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부산경남
목도리 짜는 시간, 내 마음 먼저 뜨뜻하다
대바늘뜨기로 목도리 짜는 시간
09.11.06 13:08 ㅣ최종 업데이트 09.11.06 13:39 이명화 (pretty645)
  
▲ 목도리 짜는 시간 털실뭉치를 풀어가면서 대바늘로 목도리를 짜고 있어요. 올 겨울을 따뜻하게!
ⓒ 이명화
목도리

 

'실과 바늘' 김두리 손뜨개방. 엊그제 저녁 무렵 찾아간 손뜨개 방 이름이다. 얼마 전부터 올 겨울엔 뜨개질을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왔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겨울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오랜만에 뜨개질을 해봐야지 생각하다가 결심하고 손뜨개방을 방문하게 된 것이었다. 남편은 내가 목도리를 짜 준다고 하니 입이 귀 밑에 걸렸다.

 

가끔 오며가며 자주 가는 시장이지만 손뜨개방은 눈에 띄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멀지 않은 곳, 남부시장 안에 있었다. 시장 1층이야 늘 자주 다녔지만 2층은 거의 왕래할 일이 별로 없는데다가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이든 관심이 있어야 보이는가보다. 다닥다닥 붙어 앉은 가게들 사이로 겨우 보일 만한 간판이 들어왔다. 비좁은 골목을 들어서면 계단으로 이어져서 2층으로 연결되었다.

 

한복점, 옷 수선집 등이 2층 복도를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고 중간쯤에 손뜨개방이 보였다. 유리문 안으로 손뜨개방 벽면 가득 들어찬 실타래뭉치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밖에서 신발을 벗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담한 손뜨개방은 가끔 주부들이 손뜨개를 배우며 모여앉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기 딱 좋을 것 같은 속닥속닥한 공간이었다.

 

손뜨개방이라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발밑에 깔린 방석도 직접 짜서 만든 방석이었다. 현관문을 제외하고는 벽면 가득 여러 종류의 뜨개실이 형형색색으로 따뜻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내 손이 자유자재로 무엇이든 잘 뜰 수 있다면 이 예쁜 색색의 털실로 목도리, 스웨터, 장갑, 숄, 모자…. 아, 무엇이든 못하랴. 모두 모두 내 손으로 짜서 생각나는 좋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

 

  
이곳은 '실과 바늘' 손뜨개방입니다.
ⓒ 이명화
손뜨개

손뜨개방을 와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아직도 이런 것이 있었구나 싶어 감회가 새로웠다. 그 옛날 한창 뜨개질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겨울 내내 뜨개질을 했던 날들도 있었지. 내 뜨개질 솜씨라야 겨우 목도리나 조끼, 스웨터 등을 더듬거리며 짤 정도의 실력밖에 안되지만 손뜨개에 얽힌 추억,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손뜨개를 할 때 조끼하나, 스웨터 하나 짜기 위해 '고'를 계산하고 조금이라도 예쁜 무늬를 만들어 넣어서 옷을 만들고 싶어서 이따금 뜨개방을 찾아 묻거나 이웃집에 뜨개질 잘 하는 사람들이랑 함께 뜨개질을 하곤 했던 기억들도 떠올랐다. 한번 손뜨개질을 하면 거기 너무 집중해서 밤을 새우면서까지 하곤 했던 기억들….

 

그래서 너무 한꺼번에 몰입해서 하다보니 금방 싫증을 내곤했다. 몇 년 만일까. 마치 먼지 뒤집어쓰고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둔 옛 사진첩을 꺼내 보듯 감회가 새로웠다. 손뜨개방을 오랜만에 방문해 방 안 가득한 실타래뭉치들과 주인이 직접 짜서 걸어놓은 목도리, 조끼. 스웨터, 숄 등을 바라보고 앉았노라니 손뜨개에 얽힌 추억들이 현실보다 생생하게 만져질 듯 떠올랐다.

 

중학교 가사시간에 배웠던 수놓기, 방석 짜기 등에서부터 친구들과 함께 뜨개질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입혀주고 싶어서 정성껏 조끼를 짰던 기억, 딸을 임신하고 불룩한 배를 안고 앉아서 밤늦도록 뜨개질을 했던 기억,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 뜨개질을 잊고 지낼 때쯤 이웃에 이사 온 사람이 마침 뜨개질을 늘 손에 들고 있어 또 내 생활에 뜨개질 붐이 일었던 기억… 그 후로 오랫동안… 뜨개질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대바늘뜨기로 목도리를 짜고 있어요. 올 겨울 따뜻하겠죠?
ⓒ 이명화
목도리

손뜨개방 주인은 따뜻한 바닥에 좀 앉으라고 손짓했다. 바닥은 따뜻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물었다. 예사로 봐서인지 평소엔 잘 안 보였는데 우연히 지나다가 봤다고 했더니 아주머니는 "인연이 되려고 그랬나보다"며 이 주변에도 손뜨개방이 몇 개 있다고 했다. 형형색색의 도심의 간판들과 네온사인에 가려서 잘 보이진 않지만 아직도 이렇게 구석진 곳에 손뜨개방은 있고 찾는 사람들이 있어 새삼 반가웠다.

