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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하, 삼성장학재단) 이사장에 손병두 KBS 이사장이 선임된 데 이어, 두 달 만에 재단 사무총장으로 우진중 STS커뮤니케이션(삼성생명 자회사) 경영지원실장이 발탁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삼성장학재단의 운영 주체에 급격한 변화가 초래되었음을 의미한다. 손병두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사이고 우진중 사무총장은 이른바 '삼성맨'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등장으로 인해 삼성장학재단이 정부와 삼성의 지배구조 아래 들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삼성장학재단은 노무현 정부 시절 삼성이 자진 출연한 재원으로 만들면서 재단 운영에 정부와 삼성 양자를 모두 배제한 민간장학재단으로 출범하여 유지되어 왔다. 진정으로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순수한 복지재단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런 방식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등 그룹내 수뇌부들이 2006년 2월 7일 삼성그룹 본사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인주 구조본부사장, 배정충 삼성생명사장,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이상대 삼성물산 건설사장, 이종왕 법무실장. 이 자리에서 8천억원 사회환원을 약속했다.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등 그룹내 수뇌부들이 2006년 2월 7일 삼성그룹 본사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인주 구조본부사장, 배정충 삼성생명사장,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이상대 삼성물산 건설사장, 이종왕 법무실장. 이 자리에서 8천억원 사회환원을 약속했다.
ⓒ 연합뉴스 백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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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등의 증여 문제와 X파일 같은 문제들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 깊이 반성합니다."(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

삼성이 2006년 2월 7일 대국민사과와 함께 8000억 원 상당의 사회기금 헌납을 약속했을 때, 사람들은 네 가지 경우의 수를 예상했다. 첫째는 최선의 경우로서, 재산 헌납이 당시 진행 중인 삼성 재판과 무관하고 재산 사회 환원도 잘 지켜질 것이다. 둘째, 재판에 다소 유리한 영향은 주겠지만 그래도 약속은 지켜질 것이다. 셋째 재판에 영향을 안 주고 사회 환원 약속은 잘 안 지켜질 것이다. 그리고 넷째는 최악의 경우로서, 재판에 유리한 영향만 주고 사회 환원 약속은 제대로 안 지켜질 것이다 등이었다.    

당시 삼성은 언론사와 특정 대통령 후보에 대한 자금 지원을 공모하고 최고위급 검찰 간부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충격적 내용을 담은 '안기부 X파일사건'과 이건희 회장 자녀에 대한 전환사채 헐값 매각 등으로 불법 경영권 승계를 기도한 에버랜드 문제로 일대 위기에 직면해 있던 차였다.

대책도 없이 남발한 공약, 삼성 돈으로 해결?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국가장학재단을 설립해 경제적 약자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자신 있게 제시한 바 있다. 이 국가장학재단은 곧바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구체화된다. 2008년 2월 인수위원회는 국가장학제도를 192개 국정과제의 하나로 선정했다. 당시 교육 분야는 이경숙 인수위원장, 이주호 사회문화분과위원회 간사(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천세영 사회문화분과위원회 전문위원(이후 청와대 교육 비서관) 등이 주도하고 있었다.

이후 공약대로 2009년 1월 '한국장학재단 설립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고, 2009년 5월 재단이 정식으로 출범하면서 이경숙 전 인수위원장이 이사장을 맡는다. 하지만 재단은 출범했지만 4대강 사업 등으로 예산 확보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삼성장학재단이 갖고 있는 7500억 원은 엄밀히 따지면 여전히 삼성이 갖고 있는 형태이므로 사회적 명분에 의해 한국장학재단이 설립되면 재단으로 갖고 올 수 있을 것."

이는 2009.2.6 한국장학재단설립위원회 1차 회의록에 남겨진 천세영 설립준비위원의 발언으로서(<한겨레> 보도), 한국장학재단이 삼성장학재단의 재원을 가져다 쓰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한편 이경숙 초대 이사장도 재단출범 직후인 5월22일 이수빈 삼성생명 사장을 만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또한 6월16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민간 장학재단은 우리 정보를 갖다 쓰기 때문에 우리와 연계하면 더 좋아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국장학재단에 수탁을 하면 얼마든지 도와주겠다. 그래서 지금 민간 재단 이사장들을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가 있고 이틀 후인 6월 18일 삼성장학재단에는 갑자기 서울시교육청의 감사반이 들이닥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감사 결과 아무런 하자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결과보고서는 '장학사업 집행 및 재단 운영 전반에 걸쳐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음'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신인령 이사장 이하 당시 운영진의 업무 수행이 양호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문제는 뜻하지 않은 데서 돌출되었다. 이번에는 난데없이 <월간조선>이 끼어든 것이다. <월간조선> 8월호는 '삼성장학재단의 신인령 이사장 및 일부 이사와 평가위원이 친노·좌파인사'라는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월간조선>과는 별도로 삼성장학재단에 음성적으로 어떤 압력이 가해졌는지는 재단 이사회의 회의록을 보면 알 수 있다.

