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8월 초 문을 연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대방점. 서울시의 '영업일시정지권고'를 무시하고 영업중이다. 이로 인해 인근 수퍼마켓의 매출은 30%이상 떨어졌다. 이곳에서 불과 700m 떨어진 곳에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신길점이 입점해 있다.
 8월 초 문을 연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대방점. 서울시의 '영업일시정지권고'를 무시하고 영업중이다. 이로 인해 인근 수퍼마켓의 매출은 30%이상 떨어졌다. 이곳에서 불과 700m 떨어진 곳에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신길점이 입점해 있다.
ⓒ 윤성희

관련사진보기


12일 지식경제부는 SSM의 동네상권 진출이 개인소형슈퍼마켓에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게다가 SSM의 진출로 타격을 받은 것은 오히려 '대형마트'이고, 중소 상인단체에서 요구하는 SSM '허가제'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말은 진실일까? 그렇다면 과연 SSM이 중소상인들, 나아가 우리 지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대형 유통자본, 왜 동네로 들어오나

SSM(Super SuperMarket, 100~900평대 중형 점포. 기업형 슈퍼마켓)은 이미 전국적으로 456개(2009년 1월, 삼성홈플러스 117개, 롯데수퍼 111개, GS수퍼 104개, 이마트 에브리데이 등 기타 124개 )에 달한다. 그 중 102개가 서울시내에 있다.

대기업들은 왜 SSM의 확산에 주력하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기존에 진출한 유통업태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대형마트가 270개에 달하면 국내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되었다.(2001년 삼성경제연구소) 그런데 현재 대형마트 수는 393개에 이른다.(2009년4월 기준) 즉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을 벗어나 '저인망식의 중소유통업'을 성장전략으로 삼은 것이다. 여기에 경제위기를 맞아 대형마트의 매출이 감소한 점, 2000년 들어 급성장한 편의점의 성공사례 등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다.

두 번째는 대형업체 간 유통망 장악 경쟁이다. 각 대형 유통업체는 인구가 적거나 경쟁업체가 있는 등 입지가 좋지 않은 곳에도 과도한 출점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몸집불리기'를 통해 유통시장에 독점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점을 지적한다. 유통업에 종사한 경험이 있는 상인들도 우려하는 바다. 이미 신세계(이마트), 롯데, 홈플러스 등 유통 3사는 57%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앞으로 70%까지 장악할 계획이란다. 그렇게 되면 가격담합, PB 제조 때도 유리하니까. 그러니 마진 안 보고 동네상권에 밀고 들어오는 거지." 과거 대기업 유통부문에서 일했다는 한 상인의 말이다.

지역경제 말아먹는 SSM 쓰나미

동네 상점 대신 SSM에서 저녁거리를 산 행동의 여파는 생각보다 엄청나다. SSM은 본사의 유통망을 활용해 낮은 단가로 지역시장과 유사한 품목(식품, 일용품, 약품 등)을 취급해 골목경제를 독점하다시피하기 때문이다. SSM 입점 이후 주변 소매점은 일 매출액이 평균 30.8%(49.7만원) 감소했다. 상가 권리금은 22.5% 떨어졌으며 부채는 16.2% 증가했다. 그럼에도 대책은 딱히 없거나(60.7%) 휴업, 폐업(15.7%)뿐이었다. (중소기업중앙회 2009.5 SSM 주변 소매점 300곳 실태조사 결과) 국내 자영업자가 대부분 영세한 규모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인천의 경우 본격적으로 SSM이 진입한 지난해에만 약 200여 개의 수퍼마켓이 문을 닫은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자영업자들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폐업은 곧 지역실업률 증가로, 나아가 지역구매력 감소로 이어진다. 더구나 근린상권이 죽으면 대기업의 유통독과점이 일어나 물가가 상승하거나 중소납품업, 제조업이 연쇄 도산할 위험도 있다. 즉 지역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기능하는 지역경제가 연쇄적으로 파괴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지역 땅값을 교란시키는 문제가 있다. SSM은 통상 10~20년의 장기계약을 맺고, 대가로 시가의 두세 배에 달하는 임대보증금과 월세를 낸다. 그 결과 해당 지역 일대의 임대보증금과 월세까지 상승하게 된다. 또 건물주와의 결탁, 불공정거래가 발생하기도 한다. 인천 주안8동에서는 한 건물주가 SSM과 계약한 후, 입점해 있던 점포를 쫓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지역에서 빨아들인 부는 본사로 보내져, 본사가 일괄 집행한다. 지역생산물을 구매하거나 지역사회 환원 등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전시 내 대형마트 13개 업체를 분석한 결과, 연간 1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면서도 지역상품 구매액은 350억 원에 불과했다. 또한 지역 재투자에 177억 원을 사용했다고 하나 대부분 매장 리뉴얼과 직원 채용에 소요된 비용으로 파악됐다. (2009.6 충청투데이)

