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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용산철거민 참사 선고공판에서 기소된 철거민 농성자 9명중 7명에게 징역 5~6년의 중형이 선고된 가운데, 김형태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적인 재판, 기본이 안된 재판'이라며 판결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용산철거민 참사 선고공판에서 기소된 철거민 농성자 9명중 7명에게 징역 5~6년의 중형이 선고된 가운데, 김형태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적인 재판, 기본이 안된 재판'이라며 판결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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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재판이 시작되는 28일 오후 2시 서울지방법원 311호 법정.

용산 유가족과 철거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로 가득 찬 방청석을 둘러보는 김형태 변호사는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일주일 전인 21일, 김 변호사는 "공무집행방해는 솔직히 반반이지만 치사상 혐의는 무죄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는 징역 5~6년의 중형. 한양석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다 읽기도 전에 김 변호사는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법정 밖으로 나갔다. 검찰 공소장을 읽는 듯한 재판부에 들러리가 되기 싫어서였다. 이충연 용산4구역철대위원장 등 피고인 2명들과 방청객들도 잇따라 재판정을 나섰다.

한 판사는 "듣기 싫으면 나가도 좋다"고 말한 뒤 다시 판결문을 읽어내려갔고, 재판이 끝난 뒤 김 변호사는 "20~30년 뒤에 재심을 하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용산 1심재판의 변론을 이끌어온 김 변호사는 그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선고 다음날인 29일, 기자와 만난 김형태 변호사는 앞선 변호인단이 수사기록 공개를 요구하면서 재판을 거부했던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때문에 변론할 시간을 다 까먹었다는 것이다. "정말로 재판을 안 맡으려고 했다"는 그는 "이후 3000쪽이 나와도 판결을 바꾸기 어렵다"면서 "1심에서 최대한 (변론)하는 것이 변호인의 도리"라고 강조했다.

용산재판의 해결책은 법정 바깥에도 있다. 그는 협상을 강조했다. 밖에서 타협이 되면 재판도 정치적 부담없이 형법적으로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협상을 이끄는 사람도 바로 김형태 변호사다.

김 변호사는 "몇 달 전 범대위와 유가족에게 협상 전권을 위임받았다"면서 "다음주 중 정부 쪽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범대위 쪽 협상 책임자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내가 총대를 메야 한다"고 말했다.

협상 총대 멘 김형태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항소심에 대한 전망은 어둡다. 정치적 부담이 큰 사건의 경우,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PD수첩> 명예훼손 혐의 재판도 맡고 있는 김 변호사는 "(<PD수첩> 사건도) 법적으로 무죄인데 정치적 고려를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사법부의 보수화 움직임은 그의 우려를 더 깊게 만든다. 그는 80~90년대보다 지금이 더 암담하다고 했다. 당시엔 검찰이나 사법부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예 체질이 '자본의 이해관계'로 편입됐다는 것. 그는 "강남 특목고 출신 신임판사들이 많다, 사회적 약자를 정말 모른다"고 전했다.

지난 두 달 동안 재판 내내 김형태 변호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견해 등을 근거로 세녹스(시너 유사물질) 유증기 발화설을 제기했다. 경찰특공대원들이 화염병 투척을 못 봤다고 증언한 것도 성과였다. 재판부는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항소심에서는 다시 이 부분에 집중할 예정이다.

29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에서 1시간 가량 김형태 변호사를 만났다. 이날 인터뷰는 피고인 접견 때문에 약속보다 다소 늦게 시작됐다. 김 변호사는 이미 항소심 변론을 준비하고 있었다.

용산 재판 변론을 이끌었던 김형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용산 재판 변론을 이끌었던 김형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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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생각을 하면서 판결 도중 법정을 나섰나.
"치사 혐의 부분은 무죄가 나올 거라고 어느 정도 기대를 했다. 그런데 재판부가 판결문 읽는 것을 보니까 거의 검찰 공소장을 읽는 것이었다. 이럴 거면 대체 열 몇 차례 아침부터 밤까지 뭐 하러 공판했나. 그대로 앉아 있으면 재판에 들러리 서는 게 아닌가 싶어서 나왔다."

- 그동안 재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정보과 형사가 증인으로 나와서 '협상 한번 안 해보고 진압했다'면서 우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경찰청 정보과면 상당히 좋은 자리인데 참사 이후 스스로 일선 파출소로 나갔다는 말을 듣고, '저런 경찰도 있구나' 싶더라. (이 증인의 말대로) 협상 한번 없이 철거민을 죽게 만든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 정치적 판결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외압이 있었다고 생각하나.
"사실 한양석 판사가 사진작가 이시우씨 국가보안법 재판에 무죄를 선고하기도 해서 기대가 좀 있었다. 그런데 어제(선고일) 판사가 그 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더라. 동일인인가 싶었다.

