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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받게 될 당신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우리의 희망, 우리의 미래입니다. 지난해 촛불집회 때, 그 아름다운 신명과 생기발랄함으로, 그 유연한 몸짓과 기발한 언어로, 무거운 저항조차도 신나는 잔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젊은 그대'들입니다. 굳이 구체적으로 세대를 밝히라면 10대 후반부터 20, 30대가 중심이 되겠지요.

당신들에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김제동 사건'입니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 가장 코미디 같은, 그러면서도 처절하게 슬픈 사건. 우리의 민주주의 현주소와 역류를 가장 극적으로, 가장 선명하게,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보여준, 그래서 이 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어쩌면 몰락의 촉발 계기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정권과 그 하부조직의 오만과 독선, 무모함을 참으로 단순하고도 쉽게 보여주는 사건 아닙니까.

방송인 김제동이 지난 9일 저녁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노무현재단 출범기념 콘서트-파워 투 더 피플(Power to the People)'에서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방송인 김제동이 지난 9일 저녁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노무현재단 출범기념 콘서트-파워 투 더 피플(Power to the People)'에서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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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 (미안합니다. 존칭은 생략하겠습니다.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그에게 존칭은 무겁다고 느껴집니다. 애칭으로 그냥 김제동,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그도 양해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의 이야기를 화두로 삼는 것이 그에게 또 다른 부담을 줄지도 모른다고 염려가 됩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김제동'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KBS 강제퇴출이 의미하는 '사건'과 관련된 것이니, 그도 이해해 주리라 믿습니다).

나는 KBS 사장으로 재임 때 그를 복도에서, 또는 녹화 현장에서 가끔 본 적이 있습니다. 그냥 수많은 KBS 출연자 중 한 사람으로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들려오는 이야기로, 나이 들도록 빛을 보지 못한, 무진장 고생을 많이 한, 그럼에도 재주가 참 많은 연예인. 그리고 세상에 많이 알려져 인기인이 된 이후에도 그 고생했던 시절을 잊지 않고, 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겸허와 스스로를 늘 채찍질 하면서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성실한 연예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가 2006년 KBS 연예대상을 받았을 때, 수많은 동료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는 이야기도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 시상식 때 그의 이름을 부르기에 앞서 나는 "저와 비슷하게 눈이 작은 분이십니다"라는 말을 한 기억도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는 상을 받은 뒤 "얼굴도 모르는 아버님의 묘소에 좋은 선물 하나 바치게 되어 기쁘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눈물을 삼키면서... 그리고 이런 말로 말을 마쳤습니다.

"지금 출발했던 곳에서 마음을 잃어버리면 나중에 돌아갈 곳도 없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지금 이 받은 상과 그리고 과분하게 주셨던 사랑, 어떤 방식으로든지 반드시 돌려드릴 수 있도록 그거 연구하며 살겠습니다. 꼭 돌려드리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때의 김제동

그를 전혀 새롭게 본 것은 지난 6월,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때였습니다. 노제 사회로 김제동이라는 이름을 본 순간, 참 놀랐습니다. 그게 대한민국 연예인으로, 그것도 전성기를 누리는 연예인으로, 현 정권의 심기를 심각하게 건드리는 그런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당신들도 충분히 헤아릴 수 있겠지요. 그 날 김제동은 시청 앞 노제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을 절절한 말로 풀어나갔지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고 하셨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그 분에게 너무 큰 신세를 졌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은 사랑이 너무 컸습니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짐 기꺼이 우리가 오늘 나눠 질 것을 다짐합니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는 좀 슬퍼해야겠습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슴 속에 그 분의 한 조각 퍼즐처럼 맞추어서 심장이 뛸 때마다 그 분 잊지 않겠습니다.

'미안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죄송합니다. 좀 미안해 할 게 있습니다. 지켜드리지 못해서...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스스로를 원망하겠습니다. 그 분을 지켜드리지 못해서...