통영 롯데마트와 이마트는 연매출 2천억 원을 달성하면서도 지역사회에 환원한 금액은 0.1%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지역 복지시설 등을 후원한다는 명목으로 실시한 '지역사랑 마일리지 제도'까지 슬그머니 없애 비난을 받았다.(2009.5 한려투데이) 천안 메가마트는 1억 2천여만 원의 등록세를 10년째 내지 않고 있다. 또, 비상장기업인 홈플러스는 소득을 알 수가 없다. 즉 외국계기업이 한국에서 얼마나 돈을 벌어 영국 본사에 얼마를 보내는지 국민들이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동네 슈퍼맨들의 반란, '사업조정신청'

암사시장 상인들이 이마트에브리데이를 대상으로 낸 사업조정신청서. 사업조정신청제도는 인천 상인들에 의해 유통업 부문에서 처음으로 실행되었다.
 암사시장 상인들이 이마트에브리데이를 대상으로 낸 사업조정신청서. 사업조정신청제도는 인천 상인들에 의해 유통업 부문에서 처음으로 실행되었다.
ⓒ 윤성희

관련사진보기

여기에 처음으로 반기를 든 것은 인천 상인들이었다. 인천 내 대형마트는 20개로, 밀집도가 전국적으로 높은 편이다. 그 결과 부평시장 하나에서만 3~400여 개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인천 상인들과 시민단체들은 <대형마트규제와 소상공인살리기 인천대책위원회>를 통해 이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5월에는 타 지역 상인들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해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준)가 결성되어 단일한 목소리로 1)대형마트 SSM 규제 2)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3)중소상인에 대한 실업안전망 구축 등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6월 경 인천 옥련동에 홈플러스익스프레스가 입점을 시도하면서 이들의 행보에 불이 붙었다. 5분 거리에 재래시장 1곳과 수퍼마켓 14개가 있는 곳이었다. 옥련동 상인과 시민단체는 '홈플러스 입점반대 옥련동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대대적인 입점반대 캠페인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사업조정신청제도'를 찾아냈다. 일시사업정지를 요구할 수 있는 중요한 법적 무기였다. 결국 7월 홈플러스 옥련점은 일시정지권고를 받고 자체 입점보류 결정을 내렸다. 대형유통자본을 지역상인 및 시민들의 단결로 이겨낸 최초의 승리였다.

이 승리는 전국의 상인들을 고무시켰다. 사업조정신청은 한 달만에 40여 건이나 접수되었다. 승리의 의미가 큼과 동시에 사태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현상이었다.

