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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운동연합이 로만 폴란스키를 지지하고 나섰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 관련 소식을 보도한 <리베라시옹>.
 "대중운동연합이 로만 폴란스키를 지지하고 나섰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 관련 소식을 보도한 <리베라시옹>.
ⓒ 리베라시옹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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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7일 스위스 취리히 국제공항. 취리히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스위스에 도착한 유명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경찰에 체포됐다.

올해 76세인 폴란스키는 32년 전(1977년) 미국에서 13세의 미성년 여성 모델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속돼 47일간 철창신세를 진 경험이 있다. 폴란스키는 1978년 1월 말, 경찰이 다시 그를 구속시킬 수도 있다는 변호사의 말을 듣고 미국을 도망쳐 나와 유럽으로 거주지를 옮긴 뒤 다시는 미국에 가지 않았다. 

폴란드 유태인인 폴란스키는 파리에서 출생한 프랑스 국적 소유자다. 그가 스위스에서 체포된 이유는 스위스가 자국에 발을 디딘 외국인들에 대해 외국 경찰의 소환요청이 있을 경우, 이를 받아들여주기 때문. 프랑스는 이와 반대로 프랑스 국적을 지닌 자들을 어떤 이유로도 외국에 소환하지 않는다.

이번 폴란스키 감독의 체포는 미국 경찰이 30년이 지난 서류를 다시 꺼내어 그의 스위스 행에 맞춰 긴급체포령을 내림으로써 가능했다. 이 사건은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했다. 많은 프랑스 예술인들이 폴란스키 석방을 위해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폴란스키 감독의 체포사건으로 곤경에 처한 또 한명의 사람이 있다. 프랑스 문화장관인 프레데릭 미테랑이 그 주인공.

폴란스키 감독 두둔하다 곤경에 빠진 문화장관

폴란스키 감독이 체포되던 날, 프레데릭 미테랑 문화장관은 이 사건에 대해 "끔찍스러운 일"이라고 발표했다.

"프랑스 시민이며,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폴란스키 영화감독이 별로 중요치 않은 옛날이야기로 다시 체포돼 저렇게 혼자서 감옥살이 하는 것을 생각하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더욱 이번 취리히 영화제에 상을 받으러 갔던 그가 이런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사건은 우리가 좋아하는 관대한 미국과는 달리 우리를 겁나게 하는 미국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프랑스 전직 대통령인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미테랑의 조카인 프레데릭 미테랑은 올해 6월 23일 문화장관으로 전격 임명됐다. 시나리오 작가, 영화, 다큐멘터리 제작자, TV 진행자 등으로 활동한 미테랑은 정계와는 거리가 먼 인사였지만 문화계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좌파에도 인재가 있으면 골고루 등용하겠다는 개방정책을 써온 사르코지 대통령은 좌파에 가까운 미테랑을 문화장관을 전격 임명함으로써 자신의 개방정책에 의미를 부여했다. 프레데릭 미테랑은 프랑스의 역대 문화장관 중 4번째 동성애자 문화장관이기도 하다.

프레데릭 미테랑 프랑스 문화장관의 자서전 <불량인생>.
 프레데릭 미테랑 프랑스 문화장관의 자서전 <불량인생>.
ⓒ 미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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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 발언 이후 미테랑 장관의 수난이 시작됐다. 포문은 프랑스의 극우파인 국민전선(FN) 부지도자 마린 르 펜이 열었다.

10월 5일, 프랑스 국영방송인 프랑스2의 생방송 토론회 '크로스 워드 퍼즐'(Mots-Croises)에 나온 마린 르 펜은 미테랑 자서전을 들고 나와 일부 글을 인용하면서 미테랑 장관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2005년 출판된 자서전 <불량인생>(La mauvaise vie)에서 미테랑 장관은 젊은 시절 태국을 방문해 젊은 청년과 성 경험을 즐긴 자신의 섹스 관광 경험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바 있는데 그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마린 르 펜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미테랑의 자서전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문화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미테랑의 퇴임을 촉구했다. 또 미테랑 반대 청원서를 작성하여 3천명의 사인을 받아냈다.

<불량인생>은 이미 4년 전에 발표돼 문화계의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 독자들의 반응도 좋아 19만 부나 팔리는 실적을 올린 베스트셀러다.

"섹스관광 이용자가 문화장관이라니!"

어찌됐든 사건의 파장은 점점 커졌다.

