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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 성밖에 건립돼 있는 백년설 노래비
 성주군 성밖에 건립돼 있는 백년설 노래비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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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짧은 동안에 한한 말이다. 길게 보면 그 승패조차 역사의 평가 대상이 되고, 승자 쪽으로 치우쳐 있던 무게중심은 천천히 이동하기 마련이다. 이미 승패를 넘어서 있는 역사를 승패의 논리로 다루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조급함과 무리가 생기고, 그것은 또 자연스럽게 반동(反動)을 불러온다. 반동에 반동이 거듭되는 가운데 남는 것은 옹색한 다툼뿐이다.

몇 해 전부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 나오다 보니, 이제는 소식 자체가 다소 물리기까지 하는 대중음악계의 이른바 친일 논란. 치고받는 다툼을 보며 심란하게 정리해 본 관전평이 대략 위와 같다. 역사를 내 것으로 만들자는 욕심에 누가 결국 이기는지 두고 보자는 식으로 벌어지는 공방전 속에서, 노래와 인물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잠깐 씹히다 버려진 껌처럼 밟히고만 있다.

가수 백년설(白年雪. 1915~1980)의 동상 건립 문제를 놓고 역전(歷戰)의 투사들이 다시 맞붙은 최근 사안도 역시 그러하다. 맞붙은 '꺼리'는 노래비, 가요제, 전집음반을 거쳐 동상까지 왔으나, 언제나 같은 이들이 언제나 같은 논리로 부딪히는 모양은 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 백년설도 모르고 그 노래도 모르는 이들이 서로 으르렁대는 기세싸움만 남았다.

1938년 가을 다른 목적으로 음반회사 일행을 따라 일본에 갔다가 덜컥 가수가 되어 버린 백년설은 당시 조선 대중음악계에서 가히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어딘가 불안정한 음색에 때로 박자까지 놓치곤 하는 그에 대해 "그러고도 가수냐"는 평자들의 빈정거림이 적지 않았지만, 대중의 반응은 달랐다.

무언가를 잃고, 무언가로부터 소외당하고, 어딘가를 떠돈 수많은 식민지 조선의 대중이 다른 어디에서도 받지 못한 위로를 그의 노래 <유랑극단>에서, <나그네 설움>에서, <번지 없는 주막>에서, <고향설(故鄕雪)>에서, <내 고향>에서 받았다. 그러했기에 백년설 음반 한 장의 판매량이 다른 인기가수들 음반 여러 장의 판매량을 압도하고, 백년설 스카우트 문제에 음반회사들이 사활을 거는 일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백년설을 제물로 삼은 쓸데없는 기세 싸움

1940년대 전반 최고 인기가수였던 백년설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 정책에 부응하는 군국가요를 여러 곡 부른 것은 사실이다. <아들의 혈서>가 그러하고 <이 몸이 죽고 죽어>가 그러하다. 그 사실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경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에 바탕을 둔 올바른 평가가 더해져야 한다. 그런데도 한쪽에서는 사실 자체에 대한 언급을 꺼려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경위를 도외시한 채 그 무섭던 '빨갱이' 딱지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되어 버린 '친일파' 딱지만 함부로 붙인다.

나와 내 편만 사는 세상이 아닌 바에야 역사 또한 적정한 제 자리를 찾는 데에 논란과 합의의 과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백년설에 앞서 친일 시비의 대상이 되었던 홍난파(洪蘭坡)의 경우 2006년에 한국음악협회 경기도지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연보를 편찬해 낸 바 있다. 평가에 선행해야 할 이해를 돕기 위해 치밀한 고증을 거쳐 만들어낸 합의의 결과였다. 

충분히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년설을 제물로 삼은 기세싸움에서는 그것도 다 쓸데없는 짓인 듯하다. 앞뒤 안 가리고 돌덩어리나 쇳덩어리 세우는 것으로 기념이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선정한…"만 무한반복하며 그 돌덩어리, 쇳덩어리에 페인트칠할 궁리를 하는 쪽이나, 맹목적이기는 매한가지이다. 싸우면서 닮고 정든다 하니, 이제 정들 일만 남았지 싶다.  

백년설 평가하려면, 그의 노래부터 살펴봐야

백년설 전집 표지
 백년설 전집 표지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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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하루아침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한 평생을 다 바쳐 몰두해도 될까 말까 한 것을 두고 어설프게 들은 풍문이나 날림으로 읽은 몇 줄 글로 달려들고 있으니, 될 일이 없지 않은가.

진정 백년설을 감히 평가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승패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그의 노래부터 찬찬히 들어 볼 일이다. 동상을 세우되 그의 과오를 새길 줄도 아는 담담함이나, 과오를 비판은 하되 인간과 역사에 대한 예의를 지킬 줄도 아는 온당함이나, 모두 거기서 시작할 수 있다. 

이른바 디지털이 대세인 세상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러지 않아도 될, 아니 그래서는 안 될 것까지도 0 아니면 1, 도 아니면 모로 갈라 보려는 경우가 많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치환될 수 없다는 사실은 윷가락 네 개만 던져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을. 도와 모밖에 남지 않은 백년설 논란에는 지금 백년설이 없다.


태그:#백년설, #흉상건립, #상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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