'한계 투성이' 사업조정신청제도

사업조정신청이 접수되면 지자체의 사업조정협의회를 거쳐야 한다. 여기에 상인들의 의사 반영 과정이 불충분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업조정신청이 접수되면 지자체의 사업조정협의회를 거쳐야 한다. 여기에 상인들의 의사 반영 과정이 불충분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자영업자살리기국민운동본부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일시적'인 승리는 한계가 명확하다. '사업조정신청제도'의 최대한의 조치는 사업시지 유예인데, 이는 3년(연장 1회 가능)에 불과하다. 대개 SSM이 7~10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맺고 들어온다는 점에서, 이는 일시적 조치임에 틀림없다. 신청과정과 심의절차에서도 상인들을 배려하는 내용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영업개시 전에 접수된 신청만을 인정하는' 현행 사업조정신청제도의 방식은 사실 법적 근거가 없는 중소기업청의 유권해석이다. 민변 등 법조계에서도 이 부분을 지적했지만 정부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파장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혼란에 빠진 중소기업청은 지난 8월 5일 시도지사에 조정업무를 이관했다. 그 결과 현행법상의 한계와 업무 이관으로 인한 행정공백, 전문성 하락 등에 의해 상인들은 더욱 불리해졌다.

"사형선고 기다리는 죄수 같은 심정"

서울 강동구는 상인과 지역시민단체의 발빠른 공동대응으로 입점저지를 이끌어냈다. 그 중 암사3동 양지종합시장은 800평 남짓한 작은 골목시장이다. 시장 앞에서 고작 100m 떨어진 곳에 이마트에브리데이 공사지가 있다.(8월 11일 일시정지권고) 그런데 입점저지를 이룬 승리의 기쁨은 찾아볼 수 없다. 저녁 6시, 한창 손님이 있어야 할 시간에 한산하기만 한 시장 골목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시장 상인 남명우(56)씨는 "이미 시장은 초토화된 상태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린벨트 근처라 인구도 적고 상권이 매우 좁은 동네다. 아파트 재건축을 하고 나서 시장 1km 앞에 홈플러스, 1.2km 앞에 GS마트, 1.5km 너머 이마트가 들어왔다. 이미 시장은 망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또 SSM이 들어온다니... 사업조정신청을 내 일단 입점은 막았지만, 사형선고 기다리는 심정이다. '일시권고'니까 언제 또 오픈할지 모르지 않나. 더구나 서울시는 우리 의사와는 상관없이 임의로 조정심의 날짜 잡아 통보만 한다. 이마트 쪽이야 전담팀이 있겠지만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소한 것부터 서류 꾸미는 것까지 영세상인들에게는 불리하다."

답답함을 토로하던 그는 "정확한 실태조사를 위해 서울시보다는 차라리 구청에서 업무를 맡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용주(53)씨는 한나라당 등에서 말하는 품목, 영업시간 규제가 실효성이 적다고 했다.

"우리 같은 작은 곳은 그런 게 소용이 없다. 일단 소비자가 그쪽의 '구색 갖춘' 판매에 길들여진다. 더구나 가장 매출 많으면서 가장 겹치는 품목이 1차식품류(농축산물)인데 그걸 안 팔겠다는 것도 아니잖나."

암사1동 암사시장 50m 앞에도 일시정지권고가 내려진 롯데슈퍼 매장이 있다. 내부 설비는 이미 되어 있는 상태라 상인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조정신청을 낸 박규희씨는 "SSM이 들어오는지 서울시에 문의하니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고 거절하더라. 상인들은 정보를 못 얻으니 대응하기 힘들다"고 했다. 또 "암사시장은 최근 30억 원을 들여 현대화공사를 마무리했다. 그 앞에 SSM이 들어서면 시장이 망할 게 뻔한데, 그럼 공사에 쓴 주민 세금은 뭐가 되느냐"고 서울시의 행정을 비판했다.

