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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라인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사람은 바로 허경영이라는 정당인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그의 독특한 행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그의 발언에서는 진실도 현실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가 정말 단순하게 미친 사람 혹은 바보인 것일까? 신드롬과 같은 그 인기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진실한 모습이 숨어있다. 어째서 '미친 사람(狂人)'이 이 시대에 나타나게 됐으며, 우리는 왜 그의 행동에 주목하고, 때로는 열광하고 있는가?

 

기호 8번 허경영의 17대 대선지지율 0.4%라는 결과는 이를 특정인의 신변잡기수준이 아닌 사회적 현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즉 허경영과 같은 기인을 낳은 것은 바로 우리 사회고, 그에 대해 돌아보는 일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일이다.

 

허경영의 주장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망과 깊이 이어져있다. 그의 17대 대선 출마 당시의 주요 공약은 다음과 같다.

 

UN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건국수당 매월 70만원씩 지급

결혼수당 남녀 각 5000만원씩 지급 (재혼 제외)

출산수당 출산시마다 3000만원씩 지급

국회의원 출마자격 고시제 실시 - 국회의원 100명 감원

정당정치 해산하고 국회의원들이 무보수 명예직으로

산삼뉴딜 특용작물을 재배하여 옛 고려인삼 재현

몽골과 국가 연합 등등.     

- <허경영 블로그>http://blog.naver.com/ren1691

 

세계 속에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경제를 부강하게 하고 싶은 것이 국민 모두의 염원이다. UN 본부 이전과 산삼뉴딜과 같은 주장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작은 나라의 국민이 갖는 영토에 대한 콤플렉스는 몽골과의 국가 연합에 드러나 있으며 결혼하는 데에 많은 돈이 필요하고, 노후를 걱정하지만 출산율이 낮은 현실에 대한 불안도 공약에 나타나 있다.

 

모두 실현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대중의 욕망과 허영을 현실적 제약 없이  잘 드러내, 정치인의 실효성 없는 선거공약과 그를 믿고 따르는 대중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며 대중에게 허영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현실을 바로 보라는 메시지를 해학적 풍자를 통해 전달한 것이다.

 

한데 어째서 그는 정치인이라는 직책을 달고 대중 앞에 나타났을까? 그는 벌써 두 번이나 대선에 출마했다. 대중의 관심을 원한다면 최근의 활동처럼 가수도 좋고, 그의 언행과 가장 일치하는 직업인 사이비 종교의 교주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모습이 아닌 정치인의 형태를 고집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의 욕망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주체가 정치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허경영이라는 정치인의 등장은 정치인 그 자체에 대한 패러디며, 조롱이다.

 

최소한 그는 모두가 바라는 바를 이해해주지 않는가. 지켜지지 않는 공약, 허황된 언행, 자신이 이 나라 최고의 실세라는 착각, 국민들의 의사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국정운행 등 대부분 정치인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특징을 정치인 허경영은 조금 더 과장해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헛소리처럼 들리는 이야기 속에 불꽃처럼 스치는 진실, 궁정의 바보는 왕의 권위를 조롱하고, 그의 권세의 무상함을 노래하는 광대였다. 왕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는 무례함도 선천적 정신박약의 탓으로 여겨져 너그럽게 용서되었다.

 

허경영의 언행은 과하게 독특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려는 진실을 위장할 수 있다. 그가 알렉산더의 권세를 비웃은 디오게네스와 같이 바보를 가장한 진짜 현자인지, 아니면 그저 대중의 관심을 원하는 피에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등장과 선풍적인 인기는 결국 사람들이 가진 현실적인 욕망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그 욕망을 풀어 줄 주체인 권력자들을 향한 불만을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는 그의 행동을 통해 현실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잘못을 꼬집을 수 있어야 한다.

 
16세기의 인문학자 에라스무스는 저서 <우신예찬>에서 바보를 두 종류로 나누었다. 어리석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광대 같은 부류와, 혼자 똑똑한 체하는 현자류의 바보가 그것이다.

 

"광대들은 군주에게 진실을 받아들이게 하고, 군주에게 욕설을 퍼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즐겁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신들은 오직 이런 광대들에게만 진실을 맡겨 놓는다."

 

어째서 허경영과 같은 사람이 홀연히 나타났는가? 거짓말 같은 주장을 늘어놓는 그의 모습이 매우 모순되어 보이지만, 그 이유는 요즘 세상에서 진실을 말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권력 앞에서 진실을 이야기 하는 것이 금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화와 풍자를 통해 돌려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언론이 억압받을수록, 풍자는 다양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허경영은 권력을 비판하고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스스로 광대의 탈을 쓰고 고대와 중세 왕궁의 광대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바로 사회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문제점을 바라보지 못한다. 만연해 있는 문제 속에서 그것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허경영은 어쩌면 우리의 눈을 뜨게 해줄 도구가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고, 심지어 가수로 데뷔, 최근에는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의 행동에는 단순히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보다는 자신에 대한 관심을 통해 이 사회에 만연하게 퍼진 모순된 현실들을 바로 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허경영에 대해 진중권 전 교수는 "21세기에 등장한 르네상스 시절의 광우(狂愚)"라며 '굳어버린 상상력을 말랑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로 평했다. "보수의 엄숙함이 경직된 사고를 만들었는데 그의 언행이 그런 시각을 일깨웠다"는 것이다.

<머니투데이 뉴스, 제목 : 진중권 "허경영, 21세기 등장한 르네상스 광우(狂愚)" 김훈남 기자  2009 /09 /18 23:17 >

 

사실 계기는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뿌리 깊은 정경유착, 정치인의 비리와 거짓공약, 권력자들의 횡포, 보여주기식 정치 등 우리는 허경영이라는 거울로 비춰진 이사회의 만연한 모순들을 좀 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태그:#허경영, #무중력춤, #콜미, #정치,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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