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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깁스 중이라 계단 있는 작품제작실에 올라가지 못해 가능한 외출을 자제한다. 급한 작품은 베란다에 있는, 쓰지 않는 책상을 치워서 작업대로 만들어 제작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셈인데 깁스를 풀어도 당분간은 작품 제작을 집에서 하고, 차후 작품 만드는 장소인 묵향의 빛뜨락을 닫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고려를 한 데는 반려견을 키우면서 이웃과 갈등이 최근 아주 심해졌기 떄문이다.
얼마전 드디어 반려견 또는 애완견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웃집 불만이 드러나고 내가 없는 사이 경찰차도 다녀갔다. 아파트에서 애완견을 키우지 못하는 조항이 있지만 직접 공동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강제 조항은 아니기에 많이 조심을 했다.
이웃들이 싫어할까봐 햇빛 따스한 날 산책하던 것도 삼가고 한밤중에 한다든가, 택배왔을때 짖기 시작하면 얼른 단속한다든가 하면서 될수록 조용히 지내려 했다. 어느 날 퇴근해서 집에 오니 작은 아이가 사색이 되어 녹초가 되어 있었다. 방금 경찰이 다녀갔다면서 울상이 되어 자초지종을 말하는데, 처음에는 너무 어이없고 귀한 딸이 평생 받을 욕을 하루에 다 받게 해서 열이 올랐다.
이틀 전 이웃집 할머니가 하루 종일 대문을 열어놓고 육두문자로 ○○끼, ○○년을 해대도 모른 척하였지만 은근히 신경쓰이던 참이었다. 작은 아이가 평소처럼 집을 치우고 재활용종이와 빈병과 음식쓰레기 등을 버리려 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욕설이 들려왔다.
"개○○ 키우는 집이라서 쓰레기도 유달리 더럽고, 개주인도 뭘하는지 무슨 ○○년 같다."
딸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 험한 욕설이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이웃집 할머니가 엘리베이트를 타면서 다른 아줌마들 들으라고 손가락질하고 있어 어안이 벙벙하고 놀랐다 한다.
딸은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할머니! 제가 그런 욕을 들으니 너무 놀라고 억울한데요! 너무 심하지 않으세요?"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그 말에 더 화가 충천해서 냅다 딸아이 멱살을 잡았던 모양이고, 아이는 더 놀랐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더 이상 언어폭력과 물리폭력을 못하게 하려고 아이는 할머니에게 자꾸 이러시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고, 할머니는 경찰보다 관리소에 가자고 했다. 관리소는 이웃간 사소한 분쟁엔 방관을 했다.
아이는 아이대로 온 동네가 보는 데서 그런 욕을 듣고 멱살을 잡혀서 너무 황당하고 억울했고, 할머니가 욕설을 멈추지 않아 신고를 했다. 인근 파출소에서 경찰이 두어명 왔다. 경찰이 보기에 아이가 할머니가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공부하는 학생이고 우리집 사정도 들어보니 애완견도 비교적 조용하고 장애보청견이자 반려견 역할도 하고 있어 흔히 문제되는 이웃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을 했다.
경찰 연락을 받고 달려온 할머니 가족이 사과를 하고 서로 조심하는 것으로 문제가 일단락되었지만 딸에게 들은 그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마음이 좀 애잔하였다.
"시골에서 네 음식 내 음식 안 따지고 이웃사촌과 다정히 지내다가 최근에 아파트로 이사왔는데, 이웃과 잘 지내려고 해도 엘리베이트에서 젊은 사람들이 아무도 인사를 하지 않아서 무시당하는 느낌이 드셨나 봐요. 하루종일 집에 계시니까 자연히 택배기사가 올 때 들리는 강아지 소리들이 신경 거슬렸던 것 같아요. 저희 엄마가 아파트에 사시면서 시골과 달리 정서가 자꾸 흔들리는 중이라 최근 약도 먹는데 개주인을 보니 갑자기 홧증이 나신 것 같고 참았던 것들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 같아요."
그날 밤 앞집에서는 할머니 남편인지 아들인지 할머니가 언성을 높이는 소리와 할머니 울음소리가 들렸다.
최근 5년 안에 세워진 대규모 아파트단지 안에서 아이들이 같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다니거나, 같은 교회나 직장이나 어떤 취미동아리에 들지 않으면 서로 알지 못한다. 5년을 그대로 사는 우리집과는 달리 앞 집은 벌써 3번째 바뀌는 집이다. 우리 가족은 모두 공부하거나 활동이 활발해서 살림만 하는 할머니를 잘 알지 못해 인사를 할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옛날 살던 곳처럼 안면을 익히고 인사를 나누고, 정을 나누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한 것 같다. 그런데 엘리베이트에서 내리면 단 2세대만 있는 복도식 아파트의 앞집, 윗집, 아랫집 그 누구와도 안면을 트지 못하고 있는데 이웃집에서 들리는 것은 간간이 강아지 소리였으니 짜증이 많이 났던 모양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호박고구마가 들어온 김에 앞 집 할머니에게 좀 드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할머니에게 평생 들을 욕을 한꺼번에 다 들어 상처가 된 작은 딸이 완강히 거부반응을 일으켜서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아이들은 이제 내가 택배로 뭘 주문하려 하면 말린다. 혹시나 강아지 소리 때문에 할머니와 또 시비가 날까봐서다. 가끔 알지 못하는 교회에서 벨을 눌리면 제 풀에 지쳐 그냥 가기를 기다렸지만 이제는 누가 벨을 눌리면 애완견들이 짖기 전에 얼른 응답을 한다.
내가 혼자 있을 때 보청견 역할을 하는 개가 전처럼 짖지 않고, 어떤 소리에 반응을 해서 짖으려는 눈치가 보이면 내 눈치와 손놀림은 더 빨리 움직여서 애완견 입을 막는다. 이렇게 조심 조심하면서 반려견을 데리고 사는 것이 뭔 죄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우연히 마주치면 할머니에게 허리를 구부리고 공손히 웃으며 인사를 드려야겠다.
흙에서 평생 살아가던 사람이 13층 공중누각 같은, 어떤 사람들이 흔히 지칭하는 닭장 같은 작은 아파트에서 종일 지내다보면 그렇게 가슴이 답답해지고 사소한 것들에도 예민해지며 피해의식도 생기는 모양이다.
더러는 한 칸 방 다리 뻗을 곳도 없는 사람들은 그런 공간을 갖는게 꿈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향 생각 더욱 사무치게 하는 그런 곳이 대단지 아파트다. 전국 도시마다 이러한 아파트들은 점점 엄청나게 늘어나고, 그와 비례해서 흙과 멀어진 사람들의 정겨운 가슴들도 말라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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