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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세포 멸종에 다다른 그녀들을 건어물녀라고들 한다지요. 자기 일은 열심히 하지만, 사랑에는 소극적인 그러다보니 연애세포가 말라비틀어지고 있는 건어물녀들. 하지만 이들에게도 나름 로맨틱한 겨울나기가 있지 않을까요? 남자에 구애하지 않고 자족하며 사는 건여물녀들의 겨울나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건어물녀, 로맨틱하게 겨울나기'라는 원고 청탁을 받고 생각해보았다.

'나는 과연 건어물녀인가.'

'건어물녀'가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그것이 나와 연관성이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과연 이 원고를 쓸 자격이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우선 '건어물녀 테스트'를 해보았다.

출근길 짝 안 맞는 양말 신기, 어? 난데

집에 있으면 당연히 '돌돌이' 안경에 편한 복장이지, 쉬는 날 집 안에 있으면서 회사 유니폼에 화장을 곱게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병원에 갈 일 아닌가. 사진은 최근 패셔니스타 최강희가 건어물녀로 등장해 화제가 된 영화 <애자>의 한 장면.
 집에 있으면 당연히 '돌돌이' 안경에 편한 복장이지, 쉬는 날 집 안에 있으면서 회사 유니폼에 화장을 곱게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병원에 갈 일 아닌가. 사진은 최근 패셔니스타 최강희가 건어물녀로 등장해 화제가 된 영화 <애자>의 한 장면.
ⓒ 시리우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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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 살, 연애를 하지 않은 지 만 4년 째(연애 안한 지 5년이 되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승천 2개월 남았다)니, 일단 건어물녀의 기본 자격은 완벽하게 갖춘 셈이다.

집에 있으면 당연히 '돌돌이' 안경에 편한 복장(아니, 그럼 쉬는 날 집 안에 있으면서 회사 유니폼에 화장을 곱게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병원에 갈 일 아닌가). 얼마 전 머리스타일을 '헬멧 모양'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머리를 질끈 묶진 않으나, 머리카락이 짧아지기 전에 쓰던 노란고무줄이 내 방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상태.

양말을 빨고 짝을 맞춰놓는 작업이 죽기보다 싫어서 바쁜 출근길에 짝 안 맞는 양말을 신고 나가는 것. 혼자 맥주 마시기. 가스레인지가 어느덧 집안에 장식용 물건이 되었다는 것 정도는 얼추 건어물녀 행색을 갖춘 것 같다.

하지만 곧 죽어도 봐야 하는 영화, 곧 죽어도 가야 하는 여행지가 있으면 얼마든 휴일 평일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관계로 건어물녀 탈락 위기에 놓일 특징도 있다. 물론 동행인이 '여자'거나, 없거나지만.

그리고 노력하진 않지만 늘상 결혼하기를 외치며, 언제고 예쁜 아가를 낳아 가정을 꾸릴 소망을 결코 버리지 않고 있으므로 나는 '아직 완벽하게 마르지 않은 건어물녀'라고 스스로를 지칭하고 싶다. 그래서 일단, 유행어가 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피데기녀'라고 나 자신을 일컫는 말을 창조했다(피데기 : 반건조한 오징어를 지칭하는 경상도 사투리어).

연애세포 멸종 위기를 앞두고 선택한 '제주올레'

제주올레길에는 항상 아름다운 들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제주올레길에는 항상 아름다운 들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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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연애세포가 멸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이브'에 대한 공포감은 이미 두 달 전부터 스멀스멀 내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예수님 생일날 왜 교회에 '교'자도 모르는 커플들이 좋다고 미쳐 날뛰는 것인가. 나는 그 축제에 과연 동참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내 상태를 점검해본다.

