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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동통신 환경이 하도 답답하기에 아이폰이 졸지에 사용자 해방 전선의 최선두에 서게 되었지만, 아이폰도 부자유 플랫폼이다.
▲ 아이폰 한국의 이동통신 환경이 하도 답답하기에 아이폰이 졸지에 사용자 해방 전선의 최선두에 서게 되었지만, 아이폰도 부자유 플랫폼이다.
ⓒ Ed Schipul, CC-BY-SA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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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되먹임 (positive feedback)

마이크를 스피커 쪽으로 두었다가 찢어지는 소리가 터져나와 낭패를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원리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러하다. 스피커에서든 어디에서든 미세한 잡음이 발생해 마이크로 들어간다. 스피커가 이 잡음을 신호로 받아들여 출력한다. 출력된 잡음이 마이크로 들어간다. 스피커가 다시 이것을 출력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스피커의 한계 출력에 도달할 때까지 굉음이 울리게 된다. 이처럼 출력이 입력으로 되돌아가 출력이 점점 커지는 순환 구조를 양의 되먹임이라고 부른다.

물류 (logistics)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자연 독점'이 발생한다고 보는 산업 분야가 있다. 물자나 정보나 인간을 실어나르는 산업, 광활한 지역에 인프라를 '깔아야' 하는 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분야들의 특징은, 선빵 필승. 철도 사업에서 가장 지출이 클 때는 바로 철도를 부설할 때다. 한번 지어 놓고 나면 그때부터 발생하는 유지보수 비용은 막대한 부설 비용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그래서 후발주자의 진입이 지극히 어렵다. 기존 사업자는 유지보수 비용만 들이면서 버티면 되는데 후발주자는 대규모 철도 부설이라는 대출혈을 감수하고, 거기에 기존 사업자의 철도를 잘 이용하고 있는 소비자들을 빼앗아 올 홍보전에도 자본을 퍼부어야 한다.

게다가 기존 사업자는 한 구간에서 얻은 수익으로 새로운 구간을 부설해서 점점 팽창할 수 있지만 후발주자에겐 그것이 불가능하다. 지구에서 달로 가는 철도가 이미 있다면 지구에서 성층권까지밖에 못 가는 철도를 지어 놓더라도 누가 이용하겠는가. 일반적으로 대량 생산이 단가를 절감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존 사업자는 '규모의 경제' 효과도 만끽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 독점의 특징과 더불어 대체로 다른 모든 산업의 인프라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물류 산업은 국영인 경우가 많다.

새로운 물류 산업

20세기에 새로운 물류 산업이 등장했다. 새로운 물류 산업이라는 것은 물류 산업과 같은 자연 독점 효과를 가진 산업이라는 뜻이다. 이 자연 독점 효과는 양의 되먹임 때문에 나타난다. 베타맥스(Betamax)라는 이름의 비디오테이프 녹화 기술이 있다. 가로가 좀 짧다는 것만 빼면, 책 한 권 크기의 까만 상자에 비닐 테이프가 감겨 들어가 있는 우리가 흔히 아는 비디오테이프다.

텔레비전의 보급 이래로 보고 싶은 영상을 아무 때나 볼 수 있고 본 영상을 또 돌려 볼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수요는 강렬했다. 소니는 베타맥스 기술을 1974년 처음 시연했고 1975년에 출시했다. 반응이 좋았다. 잘 팔렸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JVC가 비디오 홈 시스템(Video Home System)이라는 다른 기술을 들고 나왔다.

위가 베타맥스, 아래가 VHS.
▲ 베타맥스와 VHS 위가 베타맥스, 아래가 VHS.
ⓒ 퍼블릭 도메인, 저작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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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얘기지만 베타맥스 비디오테이프는 VHS 재생기에 집어넣고 재생할 수 없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당시 비디오테이프 녹화/재생기의 가격은 화폐 가치를 환산해 보면 오늘날 본체와 주변 기기를 모두 갖춘 최신 컴퓨터를 사고도 한참 남을 정도. 소비자에게 베타맥스 재생기와 VHS 재생기를 둘 다 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재생기를 살 때에는 "어느 재생기를 사야 더 많은 녹화 영상을 즐길 수 있는가"를 따져 신중히 결정해야 했다.