정낙원 암사시장상인회 부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처 천호시장, 동서울시장 사례를 들며 설득하니 상인들이 위기감을 느끼더라. 원래 그 시장은 강동구에서 제일 큰 시장이었다. 그러던 곳이 옆에 현대백화점, 이마트가 생기니 1년을 못 버티더라. 200만 원 하던 월세가 20만 원이 됐는데도 들어온다는 사람이 없다. 암사시장도 마찬가지일 거다. 특히 과일, 채소는 한 달만에 '아작'난다. 시간 지나면 버려야 하니까. 그런데도 현행법상 서울시나 구청이나 세무사나 다 SSM을 막을 수 없다더라. 강동구처럼 상인들이 대항하면 그나마 입점을 연기하지만, 그렇게 못 하는 데는 그냥 오픈을 강행한다. 현행 신고제가 허가제로 바뀌어야 한다."

"권고 무시하고 영업하는데 어떡해"

지자체의 일시정지권고에는 강제성이 없다. 권고를 위반하고 영업중인 롯데마이수퍼 묵동점 앞에 인근 상인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지자체의 일시정지권고에는 강제성이 없다. 권고를 위반하고 영업중인 롯데마이수퍼 묵동점 앞에 인근 상인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 윤성희

관련사진보기


오후 2시 경 먹골역 5번 출구 앞에는 롯데슈퍼와 그 앞에 앉아 농성 중인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서울 중랑구 묵2동 상인들이다. 롯데슈퍼 묵동점은 서울시로부터 일시정지권고를 받았지만 버젓이 영업 중이다. 묵동슈퍼 사장 오점교(55)씨는 며칠 밤을 새워 가며 상인들을 설득했다. 매일 규탄집회를 이어간 지도 벌써 50여 일이 넘었다. 혼자 가게를 떠맡게 된 부인이 밥은 먹었는지가 늘 걱정이다.

"8월 9일 신청을 냈는데 조정업무가 서울시로 넘어가는 바람에 행정공백이 생겼다. 서울시가 12일에 권고안을 냈는데 롯데슈퍼는 11일 기습 개점하고 '권고안이 영업개시보다 늦었으니 무효다'라며 버티고 있다. 중기청에서 '권고안이 늦을 수는 있지만 조정신청 접수가 더 빨랐으니 조정합의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도 막무가내다. 9월7일부터 조정회의를 하고 있지만 진전이 없다. 영업시간 조정, 세일행사 축소, 3만 원 이상 배송 등을 제시했지만 롯데 측은 듣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래야 할지 모른다는 게 막막하다."

50m 떨어진 곳에 홈플러스익스프레스가 개점한 이후, 서울 대방동 대방하이마트에는 저녁 손님이 사라졌다. 운영자 신현광(31)씨는 "7월 22일에 홈플러스가 들어올 건물에 있는 당구장 운영자가 귀띔해줘서 입점 계획을 알게 됐다. 사업조정신청을 냈는데, 계속 공사를 안 하고 있다가 7월 말쯤 되자 갑자기 조선족 인부 50여 명을 데려다가 근처에서 숙식을 시키더라. 알고 보니 남몰래 밤에만 공사를 한 거다. 그렇게 '도둑개점'하고 서울시 권고를 무시하고 영업 중이다"라고 답답함을 호소햇다.

신씨는 아침 7시부터 밤 12시 30분까지 어머니와 교대로 일한다. 그 결과로 여름에는 130만 원, 겨울엔 7~80만 원을 벌었다. 평균 100만 원 꼴이다. 담배 마진율이 10%, 과자, 음료가 14% 정도다. 하루에 14만 원 버는 꼴이다. 장사가 안 되는 일요일을 제하고 계산하면 월 390만 원을 버는 셈이다. 여기서 월세 150만 원과 공과금, 관리금 등을 빼면 가까스로 100만 원이 남는다. 홈플러스가 들어온 후, 매출은 겨울보다 못한 5~60만 원으로 떨어졌다. 월세도 못 낸다. 막상 겨울엔 어떻게 될지 막막하다. 가게 권리금도 떨어져서 가게를 처분하기도 힘들어진 상황이다. 한 번 규탄집회를 했지만, 그는 영업방해와 불법집회 건으로 경찰서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홈플러스측이 매장 앞에 미리 집회신고를 내 놓은 탓이다.