또 재판부가 치사 혐의를 무죄로 선고하면 파장이 상당했을 것이다. 정권에 타격이 생긴다. 촛불재판보다 심각한 것이 용산재판인데, 신영철 대법관이 했던 일(재판부에 대한 압력)이 반복 안 되리라는 법도 없고.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건 자체가 외압의 개연성이 있다."

게임 끝난 <PD수첩>... 그러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 치사상 혐의가 유죄라고 하더라도 5~6년 징역은 중형 아닌가.
"유죄라고 해도 양형이 너무 셌다. 피고인들은 투자 금액의 절반도 못 받고 내쫓기는 사람들인데, 정상 참작의 여지가 많다. 그동안 이충연 용산4구역철거민대책위원장이 협상하려고 찾아가도 조합은 욕하고 무시했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철거민들은 끝없이 괴롭히고 경찰은 수수방관해서 용산이 무법천지였다. 게다가 이 사건으로 철거민들은 5명이나 죽었다."

28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용산철거민 참사 선고공판에서 기소된 철거민 농성자 9명중 7명에게 징역 5~6년의 중형이 선고되자 이충연 용산4구역철거민대책위원장의 어머니며, 고 이상림씨의 부인인 전재숙씨가 오열하고 있다.
 28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용산철거민 참사 선고공판에서 기소된 철거민 농성자 9명중 7명에게 징역 5~6년의 중형이 선고되자 이충연 용산4구역철거민대책위원장의 어머니며, 고 이상림씨의 부인인 전재숙씨가 오열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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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와 검찰은 모두 "피고인들이 법과 질서를 유린했다"고 주장했다. 이명박정부 역시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데, 법조인으로서 이를 어떻게 보나.
"화염병을 던진 것은 위법이지만, 근본적으로 헌법에서 규정한 '공정한 부의 분배'를 국가가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재개발로 창출되는 부를 국가가 적정하게 배분해줘야 하는데 국가·입법부·행정부가 헌법을 어긴 것이다. 또한 이번에 검찰은 수사기록 3000쪽을 공개하라는 사법부 명령도 안 따랐다. 그러면서 법과 질서를 말하나. 막가파 수준이다."

- 변호인단은 세녹스 유증기로 인한 발화 가능성을 주장했고 경찰특공대원들도 화염병 투척을 못 봤다고 증언했지만, 결국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재 당시 발전기가 켜져 있거나 경찰이 동력 절단기를 사용해 유증기가 인화했을 가능성도 크다. (발화지점으로 보이는) 망루 계단은 폭 80㎝, 길이 1m밖에 안되기 때문에, 망루 내 위치에 따라 경찰특공대원이 화염병 투척을 못 볼 수 있다는 것(재판부 판결요지)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일이다. 경찰 측이 피고인에 유리한 증언을 하면 이를 증거로 채택해야 하는 것이 형사소송법상 채증법칙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를 배제했다.

사실 우리는 발화의 다른 가능성만 제시하면 되지 이를 증명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재판부가 저런 식으로 나가니까 거의 증명에 가깝게 해줘야 했다. 시간이 워낙 없어서 발전기 가동에 대한 증명을 더 못한 부분이 아쉽다."

- 피고인들도 법정에서 진실을 다 말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재판 도중 이례적으로 피고인들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고 이상림씨(이충연 위원장 아버지)가 화재 1분 전에 망루 밖으로 세녹스를 뿌린 것이 검찰에 빌미가 됐는데, 다들 이를 쉬쉬 했다.

다른 피고인들도 이씨처럼 망루밖에 세녹스를 뿌린 경우가 있는데 이를 사실대로 얘기해야 했다. 그렇게 진술하기로 해놓고도 법정에서는 책임을 지게 될까봐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무도 화염병 던진 사람이 없으면 유령이 던졌나? 소탐대실이다. 피고인들의 심리상 이해는 되지만, 치사죄를 벗으려면 말을 해야 한다."

- 앞선 변호인단이 검찰수사기록 3000쪽 공개를 요구하며 재판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지난 9월부터 뒤늦게 재판을 맡게 됐다.
"재판을 맡기 1주일 전에 수임해 기록도 다 못보고 재판을 시작했다. 앞서 재판을 거부한 변호인들의 의지를 무산시키는 결과라서 난처하고 부담스러웠다. 이건 진짜 안 맡으려고 했다. 다 망가진 재판이라서 안 하는 게 상책인데, 박래군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나 김덕진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 등이 말해서….

