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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절벽이 접근을 불허할 만큼 위풍당당하다.
 깎아지른 절벽이 접근을 불허할 만큼 위풍당당하다.
ⓒ 모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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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은 지금 붉은빛 천지. 간간히 초록잎이 가을 단장을 서두른다.
 한라산은 지금 붉은빛 천지. 간간히 초록잎이 가을 단장을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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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숨을 고르는 모퉁이에서 한참 숨이 깊어지면 온 천지는 색깔로 물들여지고 계절이 색깔을 그렇게 담금질하면 또 사람들은 이내 숙연해진다. 지금 한라산은 노랗고 붉은, 때때로 늦은 걸음을 옮긴 초록 잎도 그 속에서 조화를 이뤄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걷는 게 무어 재미있겠냐마는 지친 다리를 이끌며 그렇게 산을 오르고 사람들은 자연의 오묘함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잠시 아름다운 일탈을 감내한다.

갈수록 산을 찾는 사람들로 붐빈다. 어떤 이는 시름을 잊기 위해서 오르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어떤 이는 도심에서 찾기 녹록치 않은 형형색색의 물감 색을 애써 찾고자 발걸음을 옮긴다. 차 걱정, 속도 걱정, 바쁘게 돌아가는 숨 가쁜 일상을 잠시 던지고 찾는 산은 간단한 간식과 물만 있으면 두발로 자연스럽게 목적지를 안내하는, 참으로 착한 일이 오르기인 일인 듯싶다.

윗세오름 대피소를 앞두고 백록담이 한눈에 들어온다.
 윗세오름 대피소를 앞두고 백록담이 한눈에 들어온다.
ⓒ 모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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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의 봉우리를 자랑하는 제주도 한라산. 눈으로 느끼고, 걷기로 만끽하기에 딱 좋은 요즘날씨에 한라산은 등산객의 여파로 사람행렬이 끊이지를 않는다. 제주에 사는 사람들부터 육지 사람들까지 아직도 한라산은 사랑받는 산이다.

한라산은 높이 195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높은 고도에도 불구하고 사계절이 뚜렷해 각기 계절에 맞는 색다른 멋을 내기에 더욱 신비로운 곳이다. 한라산의 등반코스로는 관음사 코스(8.7km)와 성판악 코스(9.6km), 어리목 코스(4.7km), 영실코스(3.7km)가 대표적이지만 선택한 코스는 게 중에서 가장 짧은 영실코스를 선택했다. 영실휴게소에서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넉넉잡고 4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다.

일행이 많은 탓도 있었지만 이곳저곳 제주의 풍경을 많이 담아가고 싶은 욕심 탓도 있었다. 하지만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바라본 백록담은 꼭 한번쯤은 다시 오르리라 다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영실휴게소에서 산행채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된다.
 영실휴게소에서 산행채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된다.
ⓒ 모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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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나와 아침을 간단하게 요기하고 영실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30분. 벌써부터 차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외지에서 제주도를 찾는다면 꼭 아침식사는 오분자기미역국을 추천하고 싶다. 미역국에 오분자기 세 개를 넣어 성게와 조화를 이룬 제주도만의 오분자기미역국은 직접 담근 갈치속젓과 함께 먹으면 껄끄러운 입맛까지도 맛깔스럽게 한다. 특히 간밤에 숙취로 고생한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해장은 없을 거라는 입담이다.

영실 매표소로 들어서면 주차할 곳이 많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그 이전부터 도로에는 즐비하게 주차된 차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하지만 매표소에서 안내하는 분의 얘기에 따르면 매표소 입구부터 영실 휴게소까지는 차로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에 좁은 산책로 한곳이 차들의 행렬이다.

영실휴게소로 들어서면 병풍바위가 등 뒤로 한 폭의 수채화를 꾸며놓고 있다. 벌써부터 영실기암의 경이로움과 장엄함이 기대된다. 영실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차를 한잔마시고 산행채비를 마친 사람들은 그때부터 걷기를 시작한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탓에 등산로의 정비가 가지런하다. 주로 목재 바닥으로 이루어져 산행에도 큰 무리가 없다.

나무로 길을 덧대고 초입부터 빼곡하게 들어찬 잔가지들이 노랗고 붉은 색을 뿌려놓아 바라본 파란 하늘과 매끄러운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계절 중 이맘때가 가장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굳이 꽃이 없으면 어떠리. 붉게 물든 나뭇잎이 붉은 꽃인 것을...

어미를 생각하는 자식의 애절한 마음이 담긴 오백나한의 형상들이 곳곳에서 애잔함을 전한다.
 어미를 생각하는 자식의 애절한 마음이 담긴 오백나한의 형상들이 곳곳에서 애잔함을 전한다.
ⓒ 모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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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사람쯤 맞잡고 오를 수 있는 좁은 등산로는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곧잘 눈에 띈다. 그만큼 영실코스는 완만하다는 인상이 깊다. 처음에는 오르막만 있어 그런지 힘겹기도 했지만 울창한 숲을 빠져나와 바라본 영실기암은 다리아픔도 잊게 한다.

영실기암은 오래 전부터 영곡이라 하여 명소로 꼽혀온 곳이다. 영실기암은 영실계곡과 오백나한, 오백장군 등으로 불리며 그 이름만큼 애잔한 전설이 깃든 곳이다. 오백 명의 아들을 둔 어미가 자식들을 위해 큰 가마솥에 죽을 쑤다 빠져죽게 되고 그런 줄도 모르고 죽을 먹은 아들들은 어머니가 빠져죽어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슬피 울다 돌이 되었다는 전설.