'운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운명만큼은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그 분이 남기신 큰 짐들 우리가 운명으로 안고 반드시 이루어 나가겠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가슴 속에 영원토록 잊혀지지 않을 큰 비석 하나 잊지 않고 세우겠습니다.

'화장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뜨거운 불이 아니라 우리 가슴 속에서 나오는 마음의 뜨거운 열정으로 그 분을 우리 가슴 속에 한 줌의 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열정으로 남기겠습니다.

'노무현 죽음' 이후 많은 글과 말들이 우리를 울렸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김제동의 이 말은 절절한 그리움에다 다부진 각오까지 함께 한 것이어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시게 했고, 마음을 움직였고, 새로운 다짐까지 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그 날 시청 앞 노제 때 그의 이런 절규를 들으면서, 한편으로 가슴이 저미어 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희망이 솟아오름을 느꼈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있는데...

아름다운 자원봉사자 김제동

그리고 그를 다시 본 것은 지난 9일 오후, 성공회 대학에서 있었던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출범을 기념하는 음악회 때였습니다. 나는 그 날 '사람사는 세상 프로젝트'라는 특별 무대의 리허설을 위해 오후 4시 반께 공연장인 성공회 대학에 도착했습니다. 들어가다, 그를 만났습니다.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그 때 물어보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때 사회를 본 것 때문에 불이익은 없는지... 세상 돌아가는 것이 하도 기가 막혀서, 이명박 정권이 하는 짓이 하도 치졸하고 비열해서, 특히 이명박 정권의 하부조직처럼 되어버린 KBS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워낙 황당한 게 많은 터여서, 분명 불이익이 있을 텐데 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냥 씩 웃기만 했습니다. '스타 골든벨'에서 늘 보던, 그 친숙한 웃음으로 그렇게 씩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랬습니다.

공연이 시작되려면 아직도 3시간 가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출연자 대기소로 마련된 천막과 무대 주변을 오가면서 의자도 나르고, 출연진과 다정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시민 단원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그냥 참 소박한 자원봉사자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도착하기 전부터 그렇게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그런 김제동이, "웃기는 데 좌도 없고, 우도 없다"는 김제동이, "저는 독재도 모르고 반독재도 모르고, 그저 상식, 상식밖에 모른다"던 김제동이 '스타 골든벨'에서 퇴출되었다는 소식을 나중 전해 들었습니다. 가을 개편 10일 정도 앞두고, 녹화를 불과 사흘을 앞두고...

김제동.
그의 이름은 이제 '스타 골든벨' '1박2일' '무한도전' '패밀리가 떴다' '해피 투게더' 등의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수많은 연예인 중 하나가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 그 자신은 매우 부담스럽게 느낄 터이지만, 그의 이름은 이 시대. 이명박 시대, 수난 받는 사람, 싹둑싹둑 잘리는 사람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지난 3월 24일 저녁 서울 종로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앎의 즐거움이 모든 변화의 첫걸음'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지난 3월 24일 저녁 서울 종로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앎의 즐거움이 모든 변화의 첫걸음'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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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죽이는 사건의 상징

민주주의의 꽃, 민주주의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요체가 많이 있지요. 그 가운데 하나가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견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김제동 사건은 바로 다양성을 죽이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그의 사회적 발언과 참여, 그것이 용납되지 않는 획일성, 경직성... 독재정권 또는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음직한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 근 30년 전인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그랬지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빼다 놓은 듯 닮았던 배우 박용식씨가 텔레비전에서 사라졌습니다. KBS에서 퇴출된 김제동 사건이 이와 무엇이 다릅니까.

젊은 벗들, 당신들의 현재와 미래가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젊음의 특권인 다양함이 꽃필 수 있는 민주의 공간이 이렇게 닫혀가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현재와 미래가 그렇게 닫혀가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도 그 위험한 역사의 퇴행 행태를 심각한 소리로 경고했습니다.

