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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아름다운 피아골에서.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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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노란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온 산에 울긋불긋 단풍이 물드는 가을이 오면 내가 꼭 가 보고 싶은 곳이 지리산 피아골과 뱀사골이다. 마치 천상의 색깔을 내뿜고 있는 듯한 지리산 단풍의 아름다움이 늘 잊히지 않는데다 젊은 시절의 내 삶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소중한 친구와의 추억이 서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24일, 마침 지리산 뱀사골과 피아골로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가 있어 나는 그들을 따라나섰다. 아침 8시에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지리산 뱀사골탐방안내소(전북 남원시 산내면)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20분께. 아름다운 계곡 길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였다.

           
▲ 뱀사골의 아름다운 계곡 길을 따라 지리산 산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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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핏빛 단풍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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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은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죽은 골짜기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300여 년 전, 지리산국립공원 북부사무소 자리에 송림사(松林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칠월 백중날에 신선바위서 기도를 드리면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른다 하여 해마다 스님 한 분을 뽑아 행사를 치러 왔다고 한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한 고승이 독약이 묻은 옷을 스님에게 입혀서 기도를 드리게 했다. 그런데 그날 새벽에 기도 드리던 스님이 괴성과 함께 간곳없이 사라져 버리고 용소(龍沼)에는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는 거다. 그 뒤로 이 계곡을 뱀사골이라 부르게 되었고, 억울하게 죽은 스님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마을 이름도 '절반의 신선'이란 뜻으로 반선(半仙)이라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 가을이 곱게 내려앉은 다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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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사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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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 입구(480m)에서 화개재까지는 8.9km 거리이다. 정말이지, 곱게 물든 단풍과 시원하게 흘러가는 물소리가 없었다면 몹시 지루할 만큼 계곡이 길었다. 반야봉(1732m), 명선봉(1586m) 사이의 울창한 원시림 지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수많은 소(沼)와 담(潭)을 만들고 기암괴석을 휘감아 돌면서 이곳 뱀사골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한다.

탁용소(濯龍沼), 병소(甁沼), 제승대(720m) 등을 거쳐 지리산 능선에 있었던 장터 가운데 하나인 화개재에 이른 시간은 오후 1시 20분께였다. 화개재는 경남에서 연동골을 따라 올라오는 소금과 해산물, 전북에서 뱀사골로 올라오는 삼베와 산나물 등을 물물교환했던 곳으로 이 높은 데까지 옛날에 어떻게 짐을 지고 오르내렸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 화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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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재에 오르는 계단 또한 얼마나 긴지 나는 몇 번이나 쉬면서 겨우 올라갔다. 사실 화개재를 2km 앞두고 이미 지쳐 버렸다.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혼자 처져 일행을 따라붙으려고 빠른 걸음으로 너무 서둘렀던 것이 문제였다.

일행이 여전히 안 보여 나는 화개재에서 곧장 삼도봉을 향해 걸어갔다. 삼도봉으로 가는 길에도 길이가 무려 330m에 이르는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지난해 산행 때는 거꾸로 이곳으로 하산을 하면서 끝도 없이 걸어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던 계단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올라가려고 하니 더욱 기가 막혔다.

오후 1시 50분께 삼도봉(三道峰, 1550m) 정상에 도착해서야 일행을 만났다. 그곳에서 일행이 조금 남겨 둔 전어회무침을 곁들여 허둥지둥 점심을 먹었다. 산에서 맛보는 생선회는 별미 중의 별미가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기운이 좀 솟는 듯했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전남 구례군 산동면,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걸쳐 있는 삼도봉의 본디 이름은 낫날봉이었다. 1998년에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세 도의 이름이 각 면에 쓰여 있는 삼각뿔 모양의 정상 표지석을 세우면서 삼도봉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산행을 하다 보면 이름이 같은 산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삼도봉이라 불리는 또 다른 산이 있다. 민주지산의 봉우리로 충북, 전북, 경북의 세 개 도와 접해 있는 삼도봉(1176m)이다. 두 개의 산을 놓고 가끔 혼동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 피아골삼거리를 지나 피아골대피소로 내려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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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대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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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가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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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목(1498m), 임걸령(1320m), 피아골삼거리(1336m)를 지나 오후 3시 45분께 피아골대피소(789m)에 이르렀다. 임걸령에서 피아골대피소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으로 지난해 산행 때 힘겹게 올라갔던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의 단풍들이 너무 예뻐서 아마도 달콤한 고생으로 여겨질 것이다.

피아골은 옛날 이 일대에 피밭(稷田)이 많아서 피밭골로 불렸는데, 이 말이 변해 피아골이 되었다 한다. 정유재란, 한말(韓末) 격동기, 6·25전쟁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어 우리 역사의 비극을 마주하는 듯한 뼈아픈 슬픔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산도, 물도, 사람도 붉게 물든다는 피아골. 나는 불타오르는 오색 단풍 길을 걸어가며 가을의 낭만을 즐겼다. 연곡사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20분께. 시원한 막걸리를 쭉 들이켜면서 산행의 피로를 씻었다.

산도, 물도, 사람도 붉게 물든다는 피아골 삼홍소 
 산도, 물도, 사람도 붉게 물든다는 피아골 삼홍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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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서울)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담양 분기점→88올림픽고속도로(광주 방향)→지리산 나들목→인월·산내 방향→뱀사골
*(대구) 구마고속도로→옥포 분기점(함양 방향)→지리산 나들목→인월·산내 방향→뱀사골
*(부산) 남해고속도로→진주 분기점(함양 방향)→지리산 나들목→인월·산내 방향→뱀사골
*(광주) 88올림픽고속도로→지리산 나들목→인월·산내 방향→뱀사골



태그:#지리산뱀사골, #피아골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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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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