베타맥스는 먼저 나왔고 화질도 더 좋았다. 화면에 잡티도 적었다. 하지만 VHS가 마케팅에 더 적극적이었다.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과 라이선스를 체결해서 VHS 영화가 나왔고, 지나친 선정성이나 폭력성 등으로 극장에서 상영할 수 없는 영상물들이 잔뜩 VHS로 출시됐다. VHS 재생기를 사야 그 많은 VHS로 된 영상들을 감상할 수 있으니 사람들은 VHS 재생기를 샀다. 소비자들이 대부분 VHS 재생기를 갖고 있으니 영상 제작자는 작품을 VHS로 내놓아야 많이 팔아먹을 수 있었다.

VHS의 보급이 임계량(critical mass)을 돌파하는 순간부터 양의 되먹임이 일어났고, 결국 베타맥스는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었는데도 시장에서 퇴출당했던 것이다.

플랫폼의 등장이다.

플랫폼 (platform)

플랫폼은 '응용할 수 있는 요소들이 주어진 기반 환경'으로 정의할 수 있다. 조금 더 넓게는 '전달의 기술적 매개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하드웨어일 때도 있고 소프트웨어일 때도 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으니 예를 들어 보자면 베타맥스나 VHS는 모두 플랫폼이다. 녹화영상이라는, 전달하고 싶은 정보가 있는데 그 전달을 해주는 기술적 매개인 것이다. 닌텐도 DS도 플랫폼이다. 닌텐도 DS에는 버튼과 마이크와 액정과 터치스크린 따위가 달려 있다. 이것들을 활용해서, 버튼을 누르면 반응하고 목소리에 반응하고 터치에 반응하고 액정에 이것저것을 보여주는 게임을 만들면 그것이 응용(application)이다. 그리고 닌텐도 DS 자체는 게임 제작자가 만든 창작물을 최종 사용자가 실제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기술적 매개가 된다.

기본적으로 플랫폼은 선취한 자의 자연 독점을 보장하게 되어 있다. 양의 되먹임을 설명할 때 플랫폼을 빠뜨릴 수 없을 정도다. 순서는 이렇다. 닌텐도 DS에서 돌아가는 재미있는 게임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 게임을 하려고 닌텐도 DS를 산다. 닌텐도 DS가 많이 팔린다. 많은 사람들이 닌텐도 DS를 가지고 있으니 게임 제작사가 게임을 팔려면 닌텐도 DS용 게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닌텐도 DS 게임을 만든다. 이 게임이 재미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닌텐도 DS를 사게 될 것이다. 혹은 별 거 아닌 게임만 잔뜩 나오더라도 그냥 닌텐도 DS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의 수가 많다는 것도 충분히 구매 이유가 될 수 있다. 이 순환이 반복되면 이윽고 닌텐도 DS는 시장을 평정한다.

물론 이것은 기본 원리가 그렇다는 것일 뿐이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닌텐도 DS에게는 강력한 경쟁 상대들이 있어서 아직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 품종단일화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플랫폼을 선취해 독점에 성공한 예는 발에 채이도록 많다.

아래아 한글을 보자. HWP라는 파일 형식은 특정 회사의 제품을 돈 주고 사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다. 그런데 학교에서 나온 숙제도 관공서에서 나온 공문서도 은행에서 나온 양식도 (심지어는 자살한 전직 대통령의 유서도) HWP로 제공되니 한국에 살면서 이 회사 제품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 사람들이 문서를 새로 만들 때에도 모든 컴퓨터에 아래아 한글이 깔려 있으니 당연히 HWP를 더 생산하게 된다. 열역학 제2법칙처럼 HWP는 오로지 증가할 뿐 정지하거나 감소하지 않는다는 법칙이 성립하여 우주에 HWP의 수는 갈수록 늘어난다. 점점 더 HWP를 읽고 쓸 수 있는 프로그램 없이는 살기 어려워진다. 몇 년쯤 이 순환이 반복되면 아래아 한글은 사무의 시작과 끝이 된다.