"그들은 어깨를 건들거리며 스스로의 외눈으로 미운털을 박아 넣고는 기분 좋게, 쉬운 돌부리를 그저 걷어차는 심정으로, 그리 했을 것이다. 바보들. 칡뿌리 한 중심에 있는 돌부리인줄도 모른 바보들. 신나게 걷어차고 보니 자기 자신의 발아래의 모든 흙을 돌, 칡뿌리와 함께 송두리째 날려버렸음을 언제쯤 깨닫으려나... 온 세상 사람들의 눈을 다시 깨우고 말았네. 껴안을 도량이 없다면 어리석지나 말 것을."

우리의 민주주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어떻게 핍박을 받고,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지, 아주 쉽고도 단순하게, 그리고 아주 명징하게 깨우쳐준, 그래서 '온 세상 사람들의 눈을 다시 깨워준'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눈이 다시 떠지고 나면 무엇을 합니까. '깨어있는 시민'으로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갈 것 아닙니까. 사회적 발언과 참여를 적극적으로 할 것이고, 오만한 권력, 야비하고 치사스러운 권력을 투표를 통해 심판을 하게 되겠지요.

'카오스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작 뉴턴의 결정론적 이론체계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무쌍한 구름의 움직임, 유체의 난류 현상, 심장과 뇌의 파동 등 불규칙하고 비연속적인 현상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제시된 이론입니다. 카오스 이론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것이 '나비 효과'라는 것입니다. 나비 한 마리의 가녀린 날개짓이 불러일으키는 극히 작은 기류의 떨림이, 시간이 지나고, 거리를 멀리하면서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서는 폭풍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조건의 차이가 증폭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다른 형태의 운동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이론이지요.

김제동 사건은 나비의 날개짓과는 비교가 안 되는 사건이지요. 두고 보십시오. 난공불락과도 같았던 미국 공화당 보수정권이 조지 부시 대통령을 거치면서 몰락했듯이 이명박 정권, 한국의 수구 정권이 조만간 몰락할 날이 올 것입니다.

정권의 몰락과정에는 권력 남용과 인간의 자유, 기본 권리의 침해 등의 요인들이 누적되어 바탕에 깔리고, 그 바탕 위에서 그것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승만 독재 때 그랬고,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때가 그랬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미 누적된 반민주적 요인들이 차고 넘치고 있습니다. 불과 석 달만에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잃어버린 분노와 허탈을 비롯하여 용산 참사, 미네르바 사건, PD 수첩 사건, 촛불시위자 1649명에 대한 사법처리, 불법시위 단체로 통보된 1840개 단체와 이들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시국선언한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해직, 박원순 변호사 사건, 진중권 교수의 강의 박탈 등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든 반민주적 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오만한 권력의 남용, 얼마나 심각합니까.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권력기관이 정치권력에 적극적으로 봉사하면서 정치권력의 사유물처럼 되어 버렸으며, 공안기관의 정치사찰도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누적된 모순들을 새롭게 깨우치게 하고, 몰락의 단계로 접어들게 하는 촉발의 계기가 '김제동 사건'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의 희망, 우리의 미래인 당신들이 이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느끼는 단순한 분노가 적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화살이 되십시오

고은 시인의 '화살'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

젊은 벗들.
화살이 되십시오.
선거 때마다 당신들의 표를 화살로 만드십시오. '깨어있는 시민'으로, '행동하는 양심'으로, 투표함에 화살을 쏘면 되는 겁니다. 촛불집회 때의 그 생기발랄함으로 축제하듯 신명나게 투표장으로 달려가면 되는 겁니다.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벗들과 함께, 직장 동료들과 함께... 그러면 역사는 바뀝니다. 오만한 권력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바로 당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연재물



태그:#정연주, #정연수사장복직, #김제동, #KBS, #이명박,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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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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