- (서울시교육청은) 전 정부에서 선임된 이사들이므로 임기 만료된 이사들은 현 정부에서는 연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8월 21일 신인령 이사장 발언)
- 교육부 쪽에서는 임기 만료 임원 모두를 교체하기 위한 7명의 명단을 준비해 왔다. 적어도 공적인 2명의 자리라도 추천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8월 24일)  

이에 따라 <월간조선>의 지목을 받은 두 이사가 사퇴하고 손병두 KBS 이사장과 신영무 변호사가 이사로 취임하게 된다. 사태가 이 정도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이사회는 8월 21일 신인령 이사장의 연임을 전원일치로 가결했고, 9월 7일 주무관청인 중부교육청은 신 이사장의 연임을 승인한다.

그런데 열흘 후인 9월 18일 뜻하지 않았던 이사장 연임승인취소 공문이 재단에 날아들었다. 공문은 아예 '신인령 이사장을 이사로 내리고 새 이사장을 선출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결국 10월 12일 손병두 이사가 이사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손 이사장은 3주 후인 11월 2일 재단의 핵심요직인 사무총장에 '삼성맨'인 우진중 STS커뮤니케이션 경영지원실장을 데려다 기용한 것이다.

'이경숙 누이'와 '이건희 매부' 모두에게 좋은 일

이상은 삼성장학재단의 최근 사태를 복잡한 대로 간추려 본 것이다. 수법이 영락없이 정연주 사장을 몰아낸 KBS사태를 방불케 한다. 그리고 이런 무모한 일을 벌이는 주체가 누구인지 가늠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서울시교육청을 동원하여 표적감사를 벌이고 <월간조선>의 협조를 얻어낼 정도의 실력자는 이 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삼성장학재단 사태는 KBS 사태와 약간 다른 점이 있다. KBS 사태는 정부가 홀로 주동한 것이지만 이번 삼성장학재단 사태에는 피해자인 듯해 보이는 삼성측(장학재단이 아닌)의 묵인과 방조, 아니면 협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6년 2월 4일 저녁 출국 5개월 만에 일본 홋카이도 지토세 공항에서 회사 전용기인 '보잉 즈니스제트(BBJ)'를 타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휠체어를 탄 채 귀국한 이건희 회장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승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갔다. 이 회장 귀국 직후 삼성은 사회환원 약속을 발표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6년 2월 4일 저녁 출국 5개월 만에 일본 홋카이도 지토세 공항에서 회사 전용기인 '보잉 즈니스제트(BBJ)'를 타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휠체어를 탄 채 귀국한 이건희 회장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승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갔다. 이 회장 귀국 직후 삼성은 사회환원 약속을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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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말했듯이 삼성의 8000억 원 사회 환원은 결코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당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기소되어 사법처리의 위기에 몰린 상황이었다. 따라서 8000억 원은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출연한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이런 상황을 간파하여 겉으로는 삼성을 칭찬해주는 척하면서도 철저히 삼성의 개입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이를 위해서 정부의 개입도 가능한 한 배제한 것이었다.

사실 8000억이라고 해봐야, 정확히 말하면 7500억, 이것은 기존의 이건희장학재단의 재산 4500억에 전환사채를 터무니없는 헐값으로 취득해서 얻은 부당 이득 등을 감안하면 획기적으로 보탠 것도 별로 없는 돈이다. 있다면 이 회장의 별세한 딸 윤형씨 몫으로 남겨져 붕떠 있던 상속재산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이 8000억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누렸다. 미국 같으면 25년 옥살이도 가능하다는 그의 범죄혐의가 법원에 의해 면죄부를 받은 끝에 그는 집행유예로 실형을 모면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김문수 조갑제 김동길씨 등을 위시해서 여기저기서 다시 '삼성'을 예찬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삼성은 삼성장학재단에 '간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해 '간여하지 못한것'이다. 여론이 무서운 데다 재단의 이사진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정부가 삼성장학재단을 건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삼성에 우호적인 삼성 비서실 출신 손병두 이사장이 취임했다. 그리고 손 이사장은 여지없이 '삼성맨'을 사무총장 자리에 갖다 앉혔다.

국감에서 삼성장학재단 이사장 교체 외압설을 제기한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최근의 삼성장학재단 사태에 대해 날카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삼성과 정부로부터 독립된 이들로 장학재단이 구성된 뒤 삼성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최근에는 장학재단이 이명박 정부의 눈엣가시처럼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과 정부가 교감을 했을 것(이다.)"(CBS와의 통화) 

이 일로 해서 삼성은 장학재단에 정부의 개입을 터주기는 했지만 동시에 자기들도 개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삼성과 정부, 감히 아무도 손댈 수 없었던 삼성장학재단은 이제 이명박 정부와 삼성의 것으로 덧없이 되돌아가고 말았다. 한국장학재단 이경숙 이사장과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만 말 그대로 '누이와 매부'처럼 좋아지고 만 것이다. 결국 우리가 예상했던 네 가지 경우의 수는 네 번째 최악의 것으로 나타나고 말았다.

그건 그렇다치고, 도대체 이것이 무슨 '사회환원'이라는 말인가?  


태그:#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이경숙, #이명박 , #신인령, #손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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