1. 두 달 남짓 남은 이 시점에 덜컥 남친이 생길, 그 희박한 확률에 대해.
2. 오로지 크리스마스를 위한 남친 만들기에 주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1번보다 2번이 더욱 끔찍한 일이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팔짱끼고 서울 시내를 누빌 수 있는 남자를 작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보다 차라리 혼자 성탄을 보내며, 행복한 크리스마스에 하얀 눈, 그러나 날카롭게 뾰족한 눈이 내려 손을 잡고 가는 연인들의 머리통에 박히기를 기도하는 게 100배는 낫다고 본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악몽을 대처하기 위해 이미 두 달 전부터 준비한 나의 프로그램은 바로바로 이것이다. 제주 올레! 물론 '제주올레'를 크리스마스이브 계획으로 세운 연인들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손잡고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혼자 쫄래쫄래 걸어야 하는 불상사 내지 변수가 있겠지만 그건 괜찮다.

하나같이 일괄적으로 비싼 레스토랑에, 모텔에, 길거리에 꽉꽉 들어차 일괄적으로 손을 잡고 일괄적으로 와인 잔을 부딪치며 일괄적으로 누구의 생일인지도 모른 채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끄는 서울의 풍경 한가운데보다는 훨씬 낫다.

외로움에 사무치다 보면, 사랑할 수 있을지도

<비포 선라이즈>를 기억하는가. 기차 안에서 만나 같은 공감대로 사랑을 키워나갔던 제시와 셀린느처럼, 나도??
 <비포 선라이즈>를 기억하는가. 기차 안에서 만나 같은 공감대로 사랑을 키워나갔던 제시와 셀린느처럼, 나도??
ⓒ 캐슬 락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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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은 들어봤을 것이다. 열은 열로 다스린다는. 나는 그 말에 빗대어 '이랭치랭(以冷治冷)'이라는 말을 쓰고자 한다. 더운 것은 더운 것으로 다스린다면 추운 것은 추운 것으로 다스려보겠다. 외로우면 외로움을 더욱 실감해보면서 옆구리가 시리면 그럴수록, 바람을 맞서 제주도 곳곳을 걸어보겠다.

그랬을 시, 결과는 결국 두 개다. 몸과 맘이 추운 것을 끝끝내 극복해버려 나는 진정 바싹 마른 건어물녀로 거듭난다던가, 외로움에 사무쳐 돌아와 정말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거나. 그래서 완전한 건어물이 되기 전에 내 마음 가득 수분을 가득 채울 수 있게 된다던가.

나, 아직 연애세포가 희박하게나마 살아 있으므로 기왕이면 후자가 되길 바란다. 2009년은 건조되었어도, 2010년은 더 이상 마르지 않을 수 있도록. 비록 지금은 크리스마스 연인들을 피해 제주도로 건너가는 셈이 된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비포 선라이즈>를 기억하는가. 기차 안에서 만나 같은 공감대로 사랑을 키워나갔던 제시와 셀린느처럼, 올레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될 그 누군가에 대한 기대도 배낭 한 켠에 잘 챙겨가도록 하겠다.

'크리스마스이브 악몽'이 싫다면, 연락해

반 건조된 건어물녀, 피데기녀의 처절한 글을 읽고서도 여전히!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짝이 없다는 이유로 슬퍼하거나 노여워하고 있다면 지금 종이와 펜을 꺼내 짝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을 한 번 적어보길 바란다.

길을 걷는다던가, 미술관에 들어가 그림이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본다던가(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 상상력 키우는 덴 그림이 최고다) 서울역 쪽방을 돌며 선물과 노래를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산타가 된다던가, 독거노인을 찾아가 남을 위한 가장 특별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준다던가(혹시 루트를 몰라 망설이고 있다면 연락하시라. 내게는 그런 소스가 무궁무진하니까). 

세상엔 사랑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렇다고 사랑 비슷한 것을 억지로 만들어 그게 '사랑'이라고 우기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이, 자연이, 잘 알지도 못하는 그 누군가가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먼저 만끽하라. 남친은, 또는 여친은 조금 늦게 와도 상관없다.

어쩌면 그는 혹은 그녀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세상에 너무 많음을 알려주려고, 세상에게 자연에게, 그 어느 누군가에게 차례를 양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 니콜키드박


태그:#건어물녀, #박진희, #크리스마스, #커플,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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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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