OS는 플랫폼의 대표적인 예다. 당연히 마찬가지 일이 일어난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가 시장에 나와서 여기저기에 깔린다. 윈도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이 나온다. 그 프로그램들을 쓰기 위해 사람들이 윈도를 산다. 많은 사람들이 윈도를 갖고 있으니 소프트웨어 제작사는 윈도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팔아먹을 수 있다. 다 카포.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의 내로라하는 IT 기업들이 매진하는 일들은 모두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혹은 자각이 있든 없든, 플랫폼을 선취하기 위한 노력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정보화사회라면, 우리가 사는 시대는 플랫폼 전쟁의 시대다.

전기·수도·도로·철도·항만 등의 사영화에 저항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들이 자연 독점을 보장하는 산업이면서 또한 기간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가 정보기술에 더 의존하게 되어 IT 산업이 하나의 기간 산업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을 때에는, 플랫폼 독점이야말로 철도 사영화나 공항 사영화보다 더 끔찍한, 진정한 재앙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렇게 되어 가는 중이다.

플랫폼 부자유

내가 산 닌텐도 DS에 마이크가 달려 있으면 이것으로 닌텐도 DS에서 동작하는 녹음기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못 만든다. 내가 산 휴대전화에 동영상을 재생하기 위한 성능(디스플레이, 프로세서, 저장 공간 따위)이 충분하다면 원하는 동영상을 집어넣고 돌려볼 수 있어야 한다. 못 한다. 인터넷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샀으면 내 MP3P에 넣고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못 한다.

닌텐도 DS 게임을 만들고 싶으면 닌텐도와 라이선스를 체결하고 비싼 개발 도구를 사야 한다. 전화기에서 도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싶으면 이동통신사와 계약을 맺고 이통사가 내거는 온갖 제약 조건을 만족시키며 굴욕적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동영상 재생기 따위는 아예 만들어 팔 수도 없을 것이다. 이통사가 거부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산 음악에는 불법복제를 막는다는 구실로 DRM(Digital Restriction Management)이라는 기술이 적용되어 있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들을 수 없으며 오직 정해진 절차를 따라서만 들어야 한다.

이것이 플랫폼 부자유다.

플랫폼 부자유는 플랫폼을 선취한 자가 독점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이다. 사용자에게 돈 받고 물건을 팔아 놓고 물건을 쓸 권리는 박탈하는 어처구니없는 싸가지다. 기술에 대해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유에 대한 포박이다. 소비자의 '행동'에 대한 통제다.

유선 인터넷과 무선 인터넷

1990년대말 2000년대초 한국에 경이로운 속도로 초고속 인터넷망이 부설되었다. 지식과 정보만이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말 그대로) 노래를 부른 정부 덕인지 눈보라 오락사에서 내놓은 게임 타이틀 한 장 덕인지는 알 수 없다. 각 사업자들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채로 열심히 전국에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 결과 네이버가 대성공했고, 당시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였던 하나로통신이나 두루넷의 이름은 오늘날 시장에 남아있지 않다. 네?

인터넷은 원래 군용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단말이 몇 개 망해도 나머지 단말들의 통신이 유지되는 것이 중요했다. 따라서 인터넷에는 점령하면 곧 인터넷 전체를 장악할 수 있게 되는 거점 같은 것은 없다. 콘텐츠의 유통을 통제할 수도 없다. 애초에 군에서 적의 손에 망이 통째로 넘어가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니까. 따라서 선을 깔아주는 것 이외에 특별히 권한이 없었던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들은 출혈 경쟁으로 집집마다 광고지 돌리고 신규 가입자에게는 자전거 주고 프린터 주고 MP3P 주고 상품권 주면서 현상유지나 하고 있었다. 그런데 웹 서비스들은 한번 성공하면 앉아서 떼돈을 벌었다.

죽 쒀서 포털 준 것이다.

