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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당시 현장을 지휘한 경찰 수뇌부들은 아무도 진압을 지휘하지 않았다.

 

9일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에서 형사합의27부(한양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충연씨 등 농성자 9명에 대한 공판에선 김수정 전 서울지방경찰청 차장, 백동산 전 용산경찰서장, 김삼복 전 경찰특공대장 등 지난 1월 19일과 20일 진압 상황을 지휘하던 책임자들이 증인석에 앉았다.

 

그러나 이들 중 참사 직전에 시작된 2차 진압을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장에서 벌어진 1차 화재에 대해서도 참사 이후에 알았다. 당시 용역업체 직원들이 남일당 건물에서 불을 피웠던 범죄사실도 몰랐다.

 

이들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 3000쪽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호인단으로서는 이날 재판이 진압작전의 사실관계와 사건 정황을 파악하기 위한 기회였다. 그러나 증인들의 답변은 "당시엔 몰랐다", "보고받지 못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는 주장이 대부분이었다.

 

"안전에 유의해라"는 지시만, 진압 지휘는 부하직원이

 

참사 당일인 지난 1월 20일 새벽 6시 45분께 경찰특공대는 남일당 건물에 대한 2차 진압을 시작했다. 화재는 그로부터 약 30분이 지난 오전 7시 20분께 발생했다. 그러나 이날 출석한 경찰 수뇌부들은 이같은 사건 정황에 대해 전혀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김수정 전 경찰청 차장은 "1·2차 진압에 대한 보고는 못 받았다, 경찰특공대 교신채널과 우리 채널이 다르고 특공대는 특공대장이 지휘한다"고 말했다.

 

김 전 차장은 자신의 역할을 "각 지휘자에게 보고를 받아 판단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특공대장이 현장에서 구두로 '상황이 잘 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자신은 그러다가 갑자기 불난 것을 봤다는 주장이다. 그가 현장에서 내린 지시는 "안전에 유의하고 계획대로 잘 해라"는 것뿐이다.

 

김삼복 전 경찰특공대장 역시 진압작전 개시 이후 현장지휘를 하지 않았다. 대원들이 잠시 건물 밖으로 철수했던 것도 몰랐고 2차 진압을 한 것도 몰랐다. 건물에 1차 화재가 발생했던 것도 몰랐다. 그는 "연행자가 있다는 보고를 들었기 때문에 곧 끝나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장은 상황을 잘 몰랐기 때문에 현장에 대한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내린 가장 구체적 지시사항은 (망루 진압을 위해) 컨테이너를 크레인으로 끌어올리는 경찰에게 "잘하라"고 말한 것이었다.

 

이는 1제대장이 "저항이 심해서 상황이 어렵다"고 보고하자 김 전 대장이 "언제 끝나냐, 내가 올라갈까"라고 다그쳤고, 이에 1제대장이 "아니다, 금방 끝난다"고 보고하는 내용을 들었다는 경찰특공대원의 증언과는 엇갈리는 대목이다. 김 전 대장은 이에 대해 "기억에 없다"고 말했다.

 

김수정 전 차장과 김삼복 전 대장은 모두 "현장을 보지 않고서는 지시를 내릴 수 없다, 현장 지휘관(경찰특공대 1제대장)이 판단하는 것이다"고 입을 모았다.

 

가게 벽에 그려진 식칼·해골... 경찰서장 눈엔 보이지 않았다

 

 

백동산 전 용산경찰서장 역시 현장상황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참사 당시 용역업체 직원들이 소방호스를 잡고 살수에 참여했던 것, 건물 3층 계단에서 불을 피웠던 것, 이 때문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용역업체 직원들에 가로막혀 경찰 협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던 것에 대해서, 그는 "나중에서야 알았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백 전 서장은 평소에도 용산4구역의 치안 상황을 전혀 몰랐다. 철거민들은 용역업체 직원들이 길을 막고 시비를 걸었으며, 가게 문앞에 동물 사체과 오물을 버리고 벽에도 해골·식칼 등을 그렸다고 주장했지만, 그에게는 금시초문이었다.

 

변호인단은 이같은 증언과 자료사진이 나오는 <PD수첩> 방송화면을 법정에서 틀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본 백 전 서장은 "(벽에 그려진 그림은) 본 적이 없다, 언제 것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용역업체 쪽 폭력에 대한 신고 및 입건사례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PD수첩>도 그렇고 어처구니 없을 때가 많다"면서 용산참사를 다룬 방송들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날 증인들은 사건에 유의미한 증언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이같은 증언의 진위가 미덥지 않다는 입장이다.

 

변호인들은 증인별 심문을 마칠 때마다 반드시 "검찰 조사에서도 이같은 내용을 똑같이 진술했냐"고 확인했다. 수사기록을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형태 변호사는 "증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검찰 수사기록도 안 내놓고, 이런 변호는 처음 해본다"면서 "지금처럼 진술하면 아무 (쓸모있는) 내용도 없는데 검찰은 왜 수사기록을 안 내놓냐"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날 재판을 마치면서 김 변호사는 "검찰이 경찰 수뇌부를 수사했던 기록 3000쪽을 내놓지 않는 것과 오늘 경찰 수뇌부들이 아무것도 몰랐다고 증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면서 재판부에 "이같은 증언에 불이익을 가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참사 예방책은? "농성자들이 경찰 지시 잘 따르는 것"

 

 

이날 법정에선 진압 작전의 정당성도 주요 쟁점이었다. 재판에 출석한 경찰 수뇌부들은 "결과를 갖고 '잘못'이라고 말하지만, 지금도 정당하게 열심히 진압했다고 생각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수정 전 차장은 "살상무기인 화염병을 던지는 상황도 테러라고 볼 수 있지 않냐"면서 "안에 있던 사람(농성자)들이 시너를 들이부은 게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김삼복 전 경찰특공대장은 "어떻게 하면 화재가 안 났을 것으로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고 "농성자들이 경찰 지시만 잘 따랐다면 됐을 것"이라고 답했다.

 

백동산 전 용산경찰서장은 "국민들이 자기 주장을 위해서 다 그렇게 (불법적으로) 행동하면 나라가 존립할 수 있냐, 무도한 범법자에게 과감히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단 경찰이 물러나고 협상했다면 어땠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런 가정식 질문엔 답변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계 소속이었던 한 증인은 "경찰이 대화 시작 하루도 안돼 농성자를 진압한 경우는 처음 겪었다, 얘기해보는 과정이 없어 결과가 이렇게 됐다"고 진술한 바 있다.

 

한편, 이날 증인으로 출석 요구를 받았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미국에 체류 중이라는 이유로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이날 백 전 서장 증언에 따르면, 그는 당시 현장을 둘러보고 "참 큰일 났구나, 대로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 대단히 묵과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오는 16일 오전 10시 김 전 청장이 재판에 다시 출석하도록 요구서를 송달하기로 했다.


태그:#용산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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