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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목요일 국민배우 안성기, 한류스타 이병헌,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 아나운서 손범수, 개그우먼 김미화, MC 임백천, 탤런트 이보영, 방송인 한성주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1949년에 탄생한 유니세프카드가 판매 60주년을 맞았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비영리를 추구하는 기구에서 물건을 팔다니? 물건을 파는 행위는 기업과 같은 영리단체들이나 하는 일이 아닌가?  

지난 10월 29일 유니세프카드탄생 60주년을 맞아 그동안 유니세프 카드에 기여한 인사들을 초청해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손범수, 임백천, 김미화, 이보영, 한성주, 앙드레김, 박동은 사무총장, 안성기, 이병헌.
▲ 유니세프카드 탄생 60주년 지난 10월 29일 유니세프카드탄생 60주년을 맞아 그동안 유니세프 카드에 기여한 인사들을 초청해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손범수, 임백천, 김미화, 이보영, 한성주, 앙드레김, 박동은 사무총장, 안성기, 이병헌.
ⓒ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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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단체들이 물건을 파는 이유

NGO 단체들도 물건을 판다. 다만, 영리를 목적으로 물건을 팔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는 물건을 파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유니세프카드의 경우, 1950년대부터 어린이를 위한 기금모금의 한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유니세프 카드는 194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일곱 살 소녀 '지트카 샘코바'가 식량과 의약품을 나눠준 유니세프에 보낸 감사의 그림에서 비롯되었다. 이 카드는 현재까지 전세계적으로 45억 장이 넘게 판매되어 수많은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식수 사업 등에 사용되었다. 현재에도 150여 개 나라에서 매년 1억 장의 카드와 퍼즐, 머그 등의 상품을 판매해 1억 5천만 달러의 기금을 모으고 있다. 

또한 공정무역의 통로 역할로 비영리단체들이 나서서 물건을 팔기도 한다. 공정무역은 원조가 아닌 무역을 통해 가난한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의미가 있다. 초기에는 커피나 수공예품 정도로 취급하는 품목이 단순했으나, 현재는 코코아, 설탕, 의류 등 다양해졌다. 1989년 탄생한 국제대안무역연맹 '아이팟(IFAT)'의 발표에 의하면, 2007년 기준으로 70여 나라의 300여 단체, 100만 명의 생산자들이 공정무역에 참여하고 있으며, 공정 무역의 매출액은 2조원을 넘어섰다.

공정무역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한다

기존의 무역 체제는 부유한 나라들은 더욱 부유하게, 가난한 나라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점이 있었다. 선진국의 수입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협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정무역은 투명성과 상호존중을 기반하여 불평등을 극복하고자 한다. 공정무역은 부의 재분배 효과를 발휘하여 소득의 불균형을 바로 잡는 역할을 해준다.

공정무역은 저개발국의 생산자에게 안정된 가격을 보장해 주고, 정당한 임금을 보장해 준다. 초과이익이 발생하게 되면 사업이나 공동체에 재투자가 이루어진다. 공정무역의 물건을 사면 가난한 국가의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정무역이 가난한 생산자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은 노동착취, 환경파괴가 없는 윤리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을 구매하는 행동만으로도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게 된다. 중간유통단계를 뛰어넘어 직거래를 함으로써 안전한 물건을 좋은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공정무역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동등한 거래의 파트너로 인식한다. 하루에 단 1달러가 없어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긴급하고 직접적인 원조도 필요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어 주는 것 역시 필요하다. 적정한 임금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지속적인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일자리와 교육이 빈곤의 대물림을 막아줄 수 있는데 공정무역이 그 지렛대의 역할을 해준다.

어린이가 자신이 농장에서 거둬들인 커피콩을 보여주고 있다.
▲ 커피 농장에서 일하는 어린이 어린이가 자신이 농장에서 거둬들인 커피콩을 보여주고 있다.
ⓒ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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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 그 반세기의 역사

공정무역은 미국과 유럽에서 제 3세계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하였다. 1946년 미국의 시민단체 텐사우전드빌리지가 푸에르토리코의 바느질 제품을 구매하고, 1950년 대 후반 영국의 옥스팜 상점에서 중국 피난민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팔면서 공정무역의 역사가 열리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영국의 Oxfam, 네델란드의 Organisatie 등이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공정무역 조직과 단체를 만들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NGO들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이 지역의 생산자들에게 조언과 원조, 지원을 해줄 공정한 기구의 출현에 공감하였다. 1980년대에는 일반 대중 소비자들에게 더욱 보급하기 위해 공정무역 조건을 지키는 제품에 차별성을 표시해 주는 상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1997년에 이르러 21개국이 참여한 세계공정무역상표기구(FLO)가 등장했다. 이 단체는 공정무역 제품을 인증하는 마크를 제정했으며 공정무역 제품의 표준, 규격 설정, 생산자 단체 지원, 검열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아름다운 재단이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지역에서 수공예품을 들여와 판 것이 공정무역의 시초이다. 2005년부터는 YMCA에서 동티모르를 돕기 위해 커피를 들여와 판매하고 있으며, 2007년에는 공정무역 시민주식회사도 생겨났다.

공정무역이 이뤄낸 새로운 변화들

어린이들은 손이 작아 양탄자 제작에 유리하므로 공장에서 선호한다. 어린이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로 고통받고 있다.
▲ 파키스탄 양탄자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이 노동자들 어린이들은 손이 작아 양탄자 제작에 유리하므로 공장에서 선호한다. 어린이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로 고통받고 있다.
ⓒ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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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이르러 유럽에서부터 소비자의식운동이 시작되었다. 유니세프와 비정부기구, 인도의 양탄자 수출업체 등이 연합하여 어린이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고 만든 양탄자라는 것을 인증하는 소비자 상표를 개발했다. '러그마크 재단'은 이 상표를 감독하기 위해 1994년에 설립되었다. 이 양탄자 관세의 일부는 기금으로 적립되어 생산자 국가의 어린이 갱생과 교육에 쓰인다.

러그마크 상표를 쓰고자 하는 양탄자 제조업체는 14세 미만의 어린이를 고용하지 않으며, 공정한 성인임금을 지급해야 하고, 불시에 조사 감독 받을 것을 약속하고, 러그마크가 붙은 모든 양탄자의 판매내역을 러그마크에 알린다는 것을 약속하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서를 체결하도록 되어 있다.

세계에서 사용하는 축구공의 2/3 정도가 파키스탄의 시알코트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2002년부터 시알코트 지역에서 공정무역인증 공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공정무역으로 인해 임금이 산업평균보다 50% 높아졌다. 어른 2명이 하루에 8시간 일하면 한 가족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자녀들은 학교에 보낼 수 있다. 15세 미만의 어린이는 공정무역 공을 만드는 데 고용할 수 없다. 15세 이상의 청소년도 학교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시간제 근무만 가능하다.

보통 소비자들은 가격을 기준으로 물건을 선택한다. 같은 물건이라면 싼 것을 고르게 된다. 하지만 그 싼 가격을 얻기 위해 제 3국의 아이들이나 노동자들의 착취를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품이 제대로된 경로로 만들어 졌는지 알아야 하며, 그 제품을 판매한 이윤이 생산자들에게도 제대로 돌아가는지 의사소통할 필요가 있다. 매일의 소비를 착하게 하여 모두가 건강해지는 내일을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태그:#공정무역, #유니세프, #이병헌 , #어린이 노동,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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