그래서일까 바람 부는 날이면 오백 아들들이 서있는 바위틈으로 가슴을 에는 칼바람 소리가 들리는데 오백나한의 서러운 통곡소리라고 한다. 한라산 자락을 붉게 물드는 봄 철쭉은 오백아들의 핏빛 영혼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간다는 구상나무 고목.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간다는 구상나무 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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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빛과 남빛의 열매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작은 것 한 개라도 놓칠 수 없게 한다.
 붉은빛과 남빛의 열매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작은 것 한 개라도 놓칠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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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올록볼록한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오름은 사뭇 이국적이다. 영실기암을 사이에 두고 들판에 봉긋 솟은 오름은 제주의 독특한 미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봉긋이 솟은 그 언덕을 어미 한라가 만들어지면서 낳은 새끼 화산인 오름이라고 표현한다.

크고 작은 봉우리 세 개가 연달아 이어져 있는 윗세오름은 제일 위쪽부터 붉음오름, 가운데를 누운오름 그리고 그 아래쪽은 족은오름이라고 이름 붙여질 만큼 제주도에는 368여 개에 달하는 오름에 크고 작은 이름들이 있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곳곳이 볼거리다. 구상나무 고목부터 참빗살나무, 열매를 맺은 마가목과 노린재나무 열매 등 곳곳이 가을스럽다. 가을 단풍과 조화를 이루는 기암절벽에 시선을 던지고 걷다보니 구상나무 고목이 신기하다. 세계에서도 희귀종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고 있다는 구상나무 고목은 한라산에 가장 많이 군집하고 있고 지금은 멸종위기란다.

앙상한 가지는 노익장을 과시할 만큼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간다는 말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 바람 많고 비도 많은 한라산은 요즘 화창한 날이 이어져 사진작가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빨간 열매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작가분이 귀띔해준 참빗살나무는 꽃잎이 심장형이다. 빨간 열매를 머금고 있는 마가목과 남빛을 띈 노린재나무가 한자리에 나란히 자라고 있어 상반된 색깔의 묘한 조화를 이루며 작은 것 한 개도 놓칠 수 없게 한다.

가을이 되면 빨간 열매야 지천에 깔렸지만 남빛 열매는 흔치 않은 색깔이다. 노린재나무는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천연섬유를 물들일 때 없어서는 안 될 매염제 역할을 했다고 하니, 남빛 열매에 먼저 의심을 품을 만도 한데 열매가 아닌 나무이다. 나무를 태우면 그 재의 색깔이 누런색을 띄어서 노린재나무라고 이름 붙여지고 염료와 섬유의 친화를 높이는 데 꼭 필요한 감초 같은 역할이란다.

윗세오름 대피소에는 화창한 날씨 탓에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윗세오름 대피소에는 화창한 날씨 탓에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 모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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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지나 완만한 경지에 오르니 병풍바위와 조화를 이루는 계곡, 한참의 경사진 곳과 완만한 등산로, 중간쯤에 한차례 빼곡히 들어찬 숲을 지나면 소나무 사이로 백록담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온통 가을 천지다.

그곳부터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나무로 짜여 진 길이 이어지고 이제는 시들어 버린 철쭉의 앙상함이 붉은 잎만 내뿜고 있다. 이곳부터는 산책로 같다. 그 길을 따라가면 물맛이 각별하다는 노루샘을 지나칠 수 있다. 달디 달다고 표현하는 사람부터 환상이라는 끝말로 마무리를 짓는 노루샘은 1급수가 흐른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그 물맛을 느껴 보고자 하는 사람들로 즐비하다.

까마귀는 한라산을 지켜내며 이곳의 벗이 되고 있다. 참으로 낯설지만 정감이 간다.
 까마귀는 한라산을 지켜내며 이곳의 벗이 되고 있다. 참으로 낯설지만 정감이 간다.
ⓒ 모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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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뿐이 아니다. 윗세오름 대피소에도 화창한 날씨 덕분에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올라오는 동안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까마귀가 곳곳에 눈에 띄더니 이곳의 까마귀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예부터 까마귀는 흉조라고 불리었는데 사람들과 어울리는 이곳의 까마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빙빙 주위를 맴돈다. 낯 설은 풍경이지만 내심 대견하고 정감이 간다.

고지에서 숨찰 법도 한데 자연과 조화를 이뤄 한라산을 지켜내며 또 이곳의 벗이 되고 있다. 윗세오름에는 사람과 자연, 이 속에 까마귀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며 그 사이사이 서로가 쉼이 되고 바람이 되고 위안이 된다.

아침부터 오른 영실 초입과 점심나절의 산등성이의 색깔이 금세도 다름이 느껴진다. 나뭇가지에 부서지는 햇살이 더 또렷해질 즈음 내려오던 길의 잎사귀들은 또 한 뼘 빨갛게 물이 들었다.

색깔에 대한 미적 감각이 둔감한 사람에게도 가을산은 색채를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기에 충분하다. 내려오던 길, 어디서든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제주도의 풍경사진을 이젠 좀 더 오롯이 만나게 될 것 같아 또 마음까지 설레게 한다.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제주의 올록볼록한 실루엣을 만드는 오름은 멀리서도 가까이에서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흔한 풍경이다.
 제주의 올록볼록한 실루엣을 만드는 오름은 멀리서도 가까이에서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흔한 풍경이다.
ⓒ 모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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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가을 단풍은 산 전체의 20%가량이 들었을 때 첫 단풍이라고 부르고 80% 가량이 들었을 때를 단풍 절정기라고 합니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한라산 단풍은 이번 주가 절정이라고 하니 참고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글과 사진은 10월 24일에 다녀온 한라산 영실기행입니다.



태그:#영실코스, #영실기암, #가을절정, #한라산, #모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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