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상 기자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와 <벤자민 버튼…>의 결정적 차이'라는 기사에서 두 영화가 특수분장과 구성의 치밀성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하며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내가 보는 진짜 차이는 기술적인 불완전성이나 설정의 어색함이라기보다는 포커스다. 영화가 무엇을 그리고자 하느냐이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의 제목은 왜 '시간 여행자'가 아니라 그의 아내였을까. 의문은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자 풀린다. <시간 여행자…>와 <벤자민 버튼…>은 확실히 비슷한 영화다. 그들의 시간은 평범하지 않다. 거꾸로 가거나 이리저리 꼬여 있다. 대개 영화가 그렇듯 사랑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도 같다. 하지만 <시간 여행자…>의 포커스는 그들의 사랑이고 <벤자민 버튼…>의 초점은 주인공의 시간이다. 그 점이 다르다.

 

  벤자민의 시간은 일관되게 거꾸로 갔지만 헨리의 시간은 대중이 없다. 여기로 갔다가 저기로 갔다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 든다. 예측이 불가능하기에 아마 훨씬 더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벤자민 버튼…>이 거꾸로 가는 그의 시간과 그로 인한 인생 질곡에 중점을 둔다면 <시간 여행자…>는 시간을 통제할 수 없는 헨리 때문에 언제나 남겨지고 그를 기다리는 아내와의 시간을 초월한 사랑에 더 주목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이라는 기본 아이디어는 흡사하지만 방점은 다르게 찍혔다.

 

  유전학적으로 시간여행이란 가능한 일일까. 상식적으로 터무니없다. 그럼에도 내가 볼 때 영화는 꽤나 그럴싸하게 스토리텔링하고 있다. 원작이 탄탄한 덕일 게다. 정철상 기자는 헨리가 시간여행을 할 때마다 입을 옷을 훔치고 그 때문에 도망다니는 설정이 어이없다고 말했지만 나로서는 보다 현실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죽은 헨리가 살아 돌아온다거나 미래의 딸을 만난다는 대목은 글쎄, 약간 무리한 거 아닌가 싶긴 하다.

 

  특수분장 면에서도, <시간 여행자…>가 무성의했다기보다는 애초에 분장이 별로 필요치 않은 설정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80세 노인의 몸으로 태어난 아기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정교한 특수분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몇 년의 시차는 턱수염이나 흰머리로도 충분히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시간여행. 어린 시절의 공상과는 다르게, 현실에서 미래를 알고 과거를 다시 보면 인생이 배배 꼬인다. 앞날을 내다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고, 과거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더욱 현명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고, 또 추억할 뿐이다.

 

  갓 개봉한 <시간 여행자…>를 봤던 2주 전, 수업시간에 시간관리를 주제로 한 발표를 들었다. 썩 집중해서 들은 것은 아니지만 한 마디는 인상에 남았다. 시간이란 인생 그 자체이기 때문에 시간낭비는 곧 인생을 아무렇게나 사는 일이라는 말이었다. '시간낭비'라는 표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 말에 동의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나로서는 상당히 공감이 됐다.

 

  시간은 인생 그 자체인데 인생이 두서없이 꼬여버린다는 건 참 곤란하고 혼란스러운 일일 거다. 하지만 그 뒤틀린 인생을 기다려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록 배배 꼬여 있지만 그 인생은 참 행복한 것일다. 헨리의 사랑처럼. 벤자민의 삶처럼.

덧붙이는 글 | 정철상 기자의 기사를 읽고 10월 29일 개인 블로그에 쓴 글을 참고하여 편집한 글입니다.

2009.11.09 14:03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정철상 기자의 기사를 읽고 10월 29일 개인 블로그에 쓴 글을 참고하여 편집한 글입니다.
시간여행자의아내 벤자민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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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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