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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2일자 <국민일보>에는 "국립암센터, 한의학 무시하기에만 열중…협진은 꿈도 못 꿔"라는 제목의 기사가 났다. 1998년 국립암센터 설립 이전의 국립암센터 운영안에는 모든 국민들이 원하는 한양방 협진체제에 의해 암에 대한 연구와 진료를 진행하여 세계적인 암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리하여 기초연구부, 임상연구부, 내과진료부에 각각 한방과를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출범 당시 서울대학교 의대 출신 원장에 의해 저지당했다. 협진체계는 나중에 논의토록 하고 대신 국립암센터 연구소 산하에 전통의학연구과를 두는 것으로 절충하고 전통의학연구과를 설치하였는데도 그동안 한의 인력을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립암센터는 암에 대한 전문적인 진료와 연구를 통하여 우리나라 암 발생률과 사망률을 낮추고 암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 국민보건향상에 이바지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00년 1월에 제정된 국립암센터법에 따라 설립된 암연구, 교육, 진료기관이다. 국민의 혈세를 들여 국립암센터법이 제정되었지만, 취지와 달리 의사들의 월권으로 한의학을 배제한 채 운영하고 있다.
▲ 국립암센터 조감도 국립암센터는 암에 대한 전문적인 진료와 연구를 통하여 우리나라 암 발생률과 사망률을 낮추고 암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 국민보건향상에 이바지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00년 1월에 제정된 국립암센터법에 따라 설립된 암연구, 교육, 진료기관이다. 국민의 혈세를 들여 국립암센터법이 제정되었지만, 취지와 달리 의사들의 월권으로 한의학을 배제한 채 운영하고 있다.
ⓒ 국립암센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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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국가에서 의학교육을 시키다

1463년 세조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의서습독관(醫書習讀官)과 의녀(醫女)에 대한 상벌 규칙을 발표하였다. 의서습독관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의학서적을 읽고 배우는 관리를 말한다. 책을 읽고 배우는 관리라니! 우리가 소설 허준에서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허준은 의과시험에 응시하기 전부터 이름난 의사였다. 의과에 합격한 상당한 수준의 의학지식을 갖고 있는 의사 출신 관료들이 있다는 뜻인데 의서습독관이 왜 필요한 것이었을까?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의서습독관과 의녀에 대한 상벌규정
1. 전체 30명을 3조로 나누어 3일마다 진료실에 나와 평소 읽어두었던 의학서적을 고찰하여 환자를 보고 병을 살피게 하라.
1. 매달 의학서적을 읽게 하여 시험을 친 후 성적이 가장 좋은 사람은 좋은 직위를 주고, 가장 나쁜 사람은 직책을 거두어 심부름하는 업무를 시키도록 하라.
1. 여의들 역시 매달 의학서적을 읽게 하여 성적이 좋은 3명에게 급여를 주며, 시험에 3번 떨어진 사람은 약 달이는 업무를 시키도록 하라.


세종부터 성종에 이르는 5대 76년의 기간에 조선 왕조의 모든 기틀이 잡혔다. 세종은 집현전(集賢殿)이라는 직속 연구기관에 과거를 통해 입각한 능력 있는 젊은 관료들을 배치하였다.

특히 1426년 세종은 28세에 불과하였던 집현전 부교리(종5품) 권채(1399-1438) 등에게 "내가 너희들에게 집현관을 제수한 것은 나이가 젊고 장래가 있으므로 다만 글을 읽혀서 실제 효과가 있게 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각각 직무로 인하여 아침 저녁으로 독서에 전심할 겨를이 없으니, 지금부터는 본전에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전심으로 글을 읽어 성과를 나타내어 내 뜻에 맞게 하라"고 하였다.(한국고전번역원 번역참조)

이것이 그 유명한 세종의 사가독서(賜暇讀書, 휴가를 주어 책을 읽게 함)라는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젊은 학자들에게 안식년을 주되 연구비까지 지급한 것이니 세종의 혜안은 대단한 것이었다.

인재를 키워 백년지대계를 준비하다

권근은 조선 최초의 문형(文衡)이었다. 문형은 '학문의 저울추'라는 뜻으로 당대 최고 학자인 대제학(大提學)을 가리키는 말이다. 종신토록 업무에 종사하였고 스스로 후임을 선임할 수 있었던 최고의 명예직이었다. 이 권근은 <향약집성방>의 전신인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의 서문과 발문을 작성하였다. 사가독서를 통해 성장하였던 인물들 중 권채는 향약의학을 집대성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의 서문을 작성하였고, 서거정은 <향약집성방>의 언해 작업에 참여하였다.

이와 같은 사가독서 이외에도 조선은 습독청(習讀廳)을 만들어 젊은 학자들에게 책을 읽고 공부를 하게 하면서 일을 시켰다. 일을 하라고 뽑아놓은 관료들에게 유급휴가를 주어 공부를 더 하도록 했다는 것은 조선왕조가 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탱하도록 만든 힘이었다.