물론 그 결과로 거의 전국민이 쉽게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찬란한 환경이 주어졌다. 인프라 사업자들이 "죽 쒀 개 준" 덕분에 사회적 편익은 커진 것이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자들에게는 국민의 삶이 더 윤택해졌는지 망했는지 따위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초고속 인터넷의 전례를 본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취한 전략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아마 절대 그 전철을 밟지 말자고 결심했을 것이다. 그냥 인프라 사용료나 걷는 게 아니라 그 인프라를 통해 유통되는 컨텐츠를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만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유선 인터넷의 전례에서 배운 이들은 먼저 전화기의 응용을 차단했다. 그래서 카메라가 달리고 음악 재생이 가능해지고 터치스크린이 붙으며 전화기의 성능은 눈부시게 일취월장하지만 제아무리 좋은 성능을 가지고 있어도 전화기에서 돌아가는 응용을 직접 만들 권한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극소수로 제한되어 있다.

이통사가 제공하는 비싼 무선 인터넷 이외에 정보가 유통될 수 있는 경로도 차단했다. 오늘날 거의 모든 노트북 컴퓨터에는 주변에 무선 공유기가 있으면 바로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와이파이 모듈이 달려 있다. 그러나 그 와이파이 모듈이 휴대전화에 달린 경우는 드물다. 이통사들이 휴대전화 제조사들을 압박해 못 달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폰

이상의 관점에서 볼 때, 플랫폼 전쟁의 중심에 있는 아이폰은 나쁜 기계다. 아이폰에서 동작하는 응용을 만들 수 있는 방법에는 제약이 있으며, 만들어진 응용의 거래소인 앱스토어 역시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응용을 주고받거나 공유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애플에 의해 통제되는 곳이다.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기계를 개조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아이폰의 이용 약관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초에 아이폰이 잘 팔린 것은 아이폰의 전임자인 아이팟이 잘 팔린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은 기계였다. 예쁘고 편하고 쓸모있었다. 성능도 뛰어났다. 그렇게 해서 한번 잘 팔리고 나면, 즉 플랫폼이 보급되어 임계량을 넘으면 그 뒤로는 어렵지 않다. 수많은 개발자들이 아이폰 응용을 만들어 앱스토어에서 거래하게 되었다.

그런데 특별히 정의롭지도 자유롭지도 않은 이 기계를 두고 들여 오네 마네 난리가 나는 것은, 이통사들이 지금까지 그만큼 추악하고 착취적인 전략을 써왔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아이폰에는 와이파이 모듈이 들어 있다. 이통사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제공하는 무선 인터넷만 쓸 수 있게 하려고 사력을 다해 왔고 그 덕에 이용료를 챙겨 왔는데, 훨씬 싸고 쉽게 인터넷을 쓸 방법 - 사실은 이미 누구나 쓰고 있어야 마땅한 방법 - 이 생겨버리면 큰일난다. 또 아이폰은, 비록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사용자가 자기 기계에서 돌아가는 응용을 직접 만들 수 있게 해 주는 전화기다. 이통사들은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그것을 못하게 막아서 모든 응용을 반드시 자사의 서비스를 통해 구매하도록 강제했고 막대한 (이동통신 서비스 이용료 때문에 자살한 이가 있을 지경이니 말 그대로 막대한) 이윤을 챙겼다.

결국, 부자유 플랫폼이기는 하지만 사용자가 하고 싶은 최소한은 할 수 있게 열어 놓은 아이폰과, 그것조차 막아놓고 이미 있는 인프라마저 여태 못 쓰게 함으로써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아온 이통사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폰이 한국에 출시된다는 소식에 전화기 제조사들이 불만을 드러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제조사들은 지금까지 '좋은 기계'를 만들어 팔 권리를 억압당해왔다. 권력 우위를 이용해 제조사에게 이것도 못하게 하고 저것도 못하게 하더니, 그 짓들을 다 하고 있는 아이폰은 팔아도 된다면 분통 터지지 않을 리가 없다.

아이폰은 쓸만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이통사들이 아까워 하며 찔끔찔끔 내주던 것보다는 훨씬 큰 자유를 제공하므로.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정도의 차이다. 아이폰 출시로 사용자가 마침내 족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자유를 저당 잡은 자가 인색한 이통사에서 관대한 애플로 바뀌는 것이다. 그것은 피부로 느끼기에는 큰 차이이겠지만 본질적인 변화는 아니다. 누가 이겨도 부자유다.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저는 사회당 정보기술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기사는 사회당 주간 소식지 〈위클리 에스피〉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아이폰, #이동통신, #기술,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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