고 천연두 같은 질병은 세계보건기구에 의해 공식적으로 소멸된 것으로 분류되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난한 문화예술인의 질병처럼 간주되었던 결핵도 영양 상태와 위생환경이 개선되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신종플루 역시 독감과 유사한 것으로 즉각적인 대비가 없는 상태에서 유행하고 있지만 체계적인 대책과 치료가 진행되면 잠잠해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에서는 신종플루에 대한 전 세계적인 공포는 오히려 종교가 아닌 과학을 신주처럼 모시고 있는 세계 보건기구(WHO), 미국 FDA, 다국적 제약회사, 일부 언론 등에 의해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신종플루로 인해 수백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WHO와 각국 보건당국의 주장은 세계인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고 백신비축분이 부족하다는 언론보도는 백신가격의 폭등을 불러왔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3세계에서 풍토병으로 수백만 명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북미와 유럽, 동아시아 등 북반구를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는 신종플루는 부유국들의 엄살에 불과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제 3세계형 질병들은 가난한 민중들이 앓고 있기 때문에 백신이나 치료제를 만들어봐야 본전도 못 건진다고 판단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입장에서 신종플루는 노다지 중에 노다지라고 할 수 있다. 

신종플루를 통해 종말론에 버금가는 괴담들이 국제기구나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그만큼 오늘날 세계가 혼돈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금융위기가 심화되는 시기와 맞물려 발생한 신종플루는 파산위기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고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위기감과 박탈감은 신종플루에 대한 과도한 반응으로 이어졌다는 판단이 든다. 위기가 과도하게 부풀려진 시대에는 무엇보다 종교적 평정심과 성찰이 필요하다. 모처럼 종교계의 역할이 점점 커지는 시점이다.


태그:#신종플루,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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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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