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나는 가끔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이었으까 80년대의 어느 한국 시리즈 였을것이다. 마을 앞에 놀러 나갔다가 퇴근 하시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해태가 이기겠지?"라고 물으며 집으로 향하던 내 모습이. 해태는 최강이었고 야구를 그닥 좋아 하지 않는 나였지만 가끔씩은 선동렬과 이종범에 열광하였고 계속된 한국시리즈의 우승을 축하하였다.

 

아마 중학교에 올라가서 였을것이다. 친구 한녀석이 대학생 형 누나들이 부르는 거라며 노래를 하나 가르쳐 주었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에 붉은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그리고 녀석은 뭔가 대단한 것을 알고 있는것 처럼 우리에게 물었다. "너네들 5.18에는 광주에서 해태 경기가 절대 열리지 않는다는 거 아냐?" 그랬다. 5.18은 그렇게 나에게 해태의 경기가 광주에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내 기억속에 자리잡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랫만에 머나먼 캐나다땅에서 타이거즈의 한국 시리즈 진출소식을 들었다. 97년 이후 처음이라 하는데 사실 97년에 해태가 우승했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4년간의 학생운동을 흐지부지 하게 마무리하는 중이었고 IMF에 군입대 준비에 정신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야구는 머나먼 남의 세상이야기 였다. 그때는.

 

97년 이후12년. 세상은 점점 돈, 돈 거리더니, 부자되게 해주겠다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고야 말았다. 대학시절 신자유주의를 열심히 책에서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실감나게 몸으로 느끼게 해줄줄은 정말이지 몰랐었다. 돈이 모든 걸 해결하는 세상이라니. 재밌는 사실은 그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 5.18 광주의 한을 풀어 줄꺼라 믿었던 김대중 전대통령이 열정적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해태도 그 와중에 부도가 나버렸다.

 

그리고 오늘, 바다 건너 밴쿠버에 와 있는지라 새벽에 눈을 뜨고 기아의 극적인 역전승과 한국시리즈 우승 소식을 접했다. 돈이 뒷받침 되주지 않고서 현대 스포츠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지와 근성이 '돈의 힘'을 이겨냈던 그 시절 해태의 힘이 우승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단 하루의 자기 위안이라 할지라도 그 근성이 돈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함께 기아의 우승을 축하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티스토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10.25 17:07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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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한국시리즈 518 광주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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