10월 7일 브느와 아몽 사회당 대변인은 "이 사건은 매우 중대한 사건"이라며 "프랑스가 태국과 함께 섹스관광이라는 못된 전염병을 치료하고자 나선 시기에 정부의 한 장관이 자신이 섹스관광 이용자라고 발표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 정부는 미테랑을 두둔하고 있다. 10월 8일 사르코지 대통령의 특별조언자인 앙리 구에노는 "이 사건이 떠들썩하게 된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개탄했다. 크자비에 베르트랑 대중운동연합(UMP) 사무총장은 "이것은 개인의 사생활 영역이므로 제3자가 가타부타할 이유가 없다, 개인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보호돼야 한다"고 밝혔다. 크자비에 다르코스 노동부장관도 "아무도 미테랑을 법적인 면에서 비난할 수는 없다, 그의 개인적 행동과 정신적 행동에 관한 것이니만큼 본인 자신이 나서서 해명하면 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당초 "극우파인 FN으로부터 비판을 당하는 것은 오히려 영예로운 일이다"라며 여유를 보였던 미테랑 장관도 사건이 급속도로 불어나자 사태 수습에 나섰다. 8일 저녁 TF1 TV방송 8시 뉴스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한 것.

"본인은 한 번도 섹스 관광이나 페도필리(소년·소녀에게 성적 유혹을 느끼는 사람)를 찬양해 본 적이 없다. 본인은 수치스러운 섹스 관광과 본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페도필리를 전적으로 비판한다. 그러나 동성애와 페도필리를 혼동해서는 안 되고 그럴 경우 우리는 다시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나의 섹스관광이 실수일 수는 있어도 범죄는 아니며, 그릇된 행동도 아니다."

미테랑 장관은 다만, 사건의 발단이 된 폴란스키 감독 체포 건에 대해 너무 감정적인 어투로 끔찍스러운 일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미테랑 장관의 섹스관광 경험담은 사그라지는 듯했다.

10월 8일 TF 저녁 8시 뉴스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프레데릭 미테랑 문화장관.
 10월 8일 TF 저녁 8시 뉴스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프레데릭 미테랑 문화장관.
ⓒ TF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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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다른 사건이 다시 미테랑을 강타했다. 10월 10일 프랑스령에 속한 인도양의 라 레위니옹 섬에서 발간되는 <레위니옹 일간지>에 미테랑의 문제적 서신이 공개된 것.

올 3월 19일에 작성된 이 서신에서 미테랑은 16세 소녀 집단 강간 혐의로 구속 중인 두 청년을 옹호했는데, 이로써 동성애자, 페도필리와 연관된 그의 이미지가 다시 한 번 강조됐다.

"두 형제는 내가 잘 아는 집안의 아들로 좋은 부모 밑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은 애들이다. 이 애들의 미래를 한 번도 의심해 본적이 없다. 지금 이들은 자신의 죄의 중대함을 인지하고 있다."

동성애 장관의 수난? 비판받을 과거사?

미테랑은 "이 두 청년 중 하나가 나의 대자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을 구하기 위해 도움을 준 것인데 이렇게 남을 위한 동정과 관용마저 비판을 받게 된다면 우린 정말 비인간적인 시대의 살고 있는 것"이라고 자신을 변호했다.

라 레위니옹 중죄재판소장에게 보내진 이 편지는 법관이나 변호사 외에는 열람이 안 되는 재판서류다. 어떻게 이 서신이 언론에 전해졌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일부 인사들이 미테랑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프랑스 대다수의 언론이나 유명 인사들은 미테랑을 두둔하고 있는 편이다. 프랑스의 대중적인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12일자 <리베라시옹>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우리가 지금 미테랑의 과거사로 그를 비난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유명한 조상 중에서 마약을 찬양했던 앙드레 말로나 혼외정사와 혼전여성의 성적인 자유로움을 찬양했던 레옹 블룸, 자신의 동성애를 자세히 묘사한 앙드레 지드의 자전적 소설 <코리동>, <고백론>을 쓴 장 자크 루소 모두에게 돌팔매질을 해야 한다. 이게 과연 말이나 되는 얘기인가?"

한편, 극우전선의 마린 르 펜이 갑자기 오래전 자서전을 들고 나와 미테랑 스캔들을 일으킨 배경에 대한 추측도 이어지고 있다. 10월 8일자 <르 피가로>의 분석은 추측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신문은 이를 두고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작업"이라고 보도했다. 국민전선이 폴란스키 체포에 대해 미테랑이 "끔찍한 일"이라고 감정적 어투로 발표한 것을 보고 뭔가 수상한 배경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는 그의 사생활을 캐기 시작했다는 것.

일부에서는 국민전선이 이렇게 미테랑을 인신공격한 배경에 내년 봄에 치러질 지역선거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정치인의 수다스런 사생활을 드러냄으로써 유권자들에게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다가올 지역선거에서 자신들의 당에 더 많은 표가 던져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분히 포함돼 있다는 것.

어찌됐든 일반 프랑스인들 다수는 미테랑 장관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10월 9일~10일에 행해진 BVA 여론조사에 따르면, 67%의 응답자가 미테랑 사임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정치성향별로 따져보면 우익 중 78%가, 좌익 중 63%가 사임반대 의사를 표했다. 프랑스다운 분위기다.


태그:#프랑스 문화장관, #섹스 관광, #로만 폴란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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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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