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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인권선언에 의하면 개인의 능력과 장점에 따라 직무가 부여된다고 적혀있다… 그런데 장 사르코지가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 외에 어떤 장점이 있단 말인가?"
- 사회당 아르노 몽테부르그

프레데렉 미테랑 문화장관의 섹스관광 경험담으로 시끄러웠던 프랑스가 이번에는 대통령의 아들 문제로 들썩이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둘째아들인 장 사르코지가 조만간 파리 서쪽 외곽 신도시 비즈니스 단지를 관할하는 라데팡스 개발청(EPAD) 책임자를 맡게 될 예정이기 때문.

문제가 된 라데팡스는 유럽에서 가장 큰 재계단지로 프랑스 개발의 노른자위다. 반면, 장 사르코지는 23세의 젊은 나이로, 현재 소르본 대학 법대 2년생. 때문에 정계나 재계에서 아무런 경험도 쌓지 않은 이런 젊은 청년이 어떻게 라데팡스 개발청장직을 맡을 수 있는가를 놓고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나, 우리 아빠는 대통령이다" 10월 13일자 <리베라시옹>에 실린 장 사르코지 관련기사.
 "나, 우리 아빠는 대통령이다" 10월 13일자 <리베라시옹>에 실린 장 사르코지 관련기사.
ⓒ 리베라시옹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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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아들'이어서 행복했던 장 사르코지

장 사르코지는 이미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 그가 처음으로 언론에 언급된 것은 2년 전, 그의 집 앞에 세워둔 스쿠터가 사라졌을 때다.

프랑스 내에서 하루 평균 200여 대의 이륜차가 도둑맞는 상황에서 이를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당시 내무부장관이자 장 사르코지의 아버지였던 니콜라 사르코지가 나섰다. 사르코지 내무부장관은 엄청난 규모의 경찰력을 동원해 아들의 스쿠터를 찾기 시작했고, 10일 후 파리 동쪽 외곽에 세워진 (장 사르코지의 스쿠터로 보이는) 이륜차를 발견했다.

경찰은 이 스쿠터가 장 사르코지의 것임을 확인하기 위해 장 사르코지의 지문과 DNA 검사까지 동원했다. DNA 검사는 비용이 비싸 중요한 사건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장 사르코지는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지난해, 배우가 되기 위해 배우수업을 받던 장 사르코지가 갑자기 정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8년 3월, 22세의 나이로 자신이 거주하는 뇌이유의 도의원으로 선출된 장 사르코지는 곧바로 오-드-센 도의회의 UMP(대중운동연합) 여당 지구당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아버지인 사르코지 대통령과 거의 같은 전철을 밟은 셈인데, 이때부터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거침없이 상승세를 타는 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던져지기 시작했다.

니콜라 사르코지와 장 사르코지 부자.
 니콜라 사르코지와 장 사르코지 부자.
ⓒ 퓨어피플닷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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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7월, 장 사르코지는 프랑스 대형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다르티의 상속녀와 결혼했는데 이 사건도 언론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풍자 신문인 <샤를리 엡도>의 만화가 시네는 장 사르코지가 유대인 상속녀와 결혼하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유대인 상속녀와 결혼하기 위해 종교까지 바꿀 수 있는 장 사르코지의 야심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었는데 이 발언이 '앙티세미티즘'(유대인배척발언)으로 받아들여져 결국 시네는 해고당했다. 당시 79세의 노년이었던 시네는 이후 <시네 엡도>라는 새로운 풍자 신문을 발간해 <샤를리 엡도>의 발행부수를 추월했다.

사르코지 부자의 항변 "이건 족벌체제와 관련 없다"

그러나 이번 장 사르코지의 라데팡스 개발청장직 후보 진출은 이전의 파장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2008년에 10억 유로의 총 매상을 올린 라데팡스 비즈니스 단지는 2500개 회사에 15만 명의 직원을 둔 유럽 최대 규모의 재계단지다. 이번 신도시 비즈니스 단지 계획도 면적이 160헥타르이며, 2015년까지 770헥타르로 최종 확장될 예정이다. 때문에 사르코지 대통령이 아들에게 파리 경제의 노른자위라 할 수 있는 라데팡스 신도시 운영권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장 사르코지는 13일 FR3 TV 파리 일드프랑스 지역뉴스에 나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 내가 사르코지의 아들인 이상 항상 비판 대상이 될 것"이라면서 "라데팡스 개발청장은 임명이 아니라 선출로 이루어진다"고 변호했다.

그러나 장 사르코지가 라데팡스 개발청장 후보 자리에 오른 실제 배경을 살펴보면 오히려 임명 쪽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65세의 현 청장인 파트릭 드브장이 정년퇴직 나이에 이르렀고 원칙적으로는 이사회의 제2 멤버인 에르베 마르세이유가 유력한 청장 후보로 올라가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엘리제 대통령 궁에서 에르베 마르세이유를 경제사회평의회에 임명함으로써 라데팡스 개발청장 후보의 자리를 공석으로 만들어 장 사르코지가 들어갈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일주일간 아들에게 가해지는 비판에 침묵하다가 지난 16일, <르 피가로> 기자를 엘리제궁에 불러 인터뷰를 자청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내 아들에게 가해지는 비판은 실은 내게 가하는 비판일 뿐이다. 내 아들이 이 직책에 도전하는 것은 족벌체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라데팡스 신구역 전경.
 라데팡스 신구역 전경.
ⓒ David Monniaux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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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민 64% "곱게 봐 줄 수가 없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믿는 프랑스인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르 파리지앵-오주르뒤>에 발표된 CSA 여론조사에 의하면 64%의 프랑스인들이 장 사르코지가 라데팡스 개발청장 후보에 오른 것에 반대의견을 밝혔다. 10월 14일~15일,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이 여론조사에 의하면 또 우파의 51%가 이 사건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본다고 나타났다.

인터넷에는 장 사르코지 후보 사퇴 제안 청원서도 등장했다. 또 지금까지 장 사르코지를 두둔해 왔던 UMP 당내에서도 서서히 사르코지의 족벌체제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그동안 기회평등을 누누이 강조해온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미지에도 큰 손상을 입혔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13일에도 고등학생들에게 공화국 윤리를 가르치면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바 있어 말과 행동이 모순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제부터 프랑스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학업과 업무로 열심히 일하고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하지만 야심만만한 장 사르코지가 쉽게 후보 자리를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 12월 4일 EPAD 청장 선출의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한편, 이 사건을 풍자한 청년들도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 사회당 소속의 젊은이 4명은 14일 엘리제 대통령궁에 입양을 원하는 공식서류를 제출했다. 이들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자신들을 입양해 주기를 원한다면서 그 이유를 사르코지라는 이름을 소유하고 있어야 취직이 잘 되기 때문이라고 밝혀 이런 상황에서도 프랑스식 유머를 발휘하는 재치를 보였다.

결국 10월 22일 오후 8시 30분경(현지 시각) 장 사르코지가 EPAD 청장 후보직을 자진 사퇴했다. 그는 자신의 후보가 국민들에게 대통령 아들이라는 특권으로 비추어지는 현실 상황에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후보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결국 프랑스 여론이 승리를 거둔 셈인데 이 사건으로 사르코지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여론에 밀려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지 못하게 되었다.


태그:#장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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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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