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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교육의 해법을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게 핀란드 교육 모델이다. 무작정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 않아도, 한국 사회 아이들처럼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뺑뺑이 돌지 않아도 세계 최고 학력을 보이는 핀란드의 교육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걸 시사한다.
도대체 그 나라 교육에는 무엇이 있길래 학생들이 많이 자고, 잘 먹고, 잘 노는데도 피사(PISA. OECD 국제학업성취도 비교평가)에서 최고 수준을 보일까. 반대로 우리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학교에 '붙잡혀' 있는데도, 왜 학업 성취도와 흥미도는 바닥일까.
이런 의문에 일정한 대답을 주는 책이 바로 최근 출간된 <핀란드 교실 혁명>(비아북)이다. 이 책은 일본의 교육학자 후쿠다 세이지가 쓰고 박재원 비상교육 공부연구소장이 번역·해설했다.
핀란드 학교 교실의 풍경은 어떻길래 '혁명'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을까. 그들의 교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핀란드 교실 혁명> 토론회..."이거 참 씁쓸하구만"
6일 저녁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문화이벤트홀에서 열린 <핀란드 교실 혁명> 출간 기념 교육토론회는 이런 질문을 논하고 해법을 고민하는 자리였다. 이 토론회에는 책을 번역한 박재원 소장이 발제자로 나섰고, 이범 교육평론가,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50여 명의 방청객 대부분은 현장 교사와 학부모들이었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해 어떤 교육법으로 가르치고 교실을 바꿀까"를 고민하고, 학부모들은 "내 아이에게 공부의 즐거움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자리였다.
그렇다면 교사도, 학부모도 아닌 나는 토론회를 보며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을까. 고백하자면, 나는 토론회를 지켜보며 내내 한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유행어를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이거 참 씁쓸하구만."
토론회가 미흡하거나 마음에 차지 않아서가 아니다. 반대로 내 학생시절을 자꾸 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책의 내용과 토론회가 생생해 씁쓸했을 뿐이다. 어느 구절에서는 가슴이 울컥하기도 했다.
"학습의 목표는 정해져 있지만 개인의 진도는 다릅니다. 똑같은 것을 배우는 데도 두 세 배의 시간이 걸리는 아이도 있으니까 그 자리에서 억지로 반복시켜서 억지로 외우게 하지는 않습니다. 긴 안목으로 보면 모든 아이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목표를 부과할 수 없습니다. 의욕(동기)이 중요하니까 '왜 안 되니?' '어째서 안 되니?'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핀린드 교실 혁명>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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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교실 혁명> 출간 기념 토론회가 7일 저녁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문화이벤트홀에서 열렸다.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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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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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후스까 교사의 말이다. 학생들 마다 학습 수준과 성취 단계, 그리고 잠재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다그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핀란드 교실에는 다양한 수준을 가진 학생들이 있고 교사와 학교는, 그에 걸맞는 '맞춤식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후스까 교사의 말을 더 들어보자.
"아이들은 제 각각이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르죠. 핀란드에서는 아무 말 없는 아이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 떠드는 아이는 답을 찾아낸 것이라고 여깁니다. 쉽게 생각해서 먼저 답을 찾아내는 아이도 있고, 복잡하게 생각해서 시간이 걸리는 아이도 있겠죠. 그러니까 수업을 할 때도 기다리는 시간이 깁니다. 대개 기다리다 보면 어느 학생이든 꽤 좋은 답을 만들어 냅니다. 반응이 느린 아이가 할 수 없는 건 아니죠."
이 대목에서, 나 울컥했다. 돌아보면 초중고 내내 나는 반응이 느린 학생이었다. 한글은 초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깨우쳤고, 영어는 중학교에 가서도 늘 '버벅'댔으며, 수학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어렵기만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학교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국영수를 못했던 나... 하지만 학교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엔 친구들이 모두 떠난 교실에서 자주 나머지 공부를 했다. 영어 수업 시간에 버벅대면, 선생님은 영어책으로 내 머리를 툭툭 쳤다. "왜 그것도 모르니!" "어제 집에서 숙제 안 하고 뭐했니!"라는 구박과 더불어 "넌 커서 뭐가 될래?"라는 타박이 이어졌다.