그 전에 시간을 다 까먹었다. 재판을 (기피하지 않고) 하는 게 맞았다고 본다. 이번 재판에서 수많은 진술을 번복시켰고. 화염병 때문에 불난 것이 아니라고 밝히는 등 성과가 컸다. 안 했으면 큰일났다. 항소심 가서 (변론)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1심 재판에서 경찰이 화염병 봤다고 증언하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고등법원에서는 이미 나온 증인이라고 안 부르고 진술도 못 바꾼다. 이후에 3000쪽이 나와도 판결을 바꾸기 어렵다. 1심에서 최대한 다 하는 것이 변호인의 도리다."

-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재판을 기피했다"는 것도 양형이유로 밝혔다. 결국 변론 거부가 형을 가중시킨 것은 아닌가.
"그런 면이 있다."

- 선고 직후 "항소할 가치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비관적으로 내다보나.
"정치적 부담이 큰 이런 사건은 첫 단추가 상당히 중요하다. (1심 재판부가) 총대를 멘 뒤에는 항소심은 그 판결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이후 항소심 변론에서는 화인에 더 집중할 생각이다. 망루도 재현해보고. (김 변호사 자신이 맡았던)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이나 송두율 교수 국가보안법 사건 등은 굉장히 어려운 재판이었는데 재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용산 재판은 정치색만 빼고 나면 무죄 만들기 쉬운 상황이다. 혹시나 좋은 재판부 만나서 법대로만 하면…."

"강남 특목고 출신 판사들... 80~90년대보다 암담하다"

내친 김에 김 변호사가 맡고 있는 <PD수첩> 명예훼손 사건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또한 마침 이날 헌법재판소는 야당의 미디어법 무효확인 청구를 기각했다. 대리투표도 사실이고 일사부재의 위배도 사실이지만, 법안 가결선포는 유효하다는 것이다. 법조계 보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여기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지난 12일 오전 용산참사 화재현장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재판부 한양석 부장판사가  김형태 변호사와 검찰측 강수산나 검사로부터 참사현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12일 오전 용산참사 화재현장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재판부 한양석 부장판사가 김형태 변호사와 검찰측 강수산나 검사로부터 참사현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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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수첩> 재판의 판결은 어떻게 예상하나.
"어제 데이고 나니까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돼서…. 지난번에 검찰·농수산부·조중동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지민씨가 나왔는데, 거기서 게임 끝났다. 오히려 정씨 자신이 오역을 했고, 더 (변론)할 게 없다. 법적으로만 보면 무죄인데 정치적 고려를 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 정권 교체 이후 법조계 보수화 움직임이 지적되는데, 1980~90년대 시국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당시와 비교한다면?
"80-90년대보다 더 암담하고 우려스러운 것은, 당시엔 검찰이나 사법부가 속으로는 자기가 잘못하는 것 알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미안해 했고, 빨리 합의하려고 했다. 우리가 큰 소리 쳤다. 지금은 자본주의가 고도화돼서 사법부 체질이 자본의 이해관계로 편입됐다. 엉터리 법 질서를 무기로 해서 여기에 저항하면 위법이라고 하는 '의식 무장화'가 돼있다.

신임 판사들 보면 대부분 강남 특목고 출신이다. 사회적 약자를 정말 모른다. 철거민들은 왜 화염병을 던져 사람 죽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심판자 역할을 한다는 게 매우 걱정스럽다. 그래도 지난 10년 동안은 진보가 정권을 잡아서 약간 제동을 걸었는데, 지금은 눈 하나 깜빡 안한다."

- 범대위 활동이나 대정부 협상 등 법정 바깥의 운동과 맞물려 가야 할 것 같다.
"발화원인이 화염병이 아니라는 것을 각인시켜야 한다. 판결과 상관 없이 여론을 통해 정당성을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으론 협상을 통해 용산 문제가 정리돼야 부담을 덜 수 있다. 밖에서 타협이 되면 형법적 시각으로만 재판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달 전 범대위와 유가족에게 협상 전권을 위임 받았다. 다음주에 정부 쪽을 만날 생각이다.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하는데, 이게 풀리면 (협상의)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뭔가 포기시키면 책임론이 나오기 때문에 내가 총대를 메야 한다."


태그:#김형태, #용산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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