 

나는 요즘도 뜨개질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지 물었다. 아주머니는 "나이 드신 분들이 잠이 안 올 때, 좋다고 뜨개질을 한다고 했다. 밤에 잠이 안 올 때, 뜨개질이란 일이 있으니까 잡념도 없애고 또 잠도 달게 잔다더라고 했다. 또 가끔 젊은 새댁들도 애들 옷 짜준다고 오기도 한다고 했다. 손뜨개방은 주부들이 모여 앉아 뜨개도 배우고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사랑방 같았다.

 

손뜨개방 벽면 가득한 형형색색의 털실과 주인이 짜서 옷걸이에 걸어놓은 숄, 스웨터, 목도리, 조끼 등 정성껏 뜬 옷들이 마치 그것 자체가 온기라도 있는 것처럼 따뜻하게 와 닿았다. 뭘 짤 거냐고 아주머니가 물었다. 남편 목도리를 오랜만에 하나 짜려고 하는데 어떤 실이 좋을지 자문을 구했더니 주인아주머니가 권한 실은 색깔도 곱고 가볍고 부드러워서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가격이 문제였다.

 

옛날 그때 그 시절의 실 값을 생각하진 않았다 치더라도 실 값이 그렇게 비싸리라곤 생각을 못했던 나는 입이 떡 벌어지도록 놀랐다. 아주머니가 권한 털실은 목도리 실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것을 권한 듯 했다. 별로 많이 감기지도 않은 가볍고 작은 털실 한 뭉치 가격이 한 개당 8천원, 실의 양으로 봐선 여러 개의 실이 필요할 텐데 난감했다.

 

이 실로 목도리를 짜려면 적어도 다섯 개는 들어야 한단다. 합하면 실 값만 해도 4만 원이다. 그 가격이면 웬만한 좋은 목도리 하나 사는 것이 더 낫겠다. 비싸도 너무 비쌌다. 실 값이 올라도 이렇게 많이 올랐을까. 내가 너무 놀라하자 아주머니는 그보다 한 단계, 두 단계 더 낮을 실을 소개했다.

 

한 타래 7천 원짜리는 목도리를 짜려면 세 타래가 필요하고, 그보다 더 한 단계 낮은 것은 5천원, 네 타래가 필요했다. 처음 손에 쥔 털실 가격에 비하며 거의 반값밖에 안된다. 하지만 처음에 좋은 것을 보았으니 나중 것은 색깔이나 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망설이고 있는데 남편은 제일 좋은 것으로 해 달라고 말했다.

 

내가 손수 짜 주는 목도리를 기대하는 남편은 다른 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한 개 있으면 오래오래 쓸 생각하는 남편이었다. 살 떨리는 마음으로 8천 원짜리 실타래를 다섯 개를 샀다. 에구구! 과연 내 손으로 짠 4만 원짜리 목도리가 그 값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고 간이 콩알만 해졌지만 어쩌겠는가. 기왕이면 남편이 원하는 것으로 해 줘야지. 기어코 4만원어치 실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참 오랜만이다. 털실과 대바늘을 옆에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것으로 목도리를 짤 것이다. 손에 실과 바늘을 들고 조금씩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다. 겉뜨기 안뜨기 반복해서 하는 뜨개질이었다. 대바늘 사이로 실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뜨개질을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젠 예전처럼 한꺼번에 몰아서 하지 않으려 한다.

 

일을 하다가 놓고 한 숨 돌릴 때, 책의 바다에 깊이 헤엄치다가 문득 고개를 젖히며 쉴 때, 복잡한 머리를 식힐 때 아주 조금씩 아껴가면서 조금씩 진행하려고 한다. 조금씩 목도리를 뜨려고 한다. 아껴가면서, 기대하면서, 천천히, 조금은 기다리게 하면서. 다음날엔 책을 한참 읽다가 쉼표를 찍듯 잠시 쉴 때 뜨개질을 해 보았다.

 

이젠 조금만 오래 들여다보면 눈도 침침해져서 예전처럼 오래 붙들고 있지도 못하지만, 머릿속이 진정되고 환해지는 기분이다. 생각을 정리할 때, 머리가 복잡할 때 뜨개질은 아주 좋은 것 같다. 손뜨개질은 일인 것 같으나 또 다른 의미에서 쉼이기도 하다. 겉뜨기 안뜨기를 반복하면서 손뜨개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가다보면 손 놀린 만큼 금방 성과가 눈에 보여 즐겁다.

 

내가 손뜨개를 뜬 것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어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한겨울을 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기대와 사랑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가는 기쁨, 내 마음이 먼저 군불 땐 것처럼 뜨뜻해진다.

기사가 어떠셨어요? 점수를 주세요
맘에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를 쏘세요
좋은기사 원고료는 기자에게 지급됩니다.
(현재 0 건, 총 0 원)
원고료주기
트위터에 이 기사를 공유해 보세요   
ⓒ 2009 OhmyNews


회원댓글 0 l 트랙백 0
  제목 이름 입력일시 찬성 반대 조회
당신의 소중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이명화(pretty645)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