우리는 흔히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이야기할 때 그가 이록한 많은 저술과 업적만을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다 사람이 하는 것이니 세종의 국가관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전문가, 학자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전문가들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세종을 도운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께서 스스로 인재들을 키워냈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세조 9년의 기사. 의서습독관과 의녀에 대한 상벌규정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는 국초부터 의학관련 인재를 국가에서 관리하였다. 이렇게 100년간 축적된 힘으로 <동의보감>이라는 전무후무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다.
▲ 의서습독관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세조 9년의 기사. 의서습독관과 의녀에 대한 상벌규정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는 국초부터 의학관련 인재를 국가에서 관리하였다. 이렇게 100년간 축적된 힘으로 <동의보감>이라는 전무후무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다.
ⓒ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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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의서습독관 제도는 일반적인 유학자를 키웠던 습독청 내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렇게 키워진 인재들이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라는 거대한 의학 서적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

이 책들은 <동의보감>과 함께 조선의 삼대 의서로 꼽는 책이다. 책과 글자의 크기가 달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조선후기에 양이 많아 내용을 줄여서 여러 차례 간행하였던 <동의보감>이 25권인 데 비해 <향약집성방>이 85권, <의방유취>가 365권이니 정보의 양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학 분야 이외에도 모든 학문분야를 총망라하였으니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학문적 역량이라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며, 모두 세종의 사람을 만드는 정책의 힘이었던 것이다.

국립암센터는 한의사 안 뽑고, 서울대는 한의학과 설치 거부

자동차 산업이 성장한 것은 현대자동차의 힘인가? 반도체 1위 국가가 된 것은 삼성전자의 힘인가? 일부분 맞다. 하지만 국가에서 도로를 닦아주고 반도체 산업을 지원육성하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역사를 쓸 때 한두 영웅의 신화로만 끝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영웅 신화는 역사를 쉽게 만들어주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둬야 할 역사의 교훈은 사라지게 만든다.

17세기 동아시아를 평정한 <동의보감>은 허준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5세기 세종 때부터 계속된 인력양성과 기술축적의 힘이다. 21세기 한의학이 예전과 같은 영광을 찾지 못하는 것을 두고 제2, 제3의 허준이 나오지 않아서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국립대학교나 국립암센터는 누구의 돈으로 운영되는가? 국민이 내는 혈세로 운영된다. 세금은 개인이 하기 힘든 여러 사업이나 학문, 산업을 일으키는 기반 시설에 사용된다. 국립암센터도 국민사망률 1위가 된 암 질환에 대해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여 운영된다. 그런데 그 운영체계를 틀어쥔 사람들이 지나친 월권을 하고 있다.

한의학으로 암치료에 참여하겠다, 신종플루 치료에 접근하겠다고 하면 대뜸 한의학으로 암을 치료한 사례를 가져와봐라, 신종플루를 치료한 증거를 가져와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증거를 만드는 과정은 어마어마한 자금과 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동네 의원이나 사립병의원들만의 힘으로는 어렵다. 어렵기 때문에 국가에서 암센터를 만들고 국립의료원이나 국립병원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먼저 증거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국가에서 한의학 인재 양성과 연구육성에 힘써야

해방 이후 지난 2008년까지 국가에서는 한의과대학을 운영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심지어 1994년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설립되기 이전에는 정부에서 출연한 한의학 관련 연구기관도 전무하였다. 전국에서 가장 적은 연구비를 지급받는 한국한의학연구원의 한 부서에서 지난 8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작업을 했으니 투자대비 효과는 매우 큰 셈이다.

한의학 설치된 대학교와 그렇지 않은 대학교
- 한의학과가 있는 대학교 : 경희대, 원광대, 동국대, 동의대, 대전대, 대구한의대, 세명대, 상지대, 우석대, 동신대, 경원대 등 11개 모두 사립

- 의학과가 있는 대학교 : 서울대, 부산대, 충북대, 충남대, 전북대, 전남대, 경북대, 경상대, 강원대, 제주대 등 국립 10개와 사립 27개

- 의학과와 한의학과를 동시에 갖고 있는 대학교 : 부산대학교 1개 국립(2008년 한의학과 설립)

- 한의학과만 갖고 있는 국립대학 : 없음

- 학교 이름만 갖고도 한의과대학의 교육 및 연구 여건이 국립의과대학에 비해 열악할 것으로 충분히 짐작된다. 한의학의 발전을 통해 전세계 대체의학시장을 장학하기 위해서 국가에서는 가장 먼저 한의과대학에 대한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한의계의 끈질긴 요구와 사립대학교에 있는 기존의 한의과대학들이 정원까지 감축해주는 대승적인 협조 속에 2008년 국립부산대학교에 한의학전문대학원이 드디어 설치되었다. 고종황제가 한의사를 배출하기 위해 만든 동제의학교(東濟醫學校)가 폐교된 이후 꼭 100년만에 이 땅에 국립한의과대학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의학계는 단 하나의 국립한의과대학만이 설립될 수 있다면 한국 사회에 가장 큰 힘을 갖고 있고 연구 여건도 좋은 서울대학교에 설치해줄 것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측의 대답은 의대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설치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적극적인 설립의지를 밝혀온 부산대학교에 한의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되었다.

1908년 고종황제가 한의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만든 동제의학교가 폐교된 지 100년만인 2008년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한의과대학이 된 부산대학교 한의전원. 2010년에는 한방병원이 진료를 시작할 예정이다.
▲ 공사중인 부산대학교 양산캠퍼스 한의학전문대학원 건물 1908년 고종황제가 한의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만든 동제의학교가 폐교된 지 100년만인 2008년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한의과대학이 된 부산대학교 한의전원. 2010년에는 한방병원이 진료를 시작할 예정이다.
ⓒ 부산대학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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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에서 한국의 한의계가 중국과 더불어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종주를 다투고 있다는 게 어떻게 보면 어불성설이며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이니 모든 중의학대학들이 다 국립인 셈이고, 중의사들의 사회적, 법률적 지위가 양의들과 대등하기 때문이다. 향후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한의학이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국가지원이 필요할 것이며, 국공립연구소와 진료시설에서 한의학 인력을 활용한 연구가 시작되어야 한다.


태그:#한국의학사, #국립암센터, #서울대학교, #한의학과, #의서습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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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주)민족의학신문사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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