인근 상인들도 피해를 본다. "대방동에 아파트가 셋 있고, 상가마다 좀더 큰 중소 슈퍼마켓들이 있다. 그중 한 곳에는 GS슈퍼가 보증금 10억에 10년 계약을 제시했단다. 건물주가 거절해서 슈퍼마켓이 그대로 남긴 했지만, 대신 월세를 5백만 원 올려주게 되었다"고 말한 신씨는 최근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렇게 겨울까지 버텨보고, 안 되면 가게를 접을 생각이다.

이러한 영업 강행에 대한 입장을 각 기업에 물어보았다. 롯데 측은 답변을 거부했으며, 홈플러스 관계자는 "지자체의 권고안은 강제성이 없다. (중소기업청에서) 최종 결론을 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다. 지역에 피해가 크다고 결론이 나면 협의를 거쳐 따르겠다. 그러나 소비자 반응이 좋아 크게 지역적 반발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불합리한 기준에 신청 반려까지... 희망이 사라졌다

상계7동에서 정구화(43)씨가 낸 사업조정신청은 반려되었다. 상계2동,7동 공동대책위를 통해 7월28일 조정신청을 냈지만, 상계7동 롯데슈퍼가 25일 새벽 기습개점을 한 탓이다.

"조정신청을 '접수 순'으로 인정한다는 법적 근거와 기준이 도대체 뭐냐. '예측되는 피해'는 인정하면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피해'를 무시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상계동에는 이미 롯데마트와 롯데백화점이 1km 간격으로 들어서 있다. 롯데슈퍼까지 들어오면 삼각형 모양으로 상계1~7동을 둘러싸는 셈으로,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중소기업중앙회와 중소기업청의 답변은 "지금 들어오는 사업조정만으로도 벅차다. 1,2년 전에 SSM이 입점한 지역들까지도 들고 일어서면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었다.

결국 7동에는 롯데슈퍼가 영업 중이다. 같은 길에 있는 슈퍼마켓의 매출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두 곳은 폐업했고 한 곳은 식당으로 전업했다. 유명 체인 빵집까지 매출이 떨어졌다. 정씨의 점포도 매출이 30% 떨어졌다. 그러나 가장 큰 고통은 '희망이 없다'는 점이다.

"조정이 안 받아들여지니 할 수 있는 게 없다. 대부분 포기하고 전업을 고민하는 듯하다."

그래도 정씨는 대책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인근에 SSM이 두 곳 더 들어오려 하기 때문이다.

"슈퍼 일도 농사일이라 생각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가게에 내 손 안 타는 데가 없다. 그런 생계마저 빼앗다니...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닌다."

법과 인식의 '개정' 이 필요하다

9월22일 국회 앞에서 열린 ‘대형마트 개설 허가제 도입을 촉구하는 중소상인, 시민단체, 야 5당 공동기자회견’
 9월22일 국회 앞에서 열린 ‘대형마트 개설 허가제 도입을 촉구하는 중소상인, 시민단체, 야 5당 공동기자회견’
ⓒ 윤성희

관련사진보기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의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안 비교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의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안 비교
ⓒ 윤성희

관련사진보기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번 국회에 상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이 '허가제'로 개정되는 것이다. 기존의 신고제에 시장조절 기능이 없다는 점은 현 상황이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이 문제에 대한 전 국민적 인식 역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골목 상권에서부터 대자본이 유통, 제조, 판매를 독점하는 것은 단순한 '재래시장의 패배'가 아닌, 지역경제의 근간이 무너지는 일이다. 고용불안이 심각한 상황에서 '창업'은 서민들의 중요한 생계수단이기도 하다. 결국 소상공인들의 몰락은 고스란히 일자리 축소, 사회적 부담으로 전이된다. 그 위험은 순간의 편리함보다 더 오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에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10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대형마트, #SSM, #자영업자, #지역경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