그래도 이건 나은 편이다. 고교 시절 수학 시간에는 앞에 불려나가 칠판에 적힌 문제를 못 풀면 그대로 엎드려 뻗쳐야 했다. 이유불문. 문제를 못 풀면 몽둥이찜질은 당연했고, 고교 3년 동안 내 찰진 엉덩이와 허벅지에서 푸른 멍은 지워질 날이 없었다.
체육은 좀 잘했지만 그건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내가 뭘 잘 하는지, 왜 국영수에 느린지, 대한민국 학교는 묻거나 따지지 않았다. 학교 수업 과정을 따라오지 못하는 나 같은 학생에게 배려는 멀었고, 몽둥이찜질은 가까웠다. 내가 다닌 학교만이 그런 게 아니다. 대한민국 많은 학교가 그랬다(폭력은 '많이' 사라졌겠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학교는 그럴 것이다).
94년 거의 전교 꼴등인 14등급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재수를 했다. 하지만 학원은 다니지 않았다. 나의 수준에 맞춰 차근차근 진도를 나갈 학원은 대한민국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성문 기초 영어>와 <수학 정석>을 들고 나 홀로, 내 수준에 맞춰 공부했다. 내 수준을 구박하고 때리며 닦달하는 사람이 없어서 맘이 편했다. 학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언어영역을 위해 국어책 대신 박경리의 <토지>를 읽으니 재미있었다.
혼자 공부한 1년이 가장 행복... 우리 학교가 서글프다
그 해 겨울, 1년 만에 다시 본 수능시험에서 나는 좋은(?) 점수를 받았다. 14등급이라는 내신이 걸렸지만, 수능만 따지면 좋다고(?) 소문난 대학은 갈 수 있는 점수였다. 돌아보면, 나 홀로 재수했던 그 1년 동안 나는 가장 즐겁고 흥미있게 공부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서글프기도 하다.
학교 공부를 따라가기엔 너무 숨이 찬 '느린 학생들'은 지금도 이 땅에 차고 넘칠 것이다. 그러면 우리 학교는 핀란드처럼 '맞춤식 교육'을 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런 교육은 아직 요원한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 교실과 학교를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윤지희 공동대표는 "학생들 줄 세우고 서열화 하는 상대평가를 극복하고, 학생 개개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사회 구조가 그런 교육을 어렵게 하더라도 교사가 제도 이전에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병오 대표는 "우리 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철학을 정립하는 게 중요하다"며 "교사들이 관료적 틀에 갇히지 않도록 교장제도를 개혁하고, 경쟁만을 우선시 하지 않는 새로운 학교 모델을 현장에서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의무교육 기간에 성적표에 등수를 표기하는 나라는 일본, 북한, 우리나라뿐이다"며 역시 상대평가 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이어 이 평론가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과목을 가르친다"며 "교과목별 교사 모임을 통해 검증된 좋은 교육 방법 등을 학교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느려도 적성에 맞게 우직하게, 핀란드 교실 풍경이 우리의 정답은 아닐까
"학습 속도에는 개인차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학생이라도 조건에 따라 학습 속도가 똑같지 않아서 정체할 때도 있고 비약할 때도 있다. 또한 과목이나 분야에 따라 적성이 다르고, 지식과 기능은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핀란드 교실 혁명> 94쪽.
언제쯤 우리 학교는 가기 싫은 곳, 답답한 곳이 아닌 "개인차와 적성에 따라"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될까. 아직 멀어 보이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학생에 따라 학습 속도와 공부 방법이 다르듯, 우리 사회에 맞는 해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7일 토론회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정치권 인사, 정부, 교사, 교육단체, 학부모, 학생이 참여해서 교육개혁을 논의 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느려도 포기하지 않고 적성에 맞게 우직하게 목표를 향해 가는 것. 핀란드 교실의 풍경은 우리 교육이 찾고 있는 정답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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