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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집을 지키던 동네의 개들도 잠이 든 시간에 나는 일어난다. 그리고 세수를 한 뒤 대충 한 술 뜨곤 도시락부터 챙긴다.
그렇게 집을 나서는 시간은 늘 그렇게 새벽 6시 전이다.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여름엔 그나마 낫다.
허나 겨울엔, 특히나 눈보라가 휘몰아칠 적이면 신산한 세상살이를 다시금 곱씹는 것만 같은 상념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동동거리며 살아온 세월이 어언 수십 년이다. '과연 내 이 고생의 종착역은 과연 있는 걸까?'를 읊조리며.
품안에 거느리고 살았던 아이들이 점차로 자랐다. 가장 먼저 딸이 집을 떠나 서울로 유학을 갔다.
대학생이 되었다곤 하지만 타관객지로 가는 놈이었는지라 늘 그렇게 걱정을 달고 살아야 했다. 아울러 넉넉히 보내줄 수 없는 용돈에도 나는 늘 마음이 아팠다.
이어 아들이 군대에 갔을 때도 좌불안석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새벽부터 그같이 열심히 살았다곤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빈곤의 수렁은 주기적으로 날 괴롭히는 우울증으로 찾아와 괴롭혔다.
그런 날엔 이 풍진 세상을 잊고자 의도적으로 술을 억병으로 마셨다. 이튿날엔 반은 죽어서 꼼짝을 못 하고 나가 자빠져야 했다.
그러자면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면서 아이들에게도 미안함을 금치 못 하는 자괴감에도 함몰되었다. 아비가 되어가지고, 가장이 되어가지고 이게 뭔 추태란 말인가!
어제 마침내 그동안 고생이 막심했던 아들의 취업전선에 청신호가 켜졌다. 그 어렵다는 대기업의 신입사원 공채에 아들은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너무 좋아서 아들을 껴안고 마구 포옹했다. 시인 김정한은 산다는 것은 '기다림과 여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그동안 산다는 것은 오로지 고생만 하는 기나긴 여정인 줄로 착각했댔다.
근데 이젠 아니지 싶다. 아들도 이젠 보란 듯이 좋은 직장에 합격하였고 이제 또 넉 달 뒤면 사랑하는 딸 또한 영광의 학사모를 쓸 터이니 말이다.
언젠가 김연아의 환상적인 경기를 보던 지인이 말했다.
"김연아의 부모님은 얼마나 행복할까! 경기 잘 하지, 너무 예쁘기까지 하지, 거기에 돈도 잘 벌지..."
하지만 이제 어제 이후로 나는 김연아의 부모님조차 부럽지 않다. 그건 바로 잘 난 아들과 딸에 이어 고생의 끝까지 '분명히' 보이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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